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뿅 지구오락실 시즌2’에서 펼쳐진 웃픈 ‘한반도 대통합’[이진송의 아니 근데]
‘당’으로 끝나는 말 3개만!
아찔하면서도 씁쓸하기에…빵 터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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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예능계의 ‘핫클립’을 꼽자면 단연 미미의 ‘한반도 대통합’ 장면이다. tvN의 오리지널 예능 <뿅뿅 지구오락실 시즌2>(이하 지락실)의 첫 방송에서 미미는 ‘당’자로 끝나는 단어 3가지를 대야 하는 게임에서, 시간에 쫓겨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민주당’을 외친다. 전설의 시작이다. 웅성거리는 반응을 뒤로하고, 두 번째로 미미는 ‘새누리당’을 외친다. 완벽한 빌드업이다. 마지막 하나를 남기고 코너에 몰린 미미는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린다. “공산당!” 외친 본인도, 주변인도 가장 중요한 블록을 뺀 젠가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방송과 동시에 SNS에서 크게 화제가 되면서 다시 보기 영상이 tvN 공식 채널에 올라온 지 3일 만에 150만 뷰를 돌파했다. ‘민새공’, ‘좌·우·위 완벽한 삼각형 대통합 아이돌’, ‘탕평돌’, ‘중립기어 박고 시작하는 지락실’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이 명장면을 이미 짧은 영상으로 보고 본방송을 시청했음에도,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웃길까? 미미의 ‘민새공’ 영상에는, <스카이 캐슬>의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미미가 급하게 몰아본 드라마 2시간 요약본처럼 많은 것들이 압축되어 있었다. <지락실>의 매력 포인트와 한국식 예능의 오락 요소, 그리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쌉싸름한 현실까지.
<지락실>은 작년 6월 시즌1의 첫 방송을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스타 PD 나영석 ‘사단’의 새로운 여행 버라이어티 예능이다. 코미디언 이은지, 오마이걸의 미미, 래퍼 이영지, 아이브의 안유진이 출연한다. 시즌1의 시청률 자체는 높지 않은 편이지만 화제성이 있었고, 다시 보기를 제공하는 TVING의 유료가입기여도 1위와 시청UV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지락실> 시청자들의 연령층과 미디어 소비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시청 타깃층이 바뀌었다는 것은 출연진의 신선한 라인업에서 기인한다. <지락실>은 “지구로 도망간 달나라 토끼(토롱이)를 잡기 위해 뭉친 4명의 용사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치는 신개념 하이브리드 멀티버스 액션 어드벤처 버라이어티”이다. 공식 설명을 보면 집에 가고 싶어지지만, 분장하고 여행을 가서 게임하는 포맷은 익숙하다. 나영석 PD의 대표작인 <신서유기>와 어느 정도 결을 공유하는 기획이다. 그러나 나영석 사단의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전원 여성 출연자, 그것도 요즘 가장 핫한 소위 ‘MZ’(정말 이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세대의 아이콘을 섭외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의외성을 넘어섰다. ‘나영석 사단’으로 상징되는 프로그램의 어떤 틀과 각본을 부수고, <지락실>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까지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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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민주당·새누리당·공산당 발언에 출연진·시청자 뒤집어져
분단국·사상 검증의 아픔 등이 압축된 ‘K적’인 유머 코드에
‘두려운 뒷감당’ ‘적당히 치우치지 않아 다행이에요’ 자막 화룡점정
장애인의 현실인 ‘고요속의 외침’ 등 유사 게임 진행은 아쉬워
제작진도 쇄신을 꿈꾸는 만큼, 새로운 상상력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지락실> 시즌1부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난다긴다 하는 연예인들과 ‘밀당’을 해가며 노련하게 경력을 쌓아온 제작진을 가지고 노는 출연진의 기세였다. 경력 22년의 스타 PD에게 “PD 몇년차냐”고 묻거나, “나 머리에 피도 안 말랐다”며 호소하거나, “영석이 형”이라고 부르는 모습. 만약 <SNL 코리아>의 ‘MZ 오피스’로 갔다면 ‘개념 없고’ ‘예의도 없는’, ‘이상한 나라의 MZ세대’로 연출되었을지도 모르는 장면이다. 사실 미디어에서 MZ는 언제나 미운털이 박혀 있고, 욕하라고 갖다 놓으면 적당히 흥행이 보장되는 수표다. 그러나 나영석은 얄미울 정도로 영리하게, 자신과 제작진을 ‘새로운 인류(?)의 기세에 밀리는 방송국 고인물’의 위치를 자처한다. 그래서 출연진의 모든 행동은 ‘어떤 정형화를 뛰어넘는’ 신선하고 통제 불가능한 매력으로 승화된다. 이 때문에 제작진과 출연진의 압도적인 나이 차이에도 덜 권위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시즌2의 예고편에서 나영석이 출연진을 딸이나 조카처럼 생각한다고 하자, 이은지는 천연덕스럽게 “우리는 친구라고 생각하는데”라고 받아쳤다. 나영석과 제작진이 ‘쥐잡듯’ 잡히는 구도 역시 특징이다. 힘이 남아도는 출연진은 제작진이 신조어 퀴즈에서 틀린 부분을 지적하거나, 게임이 부족하다거나, 안일하다고 호통을 친다. 그동안 이런 유의 프로그램에서 반복 재생산되었던 출연진과 제작진의 관계는 대개 제작진이 우위를 점한 채 골탕을 먹이는 형식이었던 것을 비교해보면 차별점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즌1의 ‘낙오 미션’이다. 태국에 버려진 출연진은 스마트 기기와 능숙한 영어 회화를 활용해 예상 시간보다 빨리 목표 지점에 도착한다. 이 장면을 근거로 고인물 제작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지락실>의 고유한 재미를 견인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외성이다. 공동연출인 박현용 PD는 인터뷰에서 ‘MZ세대니까 방탈출 같은 것에 익숙하겠지’라는 추측으로 토롱이 추격에 추리 요소를 가미했지만, “그냥 달려가서 잡아버리더라”고 놀라기도 했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관계성은 시청자와 프로그램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출연진의 세대인 시청자들은 수직적인 방송국의 위계를 허물며 자유롭게 노는 출연진을 다소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신기해하고 즐기는 제작진의 모습에서 쾌감을 느낀다. 제작진의 세대에서는 문화적 경험의 차이가 큰 다른 세대와 긍정적으로 관계 맺는 ‘동년배’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시청자 중에는 제작진의 리액션을 좋아하거나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공산당”이 나오는 순간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리며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은 시청자를 무장해제시키며 적극적으로 그 장면으로 초대한다. 웃기는 장면을 더 웃기게 만드는 소스다.
장담한다. ‘민새공’ 영상에서 이렇게까지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마 한국인뿐이다. 왜냐하면 그 장면의 모든 웃음 요소가 다분히 ‘K적’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사상 때문에 전쟁도 했고, 휴전 이후에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사상 검증의 아픔이 새겨진 역사(현재진행형이다), 국회의원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무해함을 요구받는 한국 아이돌이라는 직업…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
미미가 처음 “민주당!”을 외쳤을 때, 막내 안유진은 해맑다. 방송 ‘짬밥’이 좀 찬 맏언니 이은지는 눈치를 본다. 연예인, 특히 아이돌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선거 기간에 특정 색깔의 옷을 입는다거나, 손가락으로 V를 그린다거나, 특정 색깔의 하트 이모티콘을 쓴다는 사소한 이유로도 비난을 받는 것이 그 바닥의 생태계니까. 그러나 미미가 “새누리당”을 외친 순간, 기계적 양비론에 익숙한 한국 예능은 이 장면을 방송 가능하다고 판별한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더군다나 뻔질나게 이름을 바꿔댄 대한민국 정치판의 당 역사 덕분에, 둘 다 과거형이라 아슬아슬하게 ‘논란’의 축을 비켜갔다. 사상 검증을 빌미로 대중의 마녀사냥이나 국가폭력이 언제든 자행될 수 있는 한국이기에, 그저 방송에서 특정 정당과 공산당을 언급했을 뿐인데 아찔함이라는 요소가 가미된다. 그래서 나영석의 목이 쉰 “정답! 정답!”이나, ‘두려운 뒷감당’, ‘적당히 치우치지 않아 다행이에요’라는 자막이 그토록 웃기고 폭발적인 것이다. 스릴이 있어야 더 재미있는 이치다. 이영지가 미미의 SNS를 걱정하는 장면은 웃음 밑에 깔린 서늘한 뾰족함을 상기시키며, 어딘가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물론 <지락실>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이자 흥행 요소는 출연진 각각의 개성과 관계성이다. 민새공은 ‘제2의 김종민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순수하고 엉뚱한 오답 폭격기라는 캐릭터를 가져간 미미이기에 가능한 장면이기도 했다. 남성 연예인에 비해 여성 연예인은 무지하다는 것이 매력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그래도 <지락실>에는 안무 맞히기 게임이 있어서, 중간중간 미미가 본업에서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구성의 밸런스가 좋다. 이 프로그램은 세상에, ‘운발’도 좋다. 환상의 호흡을 뽐내는 출연진은 서로 거의 초면이었는데, 이들을 섭외한 것에 제작진이 ‘우주의 기운’을 다 끌어다 썼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미미가 3당을 외치는 동안, 하필 옆에는… ‘준표씨’도 서 있었다. 아니, 아니, 그 준표 말고.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안하무인 왕자님 ‘구준표’ 캐릭터로 분장한 이영지. “준표는 축하한당”이라는 자막은 마치 맥이 끊긴 정치 풍자 코미디가 잠깐 이승에 나들이 온 듯했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지락실>은 시즌1에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현실이기도 한 요소를 게임으로 만든 ‘고요 속의 외침’과 ‘고깔모자 게임’을 선보였다. 예고편을 보면 시즌2에서도 비슷한 게임이 진행된다. 모처럼 비하나 혐오 발언 없이도 잘 노는, 전무후무한 에너지의 출연진을 모았고, 제작진도 쇄신을 꿈꾸는 만큼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락실>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도전과 시도를 하고, 다양한 시청자들이 출연진처럼 흥겨울 수 있는 오락실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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