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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표쓰고 ‘김밥일주’···“3년 내 김밥 브랜드 만들 것”[주식(酒食)탐구생활 ⑭]

<전국 김밥일주> 저자 김밥 큐레이터 정다현씨 인터뷰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전국 김밥 맛집이라니. 이 문구에 혹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파인 다이닝이 발달하고 온갖 다양한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있지만 소풍이나 나들이에 ‘김밥’을 이길만한 것은 아직 없다. 만만하고 친근한 김밥, 때문에 별 대단한 김밥이 있겠나 싶겠지만 최근 새로 나온 책 <전국 김밥 일주>(가디언)는 이 같은 고정관념을 날려버리며 호기심을 폭발하게 만든다. 700일 동안 전국 400곳의 김밥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고르고 골라낸 136곳의 김밥집을 꼭꼭 눌러 담았다. 그가 찾아다닌 곳은 맛있고 특이하고 오래된 곳들. 책을 들여다보면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가 어쩌면 이토록 다양할 수 있을지, 도대체 이렇게 조합된 김밥은 어떤 맛을 낼지 궁금해진다. 김과 밥, 소금만으로 만든 소금김밥, 불맛 가득한 숯불고기를 먹는 듯한 직화우엉김밥, 입으로 넣었는데 코로 고소함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야채김밥,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는 전설을 가진 유부김밥, 젓가락으로는 집을 수 없어 비닐장갑을 끼고 먹어야 한다는 쌈김밥 맛을 한번 상상해 보자. 꼬시래기, 박고지, 톳, 시래기, 더덕장아찌도 어엿한 김밥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전국의 웬만한 맛집은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책에 소개된 김밥집 중 먹어본 곳은 고작 6곳.


‘김밥 큐레이터’라는 이름을 내건 저자 정다현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왕이면 애정하는 김밥집에서 함께 김밥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최근에 맛있게 먹었던 홍제역 근처 ‘다시밥’에서 만나자”는 답문이 왔다. 책에서 소개한 리스트에 없는 김밥집.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곳의 김밥집을 찾아다닌다더니 출간 이후에 새롭게 찾은 곳이었다. 약속 시각 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한 그가 주문해놓은 메뉴는 고추장아찌와 참치를 섞은 고참김밥, 게살유부롤초밥, 무떡볶이다.


“여기 유부초밥 재료가 조화롭게 섞이면서 정말 맛있어요. 고참김밥은 담백한 참치에 알싸한 고추장아찌로 포인트를 줬고. 무떡볶이는 달큰한 무 덕분에 국물이 엄청 시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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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가 골라준 김밥이니 어련할까. 그의 말처럼 시원하고 포인트가 있고 맛있었다. 평소 먹는 걸 좋아하지 않고는 이런 분석이 쉽지 않다고 하자 그는 “돌이켜보니 20대의 대부분은 먹는 것과 관련된 일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1993년생인 그는 은행 입사를 준비하던 평범한 취준생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친구와 바람 쐴 겸 산에 올랐다가 땀 흘리는 등산객을 보며 얼음 커피를 팔았고 코레일에서 주최한 ‘청년 보부상’ 프로그램에 지원해 강원도 지역을 무작정 돌며 육포를 팔러 다니기도 했다. 웬만한 넉살 아니고선 ‘뻘쭘’하기 그지없을 일들에 재미를 느꼈다. 원래도 꽂히면 덤벼들고 생각나는 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스타일인 그의 마음에 불을 지핀 건 우연히 읽게 된 자기계발서 <미친 실행력>이었다. 저자에게 연락을 했고, 그의 열정을 알아본 저자는 마침 준비 중이던 수제버거 창업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연고도 없는 전주에 내려가 열정만 갖고 창업멤버로 일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체계적 경험을 제대로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랜드에 입사했다. 외식사업부 마케터로 3년간 일했으나 관련 없는 부서로 발령나면서 사표를 냈다.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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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김밥일주

-그게 김밥이었나요?


“물론 어릴 때부터 김밥은 좋아했지만 김밥 생각으로 그만둔 건 아니었어요. 주로 했던 것이 음식 관련 일, 그리고 마케터로 일하며 쌓게 된 사회관계망서비스 능력을 살려 먹스타그램을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누구나 인스타그램으로 성공하길 꿈꾸지만 쉽지 않은 게 문제죠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먹음직스러운 사진도 잘 찍고 맛집 고르는 안목이나 트렌드 보는 감각이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거기다 재미있는 글로 승부수를 띄워보겠다는 자신감 같은 게 있었죠. 남들이 다들 사진에만 집중할 때 전 ‘낙곱새가 달덩이 두 개를 품었다’ ‘초록 우동면, 슈렉의 머리카락인가’ 하는 식으로 썼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2020년 10월 시작했던 그의 먹스타그램은 1년도 안 돼 10만 팔로워를 끌어모았다. 그렇다.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음식 인플루언서 ‘푸글’(foogeul)이 그였다. 반전은 또 있다. 계정 하나도 제대로 키우기 힘든 이 바닥에서 그는 이미 또 다른 영역의 인플루언서였다. 2016년부터 시작했던 등산이다. 심지어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도 다녀왔다.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최고점인 베이스캠프까지 2주에 걸쳐 훑었다고. 그것도 <일생에 한번은 히말라야를 걸어라>는 책을 읽다 마음이 꿈틀거려 저자에게 연락을 했고 자세한 조언을 구하며 등반을 준비했다.


-요즘 말로 ‘실행력갑’ ‘노빠꾸’ 인생이네요. 아무튼, 어쩌다 김밥을...?


“푸글을 1년 정도 하다 보니 회의감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어느 순간 보니 사람들이 원하는 구도의 사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비주얼의 음식만 찾아다니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원점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민했죠. 그게 김밥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우리 집 최고의 외식 메뉴는 김밥이었던데다 지금도 일주일에 3, 4회는 김밥을 먹거든요. 떡볶이며 만두, 튀김, 순대 갖고는 온갖 이야기들이 많은데 김밥 갖고 이야기하는 건 거의 없더라고요. 잘하면 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확신같은 게 생겼어요.”


-그런 다음에는요?


“푸글 팔로워들에게 제 취지를 알리고 추천을 받았죠. 동시에 저도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70~80여 개 명단을 추렸어요. 그러곤 부산, 대구, 대전 같은 큰 도시 중심으로 움직였어요. 그게 2021년 9월이었어요. 3주간 한 80곳 정도? 초창기 며칠간 욕심내서 하루에 5, 6곳을 가다 보니 제 자신이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된 것 같더라고요. 즐겁자고 한 일인데 말이죠. 한 집에서 김밥 한 줄만 시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여러 종류를 사다 동네 분들과 나눠 먹기도 했어요.”


-그게 1차 김밥여행이었네요.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요?


“3주간 먹고 마신 것만 따지면 100만원 정도 돼요. 그다음부턴 비용이나 여러 문제 때문에 장기여행 대신 2~3일씩, 혹은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다니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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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올 초까지 전국 400군데의 김밥집을 돌았다. 관심사만 눈에 보인다더니, 어딜 가든 김밥집만 눈에 들어왔다. 다니다 보니 “저긴 들어가 봐야겠다”는 느낌이 온다나.


선별하는 김밥집의 기준은 맛과 포인트, 이야깃거리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김과 밥, 속 재료의 밸런스다. 하나만 무너져도 맛이 겉도는 김밥은 쉽고 만만해 보이나 어려운 요리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책에는 고르고 골라놓은 김밥집 중에서도 ‘또 간 집’으로 분류된 곳이 10곳 있다. “맛있는 데다 자꾸 생각나는 집”이라고 했다.


지금도 김밥 여정을 계속하는 그는 김밥의 모든 것을 정복하고 싶다는 욕심에 얼마 전엔 요리학원에 등록해 김밥 싸는 법까지 배웠다. 따라 하고 싶은 김밥 만드는 법을 올려볼 요량으로 최근엔 유튜브에 ‘밥풀이네 김밥집’이라는 계정도 만들었다. 김밥여행을 시작하며 기록을 위해 개설했던 인스타그램 계정(gimbapzip)도 1년 만에 11만명에 이르는 팔로워를 모았다. 이쯤 되면 인플루언서 되는 비기(祕器)라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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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김밥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뭔가요.


“곱창이요! 하지만 곱창은 너무 비싸니 김밥처럼 집착하지는 못해요.”


-앞으로 김밥을 갖고 더 풀어볼 계획이 있나요?


“제 이름으로 김밥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3년 내에 뭔가 해보는 것이 목표예요.”


-이런 추진력이라면 뭐. 부모님이 얼마나 대견해 하실까요.


“아녜요. 지금도 공무원 시험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ㅠㅠ”


재기발랄한 정보가 가득 모인 그의 책에서 받은 충격 하나가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김밥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통영의 충무김밥일진대, 그가 꼽은 넘버원 충무김밥은 통영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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