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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YG전자’, 그들의 블랙코미디에 웃을 수 없는 이유

YG가 스스로 YG를 희화화하는데서 오는 풍자

블랙코미디와 멍청한 희롱의 차이 인지하고 있는 'YG전자'

 

...그럼에도 이전과 달리 왜 비판에 휩싸였냐고?

달라진 것은 현실…젠더 감수성·윤리성 엄격해져

‘병맛’ 코미디가 배제·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아는 사회

 

현실의 상식 지대가 단단해야 웃을 수 있는 판 마련돼

한국 사회, 블랙코미디 지탱할 기반 취약

넷플릭스 ‘YG전자’, 그들의 블랙코

1일 넷플릭스 시트콤 'yg전자' 제작발표회에 참여한 승리(가운데)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시트콤은 ‘병맛웃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팬들로부터도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엠넷의 모큐멘터리 쇼 '음악의 신'이나 '방송의 적'을 보면서 낄낄대는 것은 원래 ‘길티 플레저’에 가까웠다. 연예인의 사생활과 치부를 농담의 소재로 삼고, 그간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더러운 농담과 성적인 농담을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보여주며, 현실과 가상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당시 '음악의 신'을 비롯한 이 프로그램들은 실험적 형식과 블랙코미디적 웃음으로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후 수년에 걸쳐 같은 형식의 프로그램이 여럿 만들어졌고 이미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돼 어느 정도 대중의 검증을 받은 듯했다.


최근 비판을 받으며 팬들의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넷플릭스 'YG전자'가 그 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같은 피디가 만든, 같은 장르의 이 쇼가 과거와 달리 특별히 더 위험한 수준의 농담과 장난을 치고 있나? 그렇지는 않다. YG에 영입된 박준수 피디가 'UV신드롬'(2010)으로 처음 시작하고 '음악의 신'(2012)으로 대박을 터뜨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그림자와 연예인의 사생활을 소재로 만드는 ‘병맛’ 모큐멘터리 쇼. 문제적 연예인의 ‘셀프 디스’, 19금 농담, 인터넷 ‘짤방’과 ‘밈’의 활용, 실제 연예인이 가진 캐릭터의 희화화, 동시에 실제와 다른 신선한 캐릭터의 발굴 등 'YG전자'가 추구하는 웃음의 요소는 박준수 피디가 그간 해왔던 프로그램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음악의 신'과 'YG전자' 사이

'YG전자'는 기피 부서인 ‘YG전략자료본부’로 좌천된 빅뱅의 승리와 전략자료본부 직원들이 위기의 YG를 살려내 다시 양현석 회장의 사랑을 받으려 벌이는 바보 같은 일들을 다룬다. 'YG전자'가 주는 풍자의 감각은 대부분 이 쇼를 YG 스스로 만들었다는 데서 온다.


가장 크고 주된 농담은 마약에 관한 것이다. ‘약발의 와이지’라는 잘못된 현수막이 등장하거나, ‘클린 와이지’ 캠페인을 벌이며 소속 연예인들의 소변 검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연출하거나, 마약 사건에 휘말린 과거 소속 가수 박봄이 등장해 본인을 ‘디스’함으로써, ‘약쟁이 왕국’의 자기 희화화를 꾀한다.

넷플릭스 ‘YG전자’, 그들의 블랙코

시트콤 'yg전자'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을 스스로 희화화한다.

또 하나의 주된 농담은 수장 양현석에 관한 것이다. 매회 첫머리에 양현석의 말이 명언처럼 등장한다. ‘자식이 행복한 모습을 봤을 때 부모는 가장 행복하다’ ‘나무도 자리를 옮기면 아프거나 죽는다’와 같은, 명언 축에는 끼지도 못할 되도 않게 진지하거나 하나마나 한 말들이다. 그것은 명백히 양현석의 평소 면모를 희화화한다. 양현석의 ‘흑역사’로 통하는 ‘악마의 연기’도 웃음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YG와 소속 연예인을 둘러싼 수많은 가십들이 소재거리다. 승리의 라면집 사장과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승츠비’ 캐릭터, 과거 스캔들, 군대 간 빅뱅 멤버들 없이 ‘꼬다리 멤버’로 남은 상황 등이 반영되고, 최근 탈퇴로 이슈가 된 과거 멤버를 데려오거나, 양현석의 처남 이재진과 지누션의 지누와 유병재가 현실을 연상케 하는 찌질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아이콘·위너·블랙핑크 등 소속 인기 아이돌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선을 넘나드는 더러운 농담, 성적인 농담, 즉흥적으로 연출한 부조리한 상황 등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여전히 등장한다. 과거 TV방송 때와 달리 욕설도 무음처리 없이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넷플릭스 ‘YG전자’, 그들의 블랙코

시트콤 'yg전자'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을 스스로 희화화한다.

블랙코미디와 멍청한 희롱은 한 끗 차이다. 길티 플레저는 ‘길티’보다 ‘플레저’ 쪽에 조금이라도 더 무게가 쏠려야 성립한다. 문제는 시청자가 그 쇼를 만드는 자들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을 보고 ‘마음 놓고’ 웃어도 될 것인가 하는 판단. 그 기준은 ‘블랙코미디는 왜 웃긴 걸까?’란 질문이 난해한 것만큼이나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YG전자'가 만드는 웃음은 어디에 속할까. 쇼 자체가 생각 없이 성희롱을 하는 것과, 성희롱이 만연한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반영해 보여주는 것은 다르다. 논란이 된 몸캠, 성희롱, 몰카 장면(모두 남성 대상)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하지만 이 쇼를 만든 이들은 그 차이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 승리가 몸캠 사건으로 미국 법정에 끌려갔다는 상황이 나온다. 여성 아이돌 앞에서 웃통을 벗어 사인을 해달라고 한 직원은 맞거나 제지를 당한다. 더구나 이 정도의 ‘색드립’은 '음악의 신'에서도 줄창 나오던 것이다.

넷플릭스 ‘YG전자’, 그들의 블랙코

'yg전자'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YG 직원을 향해 ‘몸캠’(온라인상으로 신체 노출)을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소속 연예인 성희롱에, 성범죄 미화까지…팬들은 왜 'YG전자' 불매에 나섰나

블랙코미디와 믿음

그럼에도 'YG전자'가 과거와 달리 이토록 비판에 휩싸이는 이유는 뭘까? 달라진 점은 그때와 지금 대중이 받아들이는 민감함과 예민함의 정도일 것이다. '음악의 신2'로부터 불과 2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인권과 젠더 감수성, 윤리성에 있어 대중의 요구 수준은 과거에 비해 한 단계 엄격해졌다. 'YG전자'에는 YG 악플러들을 데려와 승리 본인이 그 앞에서 악플을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의도한 바는 스스로 과거 논란에 대해 욕먹을 판을 만들어 ‘셀프 디스’를 시전하는 것이었을 거다(승리가 “여러분들, 절 때리시면 분이 풀리시겠어요?” 하자 악플러들은 진짜 때릴 준비를 한다). 지금처럼 기존의 악플러가 아니라 자기 팬들에게 욕을 먹는 상황은 아마 YG가 이 쇼를 제작하면서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바일 것이다.


이것은 공교롭게도 이 시리즈의 첫 인기작 'UV신드롬'의 주인공이었던 유세윤의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세윤은 누구보다 창의적이고 총명한 코미디언이었다. 나는 지금도 2011년 지산록페스티벌에서 UV의 공연을 본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때 ‘가상’의 'UV신드롬'이 만들어낸 UV의 ‘실제’ 인기는 어마어마해서, 헤드라이너였던 영국 록밴드 악틱몽키스의 공연 도중 UV의 공연 시각이 되자 관객 상당수가 빠져나가는 사태가 벌어졌고, UV 공연장은 예상 밖의 인파로 터져나갈 듯했다. 모두가 ‘쿨하지 못해 미안해’ ‘집행유애’를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던 그 장면은 가상이 현실화해버린, 그해 만난 가장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첨단의 첨단에 있는 듯했던 유세윤은 불과 몇 년 사이 누구보다 낡고 보수적인 이미지의 코미디언이 돼버렸다. 인권·젠더 감수성이 유례없이 깊이 대중문화 비판의 잣대로 들어오면서 사회 분위기는 달라졌고, 과거 그의 지속적 여성 비하·혐오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는 어느새 어떤 이들이 일단 배제하는 방송인이 됐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혁신으로 보였던 ‘병맛’ 코미디가 실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위험요소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으므로. 말하자면 그는 현실과 밀접한 블랙코미디를 실어 나르는 데 있어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플랫폼이 돼버린 것이다.


'SNL코리아'가 지난해 시즌 9을 끝으로 종영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SNL'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여성의 신체 대상화와 외모 비하와 성희롱, 장애인 비하, 입양인 비하, 암 환자에 대한 부주의한 언행, 어린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 등으로 숱한 논란을 빚었다. 그리고 역시 풍자와 블랙코미디를 지속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플랫폼이 되어버렸다. 시효를 다한 플랫폼은 자연스럽게 퇴장의 수순을 밟는다.


블랙코미디는 현실에 레퍼런스를 가진다. 현실의 상식 지대가 단단할 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판이 마련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조차 상식 지대가 마련돼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선 블랙코미디를 지탱할 기반이 무를 수밖에 없고, 때문에 오히려 한쪽에선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일이 생긴다. 수많은 것이 의심스러워 도저히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 기준이 높아지는 거야 환영할 만하지만, 블랙코미디가 지나치게 경직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이 코미디가 엄숙주의에 납작해지는 안 좋은 신호이기보다 하나의 과정이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조금씩 윤리의 기준이 높아지고 현실의 상식 지대가 조금 더 단단해진 후, 그 위에서 어두운 것들이 보기 좋게 산산조각 나버리는 코미디를 보기 위한 과정. ‘마음 놓고’ 블랙코미디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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