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극 여왕' 임성한 작가 신작 '암세포도 생명'은 어떤 책일까?
2011년 방영된 SBS 주말드라마 <신기생뎐> 의 한 장면. SBS 캡처 |
“암세포들도 어쨌든 생명이에요. 내가 죽이려고 하면 암세포들도 느낄 것 같아요.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 텐데 원인이 있겠죠. 이 세상 잘난 사람만 살아가야 하는거 아니듯이... 같이 지내 보려고요.”
2013년 방영된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등장한 이 대사는 그해 ‘가장 뜨거운’ 대사가 됐다. 대본을 쓴 임성한 작가는 2015년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마친 뒤 그해 절필을 선언했다. 그랬던 임 작가가 다시 논란의 대사를 꺼내들었다. 드라마가 아닌 건강실용서의 제목으로 말이다.
책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의 건강 365일>은 임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20가지 질병을 이겨내는 건강 레시피를 담고 있다. 책에서 그는 <보고 또 보고>, <인어 아가씨>,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 <압구정 백야>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낼 동안 스트레스로 각종 병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건강과 음식을 논하는 책이지만, 이보다 눈길을 끈 건 임 작가가 드라마 집필을 하며 했던 생각과 그의 일상을 담은 부분이다. 워낙 ‘신비주의 작가’로 유명한 탓에 솔직하고 거침없는 화법이 되려 낯설기까지 하다.
“<오로라 공주> 때 주인공 황마마가 동생에 대해 애착이 강했던 누나들 등쌀에 결국 아내 오로라와 헤어지고 비구가 될 작정으로 출가, 행자생활을 하다가 다시 로라를 만나 하산했는데, 이를 두고 당시 삼각관계였던 서하준 팬들은 출가가 아니라 템플스테이였다고 배우와 작가를 향한 욕으로 홈피를 도배해서 읽다가 웃은 기억이 난다.”(6장 위궤양·위장병, 93쪽)
‘막장극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기도 한 임 작가는 이에 대한 서운함을 책에 간접적으로 녹이기도 했다. 스트레스에 관해 다룬 20장에선 시청률에 대한 압박과 대중의 비난에 대한 생각이 좀 더 자세히 드러났다.
“아침 7시10분 알람이 울리면 (중략) 패드를 집어 들어 누운 채 전원을 켜고 시청률 사이트에 들어가 수치를 확인한다. 그 2~3분 동안 심장은 조여 오고, 그나마 시청률이 1프로라도 오르면 잠이 덜 깬 상황에서도 살 것 같고 기분 좋은데, 떨어지거나 기대 이하로 나오면 심장이 ‘쿵’ 멈추는 것 같았다.”(296쪽)
책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의 건강 365일> 표지. 교보문고 홈페이지 |
“<신기생뎐> 때 드라마 내용은 절정으로 치닫는데, 기생이란 부정적 소재로 인해 시청률이 23프로 이상 오르지 않자 당시 H 국장은 통화를 마치면서 ‘임 작가님 25프로 부탁해요~’ 했다. 그 말을 듣고 착잡한 심정으로 운동 기구에 올라, 이십분 동안 거꾸로 매달린 상태서 고민을 거듭하다 ‘시아버지 빙의’를 결정했다. 욕과 안티가 쏟아질게 불 보듯 훤했지만 ‘차라리 내가 욕먹고 시청률은 살리자’였다. 예상대로 정체됐던 시청률은 바로 올라갔고, 시청자 반응도 더없이 뜨거웠으며 매일매일 드라마를 흠잡는 기사는 넘쳐났다.”(296~297쪽)
“일일극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보고 또 보고> 때부터 기자들은 내가 드라마 집필할 때마다 연말에 투표를 해 언제나 내 드라마를 ‘최악의 드라마’로 보란 듯 뽑았고, <인어 아가씨> 때는 방송작가로 유일무이 안티 사이트가 생겨 어느날 홈피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임성한 절필요구’ 서명이 도배되고 있었다.”(298쪽)
“‘사업이 망해서 미국 가는 내용인데 어떻게 작가가 열몇 명 죽였다고 쓸 수가 있어? 드라마가 맘에 안 들면 안 보면 되지 작가 밥줄 끊는 절필 운동을 할 수 있어? 그렇게 할 일이 없나 드라마에 게거품 물게 내가 드라마 쓸 때만 기자들 투표해서 ’최악의 드라마’로 뽑아? 그럼 재밌다고 본 그 많은 시청자들 다 최악의 수준 시청자란 말이야?’ 이런 식으로 따지고 억울해하며 분함으로 살았다면, 아마 나는 진즉 화병에 걸렸을 거지만 아직까지 아프고 불편함 없이 즐겁게 잘 살고 있다. 아직까지는.”(299쪽)
“작가가 된 후 배우들 앞에도 안 나서고 오로지 글에만 집중, 인터뷰도 사양했는데 오히려 얼굴 없는 작가... 베일에 싸인 운운하며 역효과로 더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작가가 안 됐으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 없었을 거고, 작가가 됐기 때문에 갖은 논란과 악플을 겪은 것이다. 단지 드라마를 썼다는 이유로, 드라마를 썼어도 적당히 썼으면 아무도 관심 안 가졌을 것을, 최선을 다해 쓰는 바람에 시청률이 매번 잘나와(얻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악플 악평에 시달린 것이다(잃은 것).”(310쪽)
<압구정 백야> 집필 당시 취재를 위해 만났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와의 일화는 또 하나의 읽을거리다. 임 작가는 “웬만한 사람은 신정아에 대해서 다 알 것”이라고 운을 뗀 뒤 그의 첫인상에 대해 “TV에서 봤을 때보다 늘씬한 키에 튼실 다부진 체형의 세련녀였는데, 외모만 세련이지 입맛은 초딩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번은 저녁 먹으러 그 친구 차로 이동하는데, 차 안에 온갖 과자가 한가득이었다. 내가 놀라서 먹냐고 물었더니 매일 먹는단다. 끊어야 한다니까 바로 돌아온 대답이 ‘절대 못 끊죠.’였다”고 회상했다.
임 작가는 암에 관해 쓴 8장에서 <오로라 공주>의 대사를 빼놓지 않았다. 그는 “방송 나가고 비난이 거셌다. 내용을 쓸 때 어느 정도 예상해 바꿀까, 어쩔까 잠시 고민했지만 대사를 살렸다”고 했다. 오랫동안의 ‘취재와 공부’를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충격이고 절망스럽겠지만 내가 뭘 잘못해서 몸에 암세포가 생겼는가를, 원인을 스스로 찾아봐야 한다”며 “과로했는지, 잘못 먹어서인지, 오염된 환경 탓인지, 스트레스가 원인인지를 짚어보고 그걸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절필 후 3년 놀아볼 작심을 했는데 골절로 1년도 못 채우고, 쇠판을 빼는 재수술 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며 “세상 사람 모두 아프지 않고, 독한 약이 아닌 맛있는 음식으로 병을 고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의사도 약사도 아닌 내가 마음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