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수박은 꼭지가 싱싱해? 시들해?
[지극히 味적인 시장]
전국에 수박으로 이름난 곳이 많지만, 경남 함안을 빼면 섭섭하다. 날짜에 5, 0이 든 날에 열리는 함안 오일장에서도 수박이 턱허니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봄과 여름이 교차한다. 봄것은 내년을 기약하며 들어가고 있었다. 여름것은 겨우 모양만 갖춘 것들이다. 과학으로, 기술로 농사를 짓더라도 아직은 제철 농산물의 맛은 따라가지 못한다. 2000년도부터 전국 출장을 다녔다. 지금은 시장 출장이 대부분이지만 그때는 산지 출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충 다녀본 거리를 따지면 100만㎞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새 차를 산 적이 있다. 거의 0에서 시작한 차가 5년 뒤에는 36만㎞였다. 제주도는 적어도 수십 번을 갔으니 그 언저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기차로 다닌 것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녔음에도 여기는 간 적이 없다. 그 당시, 마산(지금은 창원)에서 통영과 거제를 간 적이 있다. 그 중간에 점심 먹은 기억만 어렴풋이 있다. 그랬던 곳의 이야기, 경상남도 함안 오일장 이야기다.
전국 시설재배 수박의 17%가 함안…수확하고 일정 기간 지나야 당도 더 높아져
고기·콩나물 육수 조합이 일품인 국밥과 간장 베이스 비빔밥도 일미
함안은 여러 가지 특산물이 난다. 5월부터 함안은 수박이다. 수박으로 이름난 곳이 많다. 그중 함안이 빠지면 섭섭하다. 전국 시설재배 수박의 17% 정도를 함안이 책임지고 있다. 여름과 겨울 상관없이 사시사철 나는 곳이 함안이다. 50대인 필자의 여름은 수박의 계절이었다. 여름이 되면 수박 고르는 요령이 신문이나 TV 뉴스에 나오곤 했다. 두들겨서 맑은 소리가 나는 것, 꽃 떨어진 자리가 작은 것, 검은색 무늬가 짙은 것 등등이 매년 토씨만 다른 내용으로 반복했다. 지금도 가끔 그러라고 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전국 대부분 수박 산지가 시설재배다. 하우스에서 재배한다는 이야기다. 수박은 91% 이상이 수분이다. 수박의 어원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박과 식물 중에 물이 가장 많은 박이 수박이란 것은 분명하다. 수박을 수확하기 전에 하우스에 물 공급을 중단한다. 대략 일주일에서 열흘 전이다. 물이 끊긴 수박은 당도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비가 오더라도 그 영향이 노지에 비해 작다. 요새 수박은 다 달기에 그냥 먹기 좋은 크기로 고르면 된다. 다만 꼭지를 봐야 한다. 꼭지가 싱싱한 것과 마른 것 중에서 필자는 마른 것을 고른다. 수박은 수확하고 일정 기간 지난 것이 당도가 좋다. 같은 당도라도 수분이 적은 것이 당도가 좋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싱싱한 꼭지를 보고 사간다.
비빔밥 |
함안 오일장은 5, 0이 든 날에 열린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도 가까이 있어 시장 구경과 고분 구경을 같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야시장과 나란히 장이 선다. 가운데 공원을 두고 평소에는 차가 다니는 길에 장이 선다. 차가 다니는 길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운데 공원에는 이웃 마을에서 나온 할머니들이 봇짐을 풀고 있다. 기다란 시장 따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장 탐색부터 한다. 처음 간 시장은 탐색이 먼저다. 이른 아침에 나오셨는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손님을 기다리던 할머니가 잠시 졸고 있다. 옆에 있는 할머니는 또 그러는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할머니들은 손님이 오면 장사를 하다가, 가면 이야기 삼매경이다. 팔면 좋고 안 팔아도 상관없다는 표정들이다. 수박을 사갈까 하다가 말았다. 어제 농협에서 본 까망 수박을 살 생각으로 미뤘다가 이마저도 잊었다. 시장 한편에 하동산 고사리가 있다. 봄 기온이 낮고 비가 오지 않아 고사리 값이 금값이라 한다. 고사리를 보면 고사리를 좋아하셨던 엄마 생각이 절로 난다. 육개장 생각도 난다. 육개장 할 때 고사리가 빠지면 국밥이 되기 때문이다. 육개장에는 고사리와 토란대가 필수다. 장터는 여름과 봄이 교차하고 있었다. 제피 잎이 보이기에 욕심까지 부려 많이 샀지만, 잎도 크고, 봄날의 산청에서 샀을 때와 달리 향도 약했다. 개시라 좋아하던 웃음 띤 할머니 얼굴을 봤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옻순과 가죽순 중에서 옻순을 샀지만, 가죽순을 사야 했었다. 옻순도 쓴맛만 가득했다. 시장 구경 다니면서 ‘아 이제는 여름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것이 보였다. 봄과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각각 씨감자와 고구마 순이다. 장터에 씨감자가 보이면 봄 시작이고, 고구마가 보이면 여름 시작이다. 봄에 심었던 감자가 나올 무렵 고구마는 한창 자라고 있을 것이다. 감자 수확이 끝날 때 고구마 수확 시기와 함께 가을이 우리 곁에 와 있을 것이다.
국밥 |
지난번 창녕 오일장에서 수구레국밥 이야기를 했었다.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던 곳의 식문화가 고깃국이다. 보통은 장터 국밥이라는 이름으로 가맹점까지 생길 정도로 대중화한 음식이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일본에 카레나 우동이 있다면 우리는 설렁탕, 곰탕, 국밥 등이 있다. 우시장이 있던 함안 또한 국밥이 남아 있다. 함안역이 있는 함안면에 시장은 사라지고 국밥집은 남아 있었다. 장날이 일요일, 토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가보니 세 곳 국밥집 모두 개점휴업 상태. 재료가 떨어져 손님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있었다. 다시 읍내로 가서 방아잎을 잔뜩 넣고 추어탕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생각했던 숙소와 가까운 국숫집도 문을 닫았다. 읍내를 몇 바퀴 돌았다. 무엇인가 느낌이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밀면 |
눈에 들어오는 간판의 단어 ‘밀면’. 생각해보니 시장 다니면서 밀면을 먹은 적은 없었다. 밀면 또한 시원한 맛을 더해 먹는 냉면의 일종. 시원한 육수에 매콤한 양념장, 쫄깃한 면발이 어울리는 음식이다. 이북식 냉면과 맛의 결이 다른 경남과 부산의 맛이 밀면이다. 들어가 밀면 하나를 주문했다. 비빔과 물 밀면과 만두 세 가지만 한다. 만두는 주문하려다가 말았다. 메밀만두지만 공장 생산 만두를 그 가격 주고 먹을 생각은 없다. 전국에 있는 메밀만두 대부분이 공장에서 만든 것을 데워 나올 뿐이다. 가격은 수제 수준이지만 말이다. 돌고 돌아 선택한 밀면은 만족스러웠다. 밀면에서 기대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맛이었다. 다만 수육이 없어 아쉬웠을 뿐이다. 아라밀면 (055)583-1882
다음날 장터 구경을 끝내고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국밥 거리로 갔다. 국밥 거리라고 해봤자 세 집뿐이다. 한 집을 골라 들어갔다. 두 번째 손님이었다. 육수를 내는 솥과 커다랗게 쌓인 콩나물이 눈에 띈다. 주방 앞에는 덜어낸 육수와 콩나물을 넣고 끓이는 작은 솥이 있다. 고기와 콩나물의 육수 조합이 함안 국밥의 맛이다. 국물을 맛봤다. 얼큰함이 좋다. 커다란 고기도 제법 들어있다. 몇 번 먹다 보니 옆집의 맛은 과연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무슨 무슨 거리에 가면 있는 수많은 집 중에서 어느 집이 맛있을까 하는 생각을 보통 한다. 필자는 아무 곳이나 줄 서지 않는 곳에 들어간다. 굳이 시간 들여서 먹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집에서 국밥을 주문했다. 만드는 방식은 옆집하고 같다. 나온 국밥의 국물을 맛봤다. 첫 번째 집보다는 부드러웠다. 내용물은 얼추 비슷, 국물이 첫 번째 집은 매콤했고, 두 번째 집은 덜 매웠다. 해장이라면 두 번째, 얼큰한 것이 생각날 때는 첫 번째 집을 선택할 듯싶다. 어디가 더 맛있냐는 중요하지 않다. 둘 다 맛있고 둘의 차이가 미묘할 뿐이다. 대구식당 (055)583-4026, 한성식당 (055)584-3503
첫날 점심으로 선택한 것은 비빔밥이었다. 비빔밥도 전주, 진주의 육회 비빔밥과 하동의 헛제삿밥이 유명하다. 지역마다 맛난 곳이 많아도 대충 그렇다. 함안도 비빔밥이 맛있는 곳이 있다. 비빔밥을 주문하면 한 명이 가도 막 부친 정구지(부추)전이 나온다. 정구지전 때문에 간 것은 아니다. 비빔밥을 먹는 환경이 다른 곳과 사뭇 달랐다.
메뉴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조용히 브런치 먹으면서 이야기 나눌 만한 분위기였다. 이런 곳서 ‘비빔밥’을? 이런 호기심에 끌려서 갔다. 비빔밥을 주문하니 앞서 이야기한 전 한 장과 찬이 차려졌다. 이어 비빔밥, 다른 곳과 달리 고추장이 없다. 대신 양념간장이 밑에 깔려 있다. 비비다 보니 조금 모자라서 더 청했다. 간장, 고추장, 파, 고추를 넣고 만든 양념장이다. 맛을 보니 콩나물 비빔밥과 같은 맛이 났다. 콩나물 비빔밥 또한 양념장으로 비비기 때문일 것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약간 허기진 것도 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났다. 함안 하면 수박보다 여기 비빔밥을 먼저 떠올릴 듯싶다. 문득 그리움 (055)583-1666
올라오는 길 밀양에 잠시 들렀다. 회사에서 계약 재배한 초당옥수수 산지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초당옥수수 보러 가는 사이 보리밭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달곰한 초당옥수수 맛을 봤다. 여름이 입안에 있었다. 함안에 간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함안 ‘불빵’이다. 도깨비 모양을 한 빵이다. 전국에서 맛본 빵 중에서 단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서 잘 만들었다. 모양만 따라 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잊으면 손해다. 마틴 베이커리 (055)582-0011
김진영 식품 MD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