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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즐기며 살아온 우리,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

만화가 이우일·동화작가 선현경 부부

경향신문

키 189cm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는 걱정이 많고 소심하다. 수년전부터 파도타기에 푹 빠져 있다. 여자는 초긍정적이지만 자주 덤벙댄다. 바다수영을 좋아한다. 부부는 정반대의 성격을 서로 보완해주며 재미있게 때론 티격태격하며 살아간다. 지난 8월 22일 이우일·선현경 부부가 서울 연희동 자택 앞마당에서 찻잔을 놓고 마주앉아 웃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백년가약을 맺은 1996년이 시작이었다. 신혼집 얻을 돈을 탈탈 털어 긴 여행길에 올랐다. 유럽 전역과 이집트, 캐나다 등지를 303일간 돌아다녔다. 이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아 몇년 후 <이우일·선현경의 신혼여행기>를 펴냈다. 딸 은서가 태어나자 셋이 다녔다. 1년에 두어 번씩은 꼭 일주일 이상 해외나들이에 나섰다. 본업인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외에 ‘여행하고’도 이 부부의 일상이 됐다. 2015년부터는 아예 낯선 곳에 눌러앉기 시작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2년, 하와이 오아후섬에서 2년을 살았다. 각자 그리고 같이 이곳에서의 생활을 산문집으로 펴냈다. < 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리>와 <파도수집노트>, <하와이하다>가 그렇게 나왔다.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우일씨(53)와 그림동화작가이자 역시 일러스트레이터인 선현경씨(52) 부부 얘기다.


이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은 직장인 독자들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동년배들은 골프나 치러 다니는데 뒤늦게 파도타기에 빠져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어른아이’의 모습은 누구나 맘 깊은 곳에 있을,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놀고 싶은 욕구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대리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지난 8월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이우일·선현경 부부를 만났다. 정원처럼 꾸민 마당이 있는 오래된 2층 단독주택이다. 거실 벽엔 수집가로도 유명한 이우일씨가 사모은 피겨와 프라모델 등 각종 장난감과 책, LP, CD, 비디오테이프, DVD 등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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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와이 호놀룰루 퀸즈비치에서 이우일씨가 고양이 카프카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1996년 결혼 후 신혼집 얻을 돈으로

유럽·이집트 등 303일간 여행 다닌 부부

미 포틀랜드·하와이서 4년간 정착 후 귀국

-2015년 10월 말 미국 포틀랜드로 건너가 살다 2017년 하와이 오아후섬으로 이주했다고요. 한국엔 언제 돌아왔나요.


“2019년 8월에 돌아왔어요. 오아후섬에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자며 아내를 졸라 몇달을 미루다 귀국했죠. 그때 돌아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얼마 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으니까요.”(이우일)


-왜 더 있고 싶었습니까.


“오아후섬에서 파도에 빠져 살았으니까요(웃음). 아내는 집 지하실에 넣어둔 책과 장난감 걱정이 안 되냐고 하는데, 그때 나는 당장 눈앞의 파도만 보였어요. 하지만 아내가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하니 더는 미룰 수 없었어요.”(이우일)


“돌아와 보니 실제로 지하실에 물이 10㎝나 차 있었어요. 수중펌프 모터가 고장나 우리가 미국 가기 전 쓰던 가구들과 책, 장난감이 모두 빗물에 잠겨 있는 거예요. 작가들의 사인이 들어간 고가의 포스터 작품도 다 버려야 했어요. 원래 우리와 계약한 세입자가 예정보다 일찍 이사 가면서 연예기획사가 입주해 있었는데 집도 엉망이 돼 있었어요. 집수리하는 데 6개월 걸렸어요.”(선현경)


부부는 오아후섬에서 살면서 보디보드를 독학으로 처음 시작했다. 보디보드는 오리발을 낀 상태로 엎드려 상체를 보드에 밀착시킨 채 파도를 타는 스포츠다. 평소 걱정을 달고 사는데다 공포심과 귀찮음으로 운전도 안 하던 이우일씨가 여기에 빠진 것은 꽤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수영을 제외하면 모든 스포츠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몸치”다. 그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즐거움으로 인해 도파민 중독상태가 된” 파도타기를 더 자주 누리기 위해 30년간 장롱 속에 처박아놓았던 운전면허를 꺼내 운전을 시작했다. 선현경씨도 보디보드를 즐기지만 남편만큼은 아니다. 이씨가 산문집 <파도수집노트> 사이사이에 그린 삽화를 보면 이우일씨는 철없는 남편, 선현경씨는 그런 남편 뒤에서 혀를 끌끌 차면서도 애정으로 보듬어주는 아내다. 선현경씨는 “남편은 걱정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고 저는 반대로 초긍정적이지만 덤벙대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포틀랜드와 오아후섬은 어쩌다 가서 살게 됐나요.


“포틀랜드 가기 전에 좌절감을 많이 느꼈어요. 내가 그동안 잘 살았나, 괜찮은 작업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잠시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어요.”(이우일)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좀 지쳐 있었어요.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은서(딸)에게 고1 때 1년만 꿀고 하와이에 머물다 복학하면 어떻겠냐고 물었죠. 하와이에 시동생 부부가 살고 있거든요. 은서는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가면 안 되냐고 했어요. 그래서 은서가 검정고시를 치를 동안 일정을 미뤘죠. 또 은서가 여름만 있는 도시가 싫다고 해서 포틀랜드를 선택했어요. 헌책방이 많은 도시이고 맥주가 싸다는 이야기에 꽂혔거든요(웃음).”(선현경)


-보통 부모들과 다르네요. 고등학생 자녀에게 1년간 학교를 쉬라는 것도, 자퇴 후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의견을 선선히 들어준 것도….


“사실은 저도 아이가 자퇴 이야기를 했을 때는 좀 무서웠어요. 하지만 우리 애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꼭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은서는 중학생 때 엄마·아빠와 여행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나라가 네덜란드였고, 그곳 미술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어요. 포틀랜드에서부터 스스로 준비했고, 결국 원하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게릿 리트벨트 아카데미(Gerrit Rietveld Academie)에 입학했어요.”


이 부부의 교육법은 비유하자면 ‘방목형’이다. 공부하라, 밥 먹어라, 씻어라 하면서 쫓아다니지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은서의 수리력이 약하다’는 통지를 받자 ‘부모 모두 수리력이 약하니 그냥 아이를 놀게 해달라’고 답장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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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호놀룰루 북쪽 노스쇼어 비치에서 선현경씨

포틀랜드의 헌책방·맥주에 꽂히고

오아후섬에선 파도타기에 푹빠져

집세·생활비는 한국집 월세와 의뢰받은 일로 충당

-포틀랜드 생활은 어땠나요.


“여행을 오래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곳에서도 떠나기 싫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게 다 있는 것 같았거든요. 100만권이 넘는 책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서점이자 헌책방인 ‘파월북스’를 비롯해 도시의 한 블록이 다 서점이에요. 그래서 음악 듣고 헌책방 가고, 이베이로 레코드·테이프·만화책·장난감 등 각종 빈티지를 구입하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무엇보다 오리건주는 소비세가 없고, 배송료도 안 받아 쇼핑하기 좋은 도시예요. 맥주도 면세점 가격으로 마실 수 있죠. 1년 내내 각종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해요. 물론 우리 가족은 집에서도 꼼지락거리며 잘 놀아요.”(이우일)


선현경씨의 팔에 새겨진 청록색 문신이 도드라져 보였다. 포틀랜드에서 가족 모두 새긴 영구 문신이라고 한다.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슈퍼칼리프래지리스틱엑스피알리도우셔스)라고 쓰여 있었다. <메리 포핀스>에 나오는 마법의 주문으로, 외우고 다니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단어다. 선씨는 “이걸 볼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우일씨의 팔에는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 속 집을 재해석해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껏 자유로워 보이는 이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4년간 해외에서 살면서 어떻게 소득과 생활을 유지했는가일 것이다.


-포틀랜드와 오아후섬에서 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했나요.


“이 집을 월세 250만원에 내줬어요. 그리고 딱 그만큼의 비용으로 빌릴 수 있는 집을 구했죠. 일도 했어요. 우리의 일이 사람 만나서 처리하는 게 아니니까, e메일만 원활하면 문제없거든요.”(선현경)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오전 9시까지 3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어요. 포틀랜드에 가기 전 계약한 책들이 있었거든요.”(이우일)


부부는 홍대 미대 동문으로 10년간 사귀고 결혼했다. 이우일씨는 만화 ‘도날드 닭’과 ‘노빈손’ 시리즈의 일러스트로 유명해졌다. 만화집 <빨간 스타킹의 반란> 이래 <콜렉터>, <굿바이 알라딘>, <옥수수빵파랑> 등의 책을 냈고, 카페 ‘엔제리너스’ 로고를 만들기도 했다. 선현경씨는 2004년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공모전에서 <이모의 결혼식>이 당선되면서 작가로 등단했다. 이후 <하나 둘 셋 찰칵! 김치, 치즈, 카프카>, <엄마의 여행 가방> 등 여러권의 어린이 그림책을 발표했다.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 <선현경의 가족관찰기> 등 일상 에세이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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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포틀랜드 다운타운에서 이우일·선현경 부부가 뒤를 돌아 카메라를 보고 있다.

이우일 “짧은 여행한 것 후회…여러 측면에서 낭비였죠”

선현경 “꼭 그렇진 않아…짧은 여행 있기에 긴 여행 가능했죠”

-1996년 신혼집 얻을 돈으로 303일, 열 달 동안 유럽 전역과 이집트, 캐나다 구석구석을 누볐다고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편도로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했는데 방침상 안 된다고 해서 오픈티켓으로 끊어 갔어요. 유럽이 추워 따뜻한 나라를 찾아 남쪽을 찾다가 이집트까지 갔어요. 이집트 다합에서만 석 달간 머물렀어요.”(선현경)


-얼마의 비용을 가지고 나간 건가요.


“5000만원이에요. 귀국할 때까지 3000만원 정도 쓰고 돌아왔어요.”(선현경)


-1996년 5000만원이면 꽤 큰돈인데, 혹시 부모님이 잘 사시나요.


“남들은 그렇게 오해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그때까지 제가 모아둔 전재산이었어요. 귀국 후 살 집을 마련할 형편이 못 돼 각자의 부모님 댁에 가서 살아야 하나 고민했죠. 결국 제 부모님 집의 방 한칸을 얻어 6개월 동안 살았어요. 작은 방에 둘이 하루종일 붙어 있다 보니, 정말 많이 싸웠어요. 나중엔 장모님이 1000만원을 빌려주셔서 겨우 살 집을 구했어요.”(이우일)


“이집트에 머물 때 여행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 저는 글을 쓰고 남편은 그림을 그렸어요. 매일 밤 우리는 이 책을 팔아서 돈을 얼마를 벌면 집을 어떻게 구하고 이런 생각만 하며 303일간 행복에 젖어 있었어요. 정말 대박날 줄 알았거든요(웃음). 현실은 귀국 후 책을 내려고 했더니,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연재하면서 일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신혼여행 후 몇년이 지나서야 <이우일·선현경의 신혼여행기>도 출간할 수 있었어요. 책이 많이 팔리지는 않았어요.”(선현경)


1998년 말 은서가 태어난 후 2년 뒤부터 부부는 다시 유럽, 중남미 등 지구촌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신혼여행 때처럼 1년씩 가지는 못했지만 1년에 두어 번은 꼭 일주일 이상 해외로 나갔다. 이우일씨가 일러스트를 그린 ‘노빈손’ 시리즈 인세가 꽤 두둑이 들어오면서 세 식구가 여행하며 여유롭게 살 만한 정도가 됐다고 한다.


-여행을 자주 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부부는 하루종일 집에서 같이 붙어 있잖아요. 1층은 주로 밥 먹고 자는 생활 공간이고 2층은 작업실이에요. 나란히 앉아 각자가 맡은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 그림책 작업을 하죠. 이런 작업 환경 때문에 더 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선현경)


-같은 일에 종사하니 서로의 작업에 대해서도 조언할 수 있겠어요.


“마지막에 컨펌받는 거죠. 의견을 듣고 조금씩 고치기도 하고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 서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이우일)


“그러다가 상대방의 반응이 나쁘면 막 싸우기도 해요(웃음).”(선현경)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닐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해요. 일주일, 보름씩 여행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낭비였던 것 같아요. 살면서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짧은 여행이에요. 요즘은 환경도 생각해야 하잖아요. 탄소배출량이 많은 비행기 타는 것도 줄여야 하죠. 앞으로는 가능하면 탄소발자국을 많이 안 남기며 여행할 참이에요. 또 포틀랜드와 오아후섬에서 머문 것처럼 오래 눌러앉는 여행을 하게 될 것 같아요.”(이우일)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소모적인 여행 자체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짧은 여행들이 있어서 긴 여행도 가능했다고 보거든요.”(선현경)


-이제는 노후도 생각할 나이인데, 준비는 하고 있나요.


“우리는 주식도, 부동산 투자도 해본 적이 없어요. 보험은 몇개 들어놨어요. 은서에게는 진작부터 말해뒀어요. 경제적 지원은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라고요. 그러니 이제 큰돈이 들어갈 일은 별로 없어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집을 줄이든지, 그래도 안 되면 남편의 장난감을 하나씩 팔든지 하면서 맞춰 살면 되겠다고 생각해요.”(선현경)


“가끔 최악의 상황은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면 자주 여행하며 사는 삶은 살지 못했을 거예요.”(이우일)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세계를 유랑하며 살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조언해줄 이야기가 있습니까.


“딱 하나, 아무도 당신을 도와주지 않는다. 인생은 혼자 가는 거니까 스스로 잘 판단해 살아야 한다.”(선현경)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경험하며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죠. 다만 그 책임도 온전히 자기가 지는 거예요. 이건 은서에게도 우리가 늘 하는 말이에요.”(이우일)


부부는 이 인터뷰가 보도되는 시점에는 제주도의 푸른 바다에서 파도에 한껏 몸을 맡기고 있을 것이다. 보디보드를 즐기기 위해 8월 31일부터 제주도 중문에서 한달살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다고 한다. 부부는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선현경씨가 남편을 보며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겠지?”라고 묻는다. 이우일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주어진 한도 내에서 굉장히 즐기면서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가겠지.”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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