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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쌀 논산

(99)논산 화지시장·연산시장

지난 18일, 명절을 앞두고 원래 정한 목적지는 속초였다. 숙소 예약까지 했다가 내륙의 논산으로 바꾸었다. 지난 4년 오일장을 다니는 동안 한겨울 내륙의 오일장을 간 적이 거의 없다. 몇 년 전 진도 오일장 날짜를 잘못 알고 간 다음에 부랴부랴 취재한 문경이 유일하다. 한겨울에 내륙은 하우스 채소 외에는 거의 없거니와 겨울 바다는 끝없이 맛있는 것을 내주기에 겨울은 무조건 바닷가였다. 그런데도 논산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논산은 오랜만이다. 예전에는 논산에 옻칠공방이 있어 자주 갔다. 장수 곱돌, 경주 생활 자기, 영암 토기 등을 취급할 때 논산에서 생산하는 옻칠 제품이 좋아 자주 갔었다. 20년 전 산 제품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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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에서는 봄이 가기 전에 먹어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딸기와 도토리묵.

논산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군대의 도시다. 젊은이들에게는 잠시 동안 절망의 도시다. 훈련소 입대하는 청년에게 젊은 시절 이보다 더 큰 절망감은 없다. 그런 도시 논산의 겨울은 사실 달콤하다. 한겨울 속초보다 논산을 선택한 이유다. 논산은 우리나라에서 딸기 생산의 메카다. 2010년도 전에는 겨울에 딸기 나오는 때가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 진주 등 남쪽에서 나오던 딸기가 논산에 다다르면 얼추 2월,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먹고 있는 국내산 딸기잼의 상당수가 논산 딸기로 만든 것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먹는 딸기라테의 재료 또한 논산 것이 많다.

논산하면 훈련소? 청춘들에겐 서글픈 지역일 수 있지만 

논산은 딸기 생산의 메카 ‘달콤한 도시’


설 대목 앞둔 화지시장엔 전과 떡이 수북…

다른 시장과 다르게 홍어무침 파는 곳 유독 많아


연산시장 도토리묵밥은 기분 좋은 쌉싸래함에 한 그릇 뚝딱…

메뉴 하나로 승부 보는 한우도가니탕 집은 ‘국물이 끝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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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의 겨울은 딸기향으로 달콤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먹는 딸기라테의 원재료 역시 논산 것이 많다.

논산에서 오랫동안 딸기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을 이번 출장길에 만났다. 요새 딸기 재배 추세는 양액재배, 성인 허리 높이까지 올린 베드 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방법이다. 고설재배라 한다. 현재 딸기 재배 방식의 60% 가까이가 고설재배로 나온 딸기다. 고설재배는 고령화 농촌에서는 필요불가결한 농법이다.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니 농촌에서 환영받는다. 외국인 노동자 또한 그렇다고 한다. 


한 가지, 아직은 고설재배가 토경재배(흙에서 재배하는)를 넘지 못하는 것은 맛과 향이다. 고설재배로 당도는 일정 이상 올릴 수는 있지만 씹는 맛과 향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일이 꼭 단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비단 과일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 식재료가 향이 좋아야 한다. 논산 로컬푸드 매장에 가면 고설재배와 토경재배를 구별해서 판매한다. 오가다 들른 주민들이 먼저 집는 것이 토경재배 딸기다. 


필자 또한 그렇다. ‘700도, 35일’을 알면 딸기를 다 안다는 이야기를 농부에게 들었다. 꽃이 핀 다음 매일 쌓인 딸기 체온의 총 온도가 700도에 다다르면, 꽃 피고 날짜가 35일 지나면 딸기는 빨갛게 익는다고 한다. 쌓인 온도와 시간이 맞지 않으면 무르거나 단단하거나 딸기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맛있는 빨간 딸기는 35일 지나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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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목을 목전에 둔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반찬 가게에서는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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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시장 근처에서 파는 한우 도가니탕. 국물 한 술 뜨면 구수한 향이 입안을 감싼다.

논산 오일장은 있지만, 없다. 논산 화지시장 오일장(3, 8일)과 강경 오일장(4, 9일)이 있다. 정해진 날짜가 분명히 있어도 오일장은 없고 상설시장만 있다. 오일장이 활성화되면 오일장은 상설시장이 된다. 일전의 정읍 오일장처럼 말이다. 논산이 정읍과 같았다. 오일장을 기대했지만 반기는 것은 상설시장이었다. 


설 대목을 목전에 둔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반찬 가게는 다양한 전을 준비하고 부치고 있었다. 떡집마다 가득 쌓아 올린 쌀떡이 명절이 코앞에 왔음을 말한다. 작년 봄, 참외의 고장 성주에서는 참외 구경하기 힘들었다. 논산은 성주와는 달리 딸기 구경하기 수월하다. 딸기잼을 발라 구운 딸기빵은 그냥 지나쳐도 딸기 과육이 듬뿍 든 딸기 우유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한 바구니 가득 담긴 딸기를 5000원에 파는 할매 또한 외면하기 힘들었다. 


화지시장의 긴 중앙통로 주변은 활기가 넘쳤다. 상품도 가득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오일장이 사라질 만했다. 시장을 둘러본다. 음식을 파는 곳과 옷 파는 곳 경계가 확실하다. 활기가 넘치는 곳은 식품 파는 곳, 없는 곳은 옷 파는 곳이다. 옷 파는 곳에 유행처럼 번진 청년몰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니 개점휴업 상태다. 어른들도 활성화하지 못하는 것을 왜 젊은이들에 떠넘기는지. 볼 때마다 답답하다. 논산 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면 특징이 하나 있다. 다른 시장보다 홍어무침 파는 곳이 유독 많다는 것이다. 다른 충청권은 어쩌다 보였고 전라도는 홍어 파는 곳은 있어도 역시나 무침 파는 곳은 드물었다. 심지어 어떤 한 곳은 홍어를 사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하도 궁금해 식당 주인에게 물어봤다. 묵을 파는 곳이었지만 메뉴에 홍어무침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물었다. “여기 분들 홍어 아주 좋아하시네요.” “논산 일부가 예전에는 전라북도였어요. 실제로 가깝기도 하고요.” 논산의 남쪽은 전북 완주와 익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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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떡을 가득 쌓아 올린 떡집 사장님 손도 분주하다.

화지시장 구경을 끝내고 식사를 위해 연산시장으로 갔다. 문 연 곳도 드문 연산시장 입구에 도토리묵 식당을 찾아갔다. 굳이 줄 서는 화지시장 순댓국집을 두고 20여분 거리의 식당을 찾아간 이유는 지금 먹어야 할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맛으로 가장 빛나는 것 중 하나가 도토리묵이다. 

묵도 맛있을 때가 있다. 도토리 가루가 힘을 잃지 않은 늦가을부터 초봄 사이가 도토리묵 먹기 딱 좋은 시기다. 이때의 묵은 도토리 특유의 쌉싸래한 맛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름의 맹숭맹숭한 맛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묵밥을 주문했다. 이내 간단한 반찬과 묵밥이 나왔다. 밥을 말기 전 채 썬 묵부터 맛봤다. 부드러운 질감의 묵은 이내 사라지고 긴 여운의 쌉싸래한 맛만 남는다. 밥을 말고 본격적으로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반찬이 있어도 손이 안 간다. 묵밥에 이미 송송 썬 김치가 있기에 다른 찬이 필요 없다. 먹고 또 먹으니 입안에서 기분 좋은 쌉싸래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끝에는 밥보다도 남은 묵 먹는 것이 더 좋을 정도다. 따로 묵을 팔면 좋을 성싶지만 없어서 아쉬웠다. 묵밥, 묵비빔밥, 묵사발(묵밥보다 묵 양은 많고 밥이 없다)도 좋다. 여럿이 간다면 묵무침에 도토리해물파전, 홍어무침 보쌈까지 나오는 정식을 추천한다. 봄이 가기 전 꼭 맛봐야 하는 음식이 도토리묵이다. 

연산시장 도토리묵 041-735-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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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전북이었던 논산. 시장에는 홍어무침 파는 곳이 많고 심지어 긴 줄이 늘어선 상점도 있다.

이번 논산 여행에서 특징은 한 놈만 패는 식당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찾는 식당의 특징은 다양성에 대비한 다양한 메뉴다. 고깃집만 하더라도 소고기에 돼지고기까지 준비한다. 찾아간 집은 또 연산시장 근처다. 


여기는 메뉴 고를 필요가 없다. 딱 하나, 한우 도가니탕만 판다. 점심때 조금 지나서 찾아간 식당은 일반 주택을 개조한 곳이다. 때가 지났어도 주차한 차가 제법 많았다. 혼자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으니 바로 탕이 나온다. 메뉴 선택할 필요가 없으니 들어오는 인원수만 본다. 김치 두 종과 탕과 밥. 메뉴만큼 차림새 또한 간단하다. 도가니뼈와 뼈를 둘러싼 힘줄을 끓인 탕이다. 


도가니 뼈는 소의 무릎뼈다. 무릎뼈 주변을 힘줄(스지)이 감싸고 있다. 도가니탕에 도가니뼈는 들어 있지 않고 힘줄만 들어 있다. 갈비탕에서 갈비뼈 빼고 고기만 먹는 것처럼 도가니뼈는 국물만 내고는 힘줄만 먹는 것이다. 힘줄에는 콜라겐 성분이 많아 피부 미용에 좋다고들 한다. 말 좋아하는 누군가가 만들어 낸 말이다. 콜라겐은 단백질이다. 단백질은 체내에 들어가면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이는 우유, 고기, 달걀을 먹은 거나 마찬가지다. 분해된 단백질은 체내에서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합성이 된다. 합성에 필요한 아미노산은 우유에서 왔는지 콜라겐에서 왔는지 구별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합성한다. 


세상에 쓸데없는 일들이 꽤 있지만, 피부에 좋다고 콜라겐을 바르거나 먹는 일도 그중 하나다. 국밥이나 설렁탕, 순댓국은 뜨거울 때보다는 조금 식었을 때 맛을 봐야 한다. 뜨거울 때 지나 국물 맛을 보면 구수한 향이 입안을 감싼다. 이 집 국물 참 좋다. 도가니탕에 알맞게 담근 김치가 옆에서 호응하는 탓에 금세 뚝배기 바닥이 드러난다. 고향식당 041-73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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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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