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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계 첫 미투’ 제자 성추행한 유명 무용가, 1심서 징역 2년 법정 구속

경향신문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위드유’가 유명 무용가 류모씨의 제자 성추행 사건 1심 유죄 판결을 환영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다. 유설희 기자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은 유명 무용가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무용계 첫 ‘미투’ 사건이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김연학)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류모씨(50)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3년간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검찰의 보호관찰 명령 청구는 기각했다.


류씨는 2015년 4~5월 자신의 개인연습실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제자인 피해자를 4차례 걸쳐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류씨는 각종 무용가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무용계 권위자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보호 감독을 받는 위치에 있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위력으로 추행한 것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으로 무용 활동에 관한 꿈을 상당 부분 접었고, 피고인에 대해 엄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사건을 애정 문제로 치부하면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거나 피해 회복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당황하고 몸이 얼어버렸다’는 피해자 진술은 이 사건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했다.


재판의 쟁점은 류씨가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추행 했는지 여부였다. 성폭력처벌법 10조(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는 “업무, 고용이나 그밖의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류씨 측은 재판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감독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류씨 측은 공적인 사제 관계가 아니라, 피해자는 자신에게 개인교습을 받는 것 뿐이어서 언제든지 교습을 그만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류씨 측은 또 “위력을 행사한 적 없다”며 “피해자가 반항한 적이 없어서, 피해자가 신체접촉을 허용한 것으로 생각했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주장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와 마찬가지로 수강생인 피해자를 보호·감독할 의무가 있었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교습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대학 강사, 각종 콩쿠르 심사위원, 무용단 대표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던 기성무용가”라며 “장래 무용수가 되기 위해 피고인의 도움이 필요했던 피해자에게 영향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피해자가 언제든 교습을 그만둘 수 있었다’는 류씨 측 주장에 대해서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무용계 분위기 등을 종합하면 언제든지 교습을 그만둘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위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는 류씨 측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추행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보호·감독 지위가 형성된 개인연습장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요구를 쉽게 거부할 수 없었던 점을 이용해 피해자를 추행했다고 보여진다”며 “피고인은 무용계 선배, 교습자 지위에서 피해자에 대한 권위를 남용했다”고 했다.


‘피해자가 반항하지 않아서 신체접촉을 허용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류씨 측 주장에 대해서 재판부는 “신체적 접촉을 동의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좋아하는 무용을 계속하기 위해 피고인의 행위를 표면적으로 순응한 듯이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범행 이후 피고인과 개인적으로 마주치는 것을 거부하고, 거리를 두려고 했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는 피고인을 존경하는 안무가, 선생님으로 생각했을 뿐, 피고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졌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도 신빙성이 높다고 했다. 재판부는 “진술에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이렇게 일관적·구체적으로 진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법정은 선고 공판을 방청하러 온 시민들로 가득 찼다.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위드유’과 연대한 시민들이었다. 무용계에서 첫 미투 고발이 나오자 ‘무용인 희망연대 오롯’ 소속 무용인들은 피해자와 연대하기 위해 ‘오롯 위드유’를 별도로 꾸렸다. 이에 1000여명의 시민들이 고발을 지지하는 연대 서명에 참여하는 등 오롯위드유와 연대했다. 오롯위드유는 모든 공판을 방청하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내는 등 피해자에게 힘을 보탰다.


오롯위드유는 선고 직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죄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롯위드유는 “이번 유죄 판결이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권위주의와 비민주적 현장에 균열을 내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라며 “특히 무용수들은 이번 판결을 근거로 무용 작업 중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흔들리지 않고 피해자 곁에 서서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2차 가해에 대응하고, 가해자가 정당한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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