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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일 끝내고 오전 7시 다시 출근…아내도 안 믿더라”

‘열악한 드라마 제작현장’ 방송 스태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국회 증언

“새벽 3시 일 끝내고 오전 7시 다

숨 막히는 촬영 스케줄 ‘방송 스태프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에서 공개된 KBS 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 의 촬영 스케줄을 보면 살인적인 일정 때문에 하루 수면시간이 3~5시간에 불과하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드라마 촬영장에서 특수장비 운용을 담당하는 ㄱ씨는 “새벽 3시에 일 끝내고 오전 7시에 다시 출근한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 아내도 밖에서 놀다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하루 12~20시간 노동 예사

찜질방서 쪽잠 자기 일쑤

끼니는 김밥으로 허겁지겁


방송 스태프 중에는 20년 이상 이런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 믿기 힘든 노동시간이 투입되는 드라마 제작을 두고 방송 노동자들은 ‘살인적’이라고 표현한다. 제작 현장에 적정 업무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촬영은 적게는 하루 12시간, 많게는 20시간 이상 이어진다. 32시간 동안 계속 일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일은 새벽에야 끝난다. 1~2시간 지나면 어김없이 다음 촬영분을 위한 노동이 시작된다. 잠을 충분히 자고 피로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찜질방·사우나 등에서 쪽잠을 자야 수면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챙길 수 있다. 점심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촬영이 우선이라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기가 힘들다. 삼시세끼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드라마 제작기간 중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18시간, 월평균 휴일은 4일이 되지 않는다는 게 최근 나온 실태조사 결과다.


죽거나 다쳐야 ‘살인적인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생계를 잇기 위해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송 스태프 비정규직 노동자 국회 증언대회’에 참석한 50여명의 방송 제작 노동자들은 한류 열풍 뒤에는 노예계약과 살인적인 노동시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증언대회에서는 드라마 조명·특수장비 담당자들과 드라마 작가·독립PD 등 방송 노동자들이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대회에서는 극악한 노동조건과 함께 방송 스태프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방송 스태프는 프리랜서이지만 ‘자유롭지’ 않으며, 노동자로 일하지만 자영업자로 취급된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선 보통 방송사가 외주 제작사와 납품계약을 맺고, 제작사가 개인이나 팀과 프리랜서 또는 용역 계약을 맺는 비정상적으로 복잡한 방식에 따라 고용계약이 이뤄진다. 계약서에는 ‘본 계약은 갑과 을 간의 업무위임계약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을은 갑에 대해 고용관계를 주장할 수 없다’는 조항이 빠지지 않는다.


정부는 “근로자임을 인정하는 건 업무 지휘·감독을 받는지 개별적인 사안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방송 스태프들은 “지휘·감독을 안 받아본 적이 없다. 내 마음대로 일해본 적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제대로 된 표준계약 요구한

동료는 사흘 뒤에 잘려

이런 불공정한 조건에서

노동시간 단축 그림의 떡”


조명감독인 ㄴ씨는 최근 다른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 이야기를 전했다. 제작사에 제대로 된 표준계약을 요구했다가 사흘 뒤 ‘잘려’ 버렸다. 노동환경 개선과 기본 권리를 보장할 내용을 담은 계약을 요구해도 방송사와 드라마 제작사는 들어주지 않는다. 권리를 주장하면 촬영 현장에서 낙오된다. ‘억울하면 그만두라’는 사람도 있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쪽잠을 참아낼 수밖에 없다. ㄴ씨는 “강력한 제재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수업을 듣는 학생이 대기업에서 하는 드라마 제작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했는데, 계약서가 용역계약서였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온 학생들도 사업자로 대하는 것이 이 업계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김진억 희망연대노동조합 사무국장은 “노동시간이 단축되려면 노동자여야 한다”며 “근로계약을 맺어야 문제가 풀리는데, 프리랜서·사업자로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는데 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부처 담당자들도 참석해 방송 노동자들의 요구사항과 부처별 대책 마련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참가자들은 충분한 방송 제작기간 확보, 노동친화적인 제작사에 가산점 부여, 표준 근로계약 같은 제도적 장치 등을 논의했다. 이날 증언대회는 희망연대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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