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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상 감독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내 옷 입은 배우가 무대서 빛날 때"

공연에서 의상은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결정적 요소다. 대본 속 인물과 연기자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배우를 극중 인물로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연에 따라 수십~수백벌의 의상을 제작해야 한다.


안현주씨(50·쇼크레도 대표)는 국내 공연계에서 손꼽히는 의상 감독 겸 디자이너다. 21년간 <오페라의 유령>, <캣츠>, <맘마미아>, <헤드윅> 등 명작 뮤지컬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의 의상을 만들고 총괄해왔다. 디자인부터 시작하는 작품도 있고, 디자인을 제외한 제작부터 맡은 경우도 있다. 발군의 실력으로 그에게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2~3개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도 숱하다.


지난 4월 26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안현주씨를 만났다. 이 극장에서는 그가 의상 디자인을 한 뮤지컬 <킹아더>(3월 22일~6월 6일)가 공연되고 있다. 자신의 진짜 신분을 모른 채 살아가던 아더가 바위에 박힌 성스러운 검 ‘엑스칼리버’를 뽑고 영국 왕으로 즉위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프랑스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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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상 감독 겸 디자이너인 안현주씨가 지난 4월 26일 뮤지컬 <킹아더> 가 공연 중인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씨의 뒤편에 배우들이 입을 의상이 진열돼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최근 작업한 작품은 뭔가요.


“현재 공연 중인 작품으로는 <킹아더> 말고도 <라이온 킹>과 <리지>가 있어요. 최근 대만 공연을 마친 <캣츠> 아시아투어 의상도 했고요. 6월 개막하는 <웃는 남자>와 <포미니츠>의 의상도 맡고 있어요.”


-<포미니츠>를 제외하곤 모두 라이선스 뮤지컬이네요. 라이선스 뮤지컬은 해외의 원제작사가 만들어놓은 의상을 비행기로 다 공수해오는 것 아닌가요.


“작품마다 달라요. <라이온 킹>은 의상을 해외에서 가져왔어요. <오페라의 유령>도 2001년 한국 초연(한국어 공연)과 2005년 내한 공연 때까지는 영국의 원제작사가 일을 맡긴 호주 의상팀이 제작한 옷을 공수해왔지만 2009년 두 번째로 한국어 공연이 올라갈 때는 호주 측과 우리가 반반씩 제작했어요. 여주인공인 크리스틴의 드레스처럼 까다로운 의상은 호주 측이 제작했지만요. <캣츠>는 원단과 디자인은 영국에서 가져오되, 제작은 우리가 했어요. <킹아더>는 제가 디자인부터 전 과정을 맡았고요.”


그는 “내년 2월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다시 시작하는데 이때 모든 의상을 우리가 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몇달 전 영국 원제작사가 <오페라의 유령> 한국 공연 제작사인 에스앤코에 전체 의상 제작을 한국 측이 맡아줄 수 있는지, 그럴 경우 전체 예산은 얼마나 되는지 문의했다는 것이다.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명작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어요.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에서 30년 이상 연속 공연됐고, 토니상·올리비에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지요. 명성만큼 자부심이 클 텐데 의상 제작을 한국 측에 온전히 맡기려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는지 경험했으니까요.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공연을 올린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에요. 미국, 영국 등 세계의 뮤지컬 제작자들은 그런 한국 제작사와 배우·스태프들의 뚝심, 뮤지컬 팬들의 열정을 지켜봤어요. 뮤지컬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신뢰를 하면서 투자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죠. 한국이라면 의상 제작을 온전히 맡겨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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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벌의 의상이 등장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의 한 장면. 디자인은 정해져 있지만, 내년 한국 공연 때는 의상 제작을 안현주씨가 모두 맡을 가능성이 높다. 에스앤코 제공

-<오페라의 유령>에는 의상이 몇벌이나 등장하나요.


“의상만 380~400벌이고 신발, 모자, 가방, 액세서리를 포함하면 700여벌에 달해요.”


-그게 다 의상 감독 또는 의상 디자이너의 소관인가요.


“배우가 착장하는 모든 것을 담당해요. 외국은 우리와 달리 메이크업과 헤어도 의상 디자이너의 몫이에요. 다만 제 경우에는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의 메이크업과 헤어도 책임지고 있어요.”


-<킹아더>는 직접 디자인을 했다고요. 그렇게 디자인부터 시작하는 경우 제작공정은 어떻게 이뤄집니까.


“우선 대본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캐릭터의 의상을 상상해요. 장면변화를 동시에 계산하면서 의상 목록을 작성하죠. 짧은 시간 내 장면이 전환돼 같은 인물이 다른 날, 다른 장소에 있는 것으로 설정되는 일이 잦으니까요. 의상 목록 작성 후 연출가와 1차 캐릭터 분석 회의를 해요. 가령 주인공 성격이 외향적이라고 파악하면 의상도 밝은 톤일 확률이 높아요. 그런 다음 의상, 안무, 무대, 조명, 분장 디자이너가 다같이 참여하는 회의를 여러차례 해요.”


-그 회의에선 어떤 논의를 하나요.


“배우가 춤을 출 때 옷이 불편하면 안 되잖아요. 또 무대 디자인이나 조명과도 잘 어우러져야 하고요. 가령 <킹아더>에는 비운의 왕비 귀네비어가 또 다른 남자 랜슬럿에게 마음이 흔들리며 괴로움을 노래하는 장면이 나와요. 연약함을 표현하기 위해 그때 그녀의 의상은 하늘거리는 느낌으로 제작했어요. 색상도 어떤 빛의 반사에도 흡수될 수 있는 화이트나 아이보리 색상을 사용했고요. 이런 협의를 하는 과정이에요. 공연은 서로 간 조율이 중요한 종합예술이니까요.”


-시대극이라면 의상 고증도 필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그다음 단계가 해당 시기의 복식에 대한 조사예요. 디테일은 제 머릿속에 있지만 그 시대의 일반적 흐름은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예전에 공부했던 책과 웹사이트 핀터레스트(Pinte-rest)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활용하고 있어요.”


그는 “이후 캐릭터에 맞는 색상과 실루엣을 정하고 원단을 찾기 위한 시장조사를 하는 게 디자인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완성하고자 하는 의상에 맞는 최적의 색상과 질감의 원단을 3~4개 골라 연출가에게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선택되면 원단을 구매하고 의상 제작소에 작업지시서(의상 제작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표기한 것)를 보낸다.


-제작소에서 완성된 옷을 만들어 보내오는 건가요.


“아니에요. 디테일이 하나도 없는 상태의 옷이 만들어져 와요. 그걸로 배우와 1, 2차 피팅(착용)을 해요. 그 과정에서 문제점을 수정하죠. 그런 다음 옷에 제가 세부 장식을 해 완성해요. 하지만 끝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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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주씨는 “의상의 완성은 디테일에 있다”고 말한다. 비즈나 보석 등의 디테일 장식은 모두 안씨가 손수 수작업으로 마무리한다. 우철훈 선임기자

-작업과정이 또 남아 있군요.


“입고 무대에 서봐야 해요. 계단을 오를 때 자꾸 치마가 밟히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또 수선하죠. 그걸 테크(tech·기술) 리허설이라고 해요. 이때 무대, 조명, 음향, 의상 모든 것을 점검하는데, 대형 공연은 이 리허설을 7~10일간 해요. 그런 다음 드레스 리허설이 있어요.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옷을 수시로 갈아입으면서 연기를 해보죠. 보통 캐릭터를 3명의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니 세 번의 드레스 리허설을 해요. 그때 프로그램 사진촬영도 하고요.”


-수백벌의 옷 제작과 거듭된 수정과정을 거쳐야 하니, 손이 많이 필요하겠어요.


“그래서 쇼크레도의 상주 인원은 10명이지만, 진행하는 공연 수나 규모에 따라 동시에 50~80명을 수시로 고용하고 있어요. 이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해요. 주어진 시간 안에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시간에 맞춰 제작을 끝내야 하니까요.”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합니까.


“디자인 파트, 제작 파트, 공연 진행 파트가 있어요. 디자인 파트는 저와 작품 콘셉트를 공유하고 리서치 작업과 디자인 작업을 해요. 제작 파트는 원단 조사와 제작소에 작업지시서 전달 등의 일을 하고, 공연 진행 파트는 공연 전 의상 준비를 하고 배우들이 옷 입는 것을 도와주죠. 연기 중에 옷이 찢어지거나 하는 위급 상황에서 옷핀 등으로 응급 처치도 하고요. 물론 세탁도 의상팀 담당이에요.”


-옷 입는 당사자인 배우들의 요구사항은 없습니까.


“캐릭터를 중심에 두지 않고, 자꾸 본인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있죠(웃음). 특히 여배우들은 아줌마 역할임에도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요. 주역으로서 충분히 아름다운데도 지나친 요구를 끊임없이 하는 배우도 있고요. 또 남자배우들의 경우에는 키높이 신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키가 커도 10㎝ 깔창을 넣어달라고 해요(웃음).”


-무리한 요구를 받으면 어떻게 대처하나요.


“적당한 선에서 맞춰주기도 하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이야기하죠. 반면 조승우씨는 까다롭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본인이 아닌 캐릭터를 중심으로 판단해 요구하고 그 의견이 맞는 경우도 많거든요. 또 협의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면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즉각 수용해요. 진정한 프로라고 생각해요.”


1972년생인 안현주씨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1남2녀 중 막내다. 고교 졸업 후 1년간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한 후 1994년 독일 파더본 종합예술대학 미술교육과에 진학했다. 반년 정도 다닌 후 그만두고 1997년 독일 빌레펠트 디자인대학에 입학해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방학 때 잠시 귀국해 결혼도 했다. 남편은 독일 한인교회에서 만난 정광진씨(51)로, 당시 빌레펠트 종합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왜 진로를 의상디자인으로 바꿨습니까.


“미술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너무 이론 중심이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집에서 미싱을 사용해 자식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셨어요. 그걸 보고 자라서인지 저도 옷 만드는 일이 친근했어요. 패션에 관심도 많고요. 그래서 진로를 의상디자인 쪽으로 바꾼 거예요. 커리큘럼이 다양해 재미있었어요. 찰흙으로 옷을 만들거나,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교수와 다른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수업도 있었어요. 패션쇼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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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상 감독 겸 디자이너인 안현주씨. 우철훈 선임기자

-독일 대학의 학비가 무료라 해도 유학생 부부의 생활비가 만만찮을 텐데 어떻게 조달했나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웃음). 신발가게와 옷가게 점원, 자동차 부품 맞추기, 잡초 뽑기 등.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한 의상실 주인 할머니예요. 할머니는 일손이 필요한 게 아니라 말벗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일을 마치면 제게 차를 타주셨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마다 제게 돈을 쥐어주셨어요. 귀국 후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어느날부터 편지가 끊어졌어요.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말벗이 돼준 값을 주신 거군요.


“독일에는 그런 분들이 많아요. 학생 신분인 우리 부부가 결혼 후 집을 구할 돈이 없어 고민할 때 독일 빌레펠트 종합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은퇴한 호스트 드라이첼(Horst Dreizel)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인 유학생들과 같이 살다가 유학생들이 돌아간 후 혼자 사신다고요.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편지를 썼어요. 한동안 답장이 안 와 포기하려는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또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힘들어 망설였지만, 막상 우리를 보니 같이 살고 싶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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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주씨가 의상을 디자인·제작 한 뮤지컬 <헤드윅> . 경향신문 자료사진

-얼마나 같이 살았습니까.


“6년요. 우리 부부에게 사시는 집의 3층을 내주셨는데, 집세도 안 받고 n분의 1로 딱 물값만 받으셨어요. 우리 부부에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였어요. 패션을 공부하려면 미술을 잘 알아야 한다며 전시회에 데려가 주시고, 여행도 함께 다녔어요. 저녁식사 시간이면 제가 만든 김치찌개 같은 한국음식도 잘 드셨고요. 그분에게는 자식이 4명이나 있지만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분도 의상실 할머니처럼 가족이 필요했던 거예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나요.


“남편이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계속 서신 왕래를 했는데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2015년에 들었어요. 바로 독일로 가 찾아뵈었는데, 병실에 우리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는 거예요. 그곳 직원의 말이, 교수님 댁에서 요양원에 가져갈 물건을 챙기는데 교수님이 ‘다른 건 필요 없고 이 아이들 사진을 가져가야 한다’고 하셨대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이후 1년이 채 안 돼 교수님은 돌아가셨어요.”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화제를 돌렸다.


-무대의상은 어쩌다 하게 된 건가요.


“대학 때 연극학 수업을 참관했어요. 프랑스인인 알랑 교수가 일본에서 공연될 오페라 <마술피리>의 의상 제작을 맡아 6개월간 한국에서 준비하는데 통역과 어시스턴트를 맡지 않겠느냐고 제게 제안했어요. 남편이나 저나 대학을 졸업하려면 6개월간 현장실습은 필수라서 따라나셨어요. 공연의 맛을 처음 알게 됐어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작품이 2001년 한국에서 초연한 <오페라의 유령>이더군요.


“독일로 돌아와 1998년부터 1년간 학생들로 이뤄진 극단의 연극 공연에서 의상과 메이크업을 맡았어요.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했는데, 패션회사에 취직해 기성복을 만드는 일은 맞지 않겠더라고요. 대학원에 진학해 무대의상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그런데 얼마 후 한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내가 알랑 교수와 작업하는 것을 눈여겨본 분이 한국에서 개막하는 <오페라의 유령> 의상을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겠어요.


“바로 휴학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죠(웃음). 당시 영국 스태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일해야 해 저를 적임자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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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캣츠> <캣츠> 는 시즌에 따라 디자인과 원단은 영국에서 가져왔지만, 제작은 안현주씨가 맡았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안씨는 1년간 한국에 머물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실력이 입증되자 2003년부터 한국 측 제작사들의 의뢰가 잇따랐다. 대학원 졸업 해인 2003년 귀국해 쇼크레도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2003년 <캣츠>를 시작으로 지난 21년간 <맘마미아>, <미녀와 야수>, <아이 러브 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헤드윅>, <프로듀서스>, <벽을 뚫는 남자>, <스위니 토드>, <오즈의 마법사>, <록키 호러 쇼> 등 수많은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뮤지컬, 연극의 의상을 책임졌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제 손을 거친 의상을 배우들이 입고 무대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그 에너지에 관객들이 큰 감동을 받는 모습을 목격할 때죠. 그때 ‘우리가 같이 해냈구나’ 하는 뭉클함이 밀려들어요. 그런 성취감과 보람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행복해요.”


그는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일도 일이지만, 두 번의 유산 끝에 결혼 15년 만인 2012년에 낳은 딸 로아(10)는 특히 ‘축복’이라고 했다. 동대문시장에서 공연을 위한 원단을 보다가 하혈을 해 구급차에 실려간 직후 태어난 아이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달 반이나 빨랐지만 딸은 건강하게 태어났다. 시어머니가 같이 살면서 양육을 도왔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로아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인터뷰는 잘했는지, 실핏줄이 터졌던 한쪽 눈은 괜찮은지 묻는 듯했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는가 싶더니, 목소리도 깃털처럼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박주연 기자 jypark@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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