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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경향신문

‘똥색 안색’ 기사 보란듯이 받아친 래퍼 이영지

이진송의 아니 근데

통쾌하고 따끔하다…언론 보도의 탈을 쓴 폭력에 ‘거침없이 하이킥’


8월28일,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위키트리’에 기사 한 편이 올라왔다. “저 이영지입니다. 똥색 안색 논란 기사 작성한 기자 만났습니다.” 기묘한 제목의 기사를 클릭하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래퍼 이영지씨가 직접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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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고등래퍼> 최초의 여성 우승자이자 최연소 우승자 이영지는 실력은 물론 순발력과 센스까지 갖춘 독보적인 캐릭터로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있다. 메인스트림윈터 홈페이지 캡처

이영지는 엠넷의 힙합 서바이벌 <고등래퍼> 시즌 3의 우승자이다. 기사는 이어진다. “래퍼 이영지의 똥색 안색 기사를 작성한 최정윤 기자를 만났다.” 내 귀의 도청장치도 아니고, 내 키보드의 래퍼…? 이영지가 자신에 대해 무의미하고 한심한 기사를 쓴 기자를 찾아가 직접 해명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한 달 전 해당 기자는 이영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달린 댓글 중 일부를 골라 ‘“똥 못 싼 거 아니냐” 말까지 나온 오늘자 이영지 안색’이라는 기사를 썼다. 이영지는 왜 이런 기사를 작성했냐고 묻고, 기자의 장 상태 역시 좋지 않다고 폭로했다. 인스타그램에 기사를 올리며 이영지는 덧붙였다. “제 똥 가지고 기사 쓰시면 이런 사단(사달)이 일어나니 모두 조심하세요♡”


고등래퍼 우승자…여동생도 어린 여자도 아닌 그저 ‘이영지인 이영지’

한국 사회가 ‘소녀’를 정형화하고 가두려는 공고한 도식과 경계를

자유롭게 밟고 넘으며 짜릿한 파열음을 낸다. 아주 쿨하게

함부로 기특해하지도 숭배하지도 않으며…그냥 아끼며 응원하고 싶다


이영지의 대처는 통쾌하고 또 따끔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예기사가 연예인, 특히 여자 연예인을 조회 수의 미끼로 삼아 고통 속에 몰아넣었는지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으로 활동하며 언론 보도의 탈을 쓴 각종 언어폭력을 견딘 효연은 “와우 영지(이모티콘) 멋쪄”라는 댓글을 남겼다. 무분별한 악플과 이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주요 포털 사이트의 연예기사에 댓글 기능이 사라졌지만, 정작 쏟아지는 저질의 기사는 그대로다. 별걸 다 ‘논란’으로 만들고, 이 과정에서 개인이 어떻게 소모되고 고통받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이영지는 정면으로 들이받았고, 재치 있게 마무리했다. 연예인으로서 매체와 기자를 적으로 돌리지 않고 웃음으로 승화하면서도 이러한 현상의 문제점을 정확히 찌른 것이다.


이영지는 독보적인 캐릭터다. 본인은 연연하지 않지만, <고등래퍼> 최초의 여성 우승자이자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빛난다. 올해 상반기에는 엠넷의 또 다른 음악 프로그램 <굿 걸>에 출연해 한 번을 제외하면 본인이 속한 라운드를 모두 이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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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8일 인터넷 뉴스 사이트 위키트리에 이영지가 직접 작성한 기사의 제목. 위키트리 캡처

최근 이영지가 더욱 ‘핫’해진 이유는 <개그콘서트> 종영 이유로 지목되는(조금 과장되었습니다) 개그 감각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라이브(일명 ‘라방’)와 틱톡,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영지는 라방에서 댓글을 읽으면서 팔로어와 티키타카 하거나,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 챌린지 영상을 찍어 올린다. 순발력과 센스가 좋은 이영지의 라방은 유튜브에 따로 편집본이 올라갈 만큼 인기를 끈다. 유튜브 채널 <영지발굴단>에서는 온갖 콩트를 섭렵하며 끼를 아낌없이 발산한다. 기세를 몰아 출연한 <라디오 스타>는 토크 경쟁이 살벌하기로 유명하지만, 밀리지 않는 입담을 뽐냈다.


이영지는 신나게 놀고 즐긴다. 밥줄이 달렸으니 열심히 한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보는 사람은 안다. 재능 있는 자가 열심히 하는 걸 넘어 즐기기까지 하면 이렇게 흥겹구나. 그리고 이 행동은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청소년 여성, 즉 ‘소녀’를 정형화하고 소비해왔던 도식을 부수며 짜릿한 파열음을 낸다.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겠지만, 지극히 호쾌하고 쿨하게.


10대 때 나는 ‘소녀’라는 단어를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나는 어딘가 그 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덩치도 크고, 자고 일어나면 책에 눈코입이 선명하게 찍힐 만큼 얼굴에 개기름이 많고, 털이 숭숭 난 굵직한 종아리로 달리며 급식을 두 판씩 먹는 내가 소녀라니? 온 세상이 비웃을 것 같았다. 사실 내 주변의 대부분 소녀가 그랬는데 말이다.


도서출판 여이연에서 발간한 <소녀들―K-pop 스크린 광장>(조혜영 엮음, 2017)에서 소녀 담론을 참고하면, 왜 그렇게 그 단어가 실제의 소녀를 소외시켰는지 알 수 있다. “‘소녀’는 오늘날 사람들이 소녀를 떠올릴 때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문화적 관념들, 즉 청순미 혹은 순결 등의 의미론적 내포를 지닌 성별화된 개념이다.”(32쪽) “대중문화에서 소녀는 청순가련, 국민 첫사랑, 국민 여동생, 롤리타, 비타민, 과즙, 4차원, 걸 크러시 등의 다양한 이름 아래”(5쪽), “전형적으로 ‘비행 소녀’와 ‘개념딸’로 양분되어 멸시와 숭배 사이를 진동하는 존재이면서, 그런 진동의 어느 즈음에서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존재이기도 하다.”(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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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끼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있는 이영지의 활약은 그의 인스타그램에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이 스포트라이트와 진자 운동 속에서 소녀에게 마련된 자리는 양극단뿐이다. 순수한 소녀(보호의 대상인 ‘여동생’)거나, 성애적 소녀(욕망의 대상인 ‘어린 여자’)거나. 전자는 ‘깔창 생리대’처럼 보호와 관심을 유발하고, 후자는 성적 물화와 관음을 동반한다. 헛된 환상이고, 만들어진 개념이지만 미디어가 소녀를 재현하는 현실이다.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는 여고생과 성인 남성의 연애, 노골적인 여고생 성적 대상화로 논란이 되었다. 애초에 성인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가 로맨스로 포장하는 음험한 남성 판타지에 다수의 민원이 빗발치고, 폐지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소녀는 주체가 되기 어렵다. 책 <소녀들>에서는 신자유주의에서 소녀가 새로운 주체로 등장한 면을 다루기도 하는데, 매우 중요한 논의지만, 지면 관계상 넘어간다.


소녀를 정의하고 가두려는 공고한 도식과 경계를, 이영지는 자유롭게 밟고 넘어선다. 라방에서 꽈당 넘어질 때처럼 웃으며 미끄러지고 구질구질한 것은 탁 털어버린다. 굳이, 굳~이 기존의 잣대로 나누자면 이영지는 순수한 소녀에 좀 더 가깝다. 약간의 애틋한 가정사가 있는, 랩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서바이벌에서 우승한, 돈 벌어서 할머니 침대 사주는 ‘기특한’. 그러나 하던 버르장머리대로 이영지에게 접근했다가는 혼쭐이 날 것이야~! 자신을 ‘오빠’라고 지칭하는 시청자의 댓글을 보고, 이영지는 그 단어를 발음하지 못한다면서 구역질하는 시늉을 한다.


가정사를 궁금해하는 질문에도 제작진이 원해서 썼을 뿐이고, 딱히 자기 인생의 고된 부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으며, 하면 하는 거고 말면 마는 거라고 선을 긋는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과 ‘자기 연민’의 경계를 짚지 못해 허우적대던 그간의 무수한 힙합 가사와 차별화되는 산뜻함이 놀라울 정도다.


이영지는 여동생도, 어린 여자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노래 가사처럼, 이영지다. 능숙하게 화장을 하고 취향에 맞춰 염색과 네일아트를 하는가 하면, 맨 얼굴로 온갖 표정을 짓는다. <영지발굴단>에서는 있는 힘껏 입을 벌려 커다란 햄버거를 ‘허버허버’ 먹고 돌돌 말린 롤 머리를 한 채 콧수염을 그린다. 무대에서 무엇이 멋있는지 잘 알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외모를 연출하지만, 세상의 기준대로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이영지의 중심은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추 같다. 자퇴도 안 했고 타이도 풀어헤치지 않았으니 힙합이 아니라는 농담을 들었던 이영지가 가장 자유롭고 대범하다.


<고등래퍼> 방영 당시, 이영지의 무대를 보면서 환호하는 여고생 관객을 볼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여기저기서 날아다니는 이영지를 볼 때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이영지를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2020년에 10대를 보낸 여성 청소년은 이영지라는 존재가 없던 시절과는 명백히 다른, 고유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롭고 다른 레퍼런스의 출현은 존재 그 자체로 가능성이다. 또한 타인을 배려하고,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시야는 개인의 성숙도를 단순히 나이로 측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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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이영지는 한 인터뷰에서 스무 살이 되면 ‘봉인 해제’ ‘광기의 연속’이라고 예고(?)했다. 청소년이라서 받는 ‘우쭈쭈의 벽’이 사라지고 질타의 촉이 날카로워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래도 미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더는 소녀가 아니게 된 이영지에게는 또 다른 위험과 가능성이 올록볼록 솟아날 것이다. “속도는 중요치 않은 장기전임을 눈치”(이영지, ‘나는 이영지’)챈 이영지는 그 굴곡조차 멋있게 드라이브할 준비가 된 듯하다. 그러니 그를 함부로 기특해하지도, 필요 이상 숭배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아끼고 살짝 사랑하며 응원하고 싶다. 한껏 가지를 뻗은 재능이 틔우는 잎은 본 적 없는 색과 모양일 테니, 즐겁고 설렐 수밖에.


이진송|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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