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지구를 구할 기술, 그런 마법은 없다
쪼개진 빙하·거북등 논밭·홍수…
기후변화의 ‘진부한 그림’ 대신
가뭄·빈곤·오염·질병·경제붕괴까지
연쇄적, 중첩적, 전방위적 ‘심각성’ 경고
기술만능의 해결책엔 ‘오만’ 비판
‘시스템을 바꿔야’ 정치적 해법 제시
“상황은 심각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2050 거주불능 지구>에는 서문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미 닥쳐온 기후변화의 영향을 무시무시하게 쏟아낸다. 당장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재난을 새삼스럽게 개괄하는 것이 심각성을 희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4월22일 ‘지구의날’ 50주년에 맞춰 출간되는 <2050 거주불능 지구>는 기후변화의 미래 시나리오를 최신 연구 자료와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환경론자가 아니라고 말문을 연다. 경제 성장을 위해선 자연에 대가가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동물까지 법적 권리를 보장하자는 데 불쾌함을 느끼는, 기후변화를 외면해온 평범한 미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랬던 저자가 기후변화에 대한 칼럼을 의뢰받고 몇 년에 걸친 조사 끝에 내놓은 결과물은 정말이지 절박하다. 멱살을 잡고 제발 좀 정신차리라고 하는 것 같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온갖 이상기후와 재난에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오늘 우리에게 하는 얘기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난생처음 마주하는 질병, 다시 말해 아예 존재 자체를 몰라서 걱정조차 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질병 역시 불러일으킬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온갖 동물들이 들어찬 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증하는 감염병들은 동물 몸 안에 있던 미생물이 인간을 비롯한 동물종에 옮겨가면서 변이를 일으킨 것들이다. 팬데믹이 불러온 공중보건 붕괴와 경제적 충격이 뉴스를 뒤덮고 있지만 이러한 위기는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구적 차원의 연쇄 속에서 근본적 배경일 수도 있는 원인에는 눈감고 있다. 기후변화다.
연구자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현존하는 질병이 장소를 옮기고, 관계망을 바꾸며 심지어 진화를 거듭하는 상황을 이미 우려해왔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엉켜 있는데도 특정 질병이 어느 지역에만 머무는 이유는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생태 환경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면 “전염병이 마치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처럼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이를테면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질병이 열대 지방에만 있었지만, 열대 지방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거대 도시 주변까지 황열병을 걱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책에선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던 라임병(진드기를 매개로 한 감염증) 감염자가 해마다 수백명씩 늘어난데도 주목한다. 북극의 얼음이나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에 갇혀있던 각종 미생물들이 기온 상승으로 풀려나고 있다는 국제 뉴스도 낯설지 않다. 지구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100만종 이상 존재한다는 과학자들 추정이 섬뜩하다.
더욱 무서운 위험은 우리 몸속에 있다. 평화롭게 몸속에 공존하는 박테리아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저자는 귀여운 난쟁이처럼 생긴 중앙아시아 토착종 큰코영양의 사례를 들려준다. 2015년 5월 큰코영양 전체 개체 수의 3분의 2가 며칠 만에 떼죽음을 당해 수십만마리에 달하는 사체가 해당 지역을 덮었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사태를 두고 외계인 소행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왔지만 범인은 파스테우렐라 물토키다라는 평범한 박테리아였다. 큰코영양의 편도선에 기생하던 이 박테리아가 갑자기 확산해 온몸으로 퍼진 것이다. 이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진 탓으로 분석됐다. “기후변화가 방아쇠라면 파스테우렐라균은 총알과 같았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수백만년에 이르는 우호적 공생 관계를 어떻게 끝장낼지 현재로선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체험할 일만 남았다.
2050 거주불능 지구 |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김재경 옮김 | 추수밭 | 424쪽 | 1만9800원 |
기후변화라고 하면 쪼개진 얼음 위에 위태롭게 떠가는 북극곰, 태풍으로 물에 잠긴 마을, 가뭄에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경작지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기후재난은 연쇄적이고, 중첩적이며, 전방위적이다. 살인적인 폭염, 빈곤과 굶주림, 집어삼키는 바다, 치솟는 산불, ‘날씨’가 되어버릴 기상이변, 갈증과 가뭄, 사체가 쌓이는 바다, 마실 수 없는 공기, 질병의 전파, 무너지는 경제, 기후 분쟁, 사회 시스템의 붕괴까지 재난은 ‘일상’이 된다.
“극심한 열기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이 피부를 벗어던지고는 살 수 없듯이 그런 열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한국에서도 2018년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후변화의 충격을 실감한 바 있다. 와닿지가 않아서 그렇지 경고의 내용은 들어본 것들이다. 1980년대 이래로 위협적인 폭염이 발생하는 빈도가 50배 이상 증가했고,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여름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고, ‘평균적인’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도 2080년이면 현재 연간 최고기온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하는 날수가 250배 늘어날 수 있으며, 거주 가능지역은 대폭 축소될 것이다 등등. 현재 1도 올랐는데도 이 정도로 세계가 뒤죽박죽되고 있는데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2100년까지 기온이 2도 넘게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대기오염은 어떠한가. 코로나19 사태가 역설적으로 맑은 하늘을 돌려줬지만, 지난해 봄 가장 큰 이슈는 미세먼지였다. 이 역시 기후학자들은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기상 패턴에 변화가 생겨 바람이 정체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서 우리의 대응은 중국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책에선 오염과 지구 온도 사이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연관성을 일깨운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들을 포괄하는 에어로졸은 햇빛을 지구 밖으로 반사해 지구온난화를 억제한다. 즉 오염물질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줄여왔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건강을 망가뜨리는 오염물질을, 다른 한쪽에는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맑은 하늘을 두고 선택하라는 의미일까.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미세입자를 띄워서 기온을 낮추려 하거나 탄소포집 기술을 사용해 탄소를 없애려는 ‘기술만능주의’로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는 오만이다. 현실성도 적고 부작용도 큰 ‘마법을 바라는 생각’을 버리고 진정한 변화에 나서라는 비판이다.
이 책이 이전의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기후학의 진부한 언어’를 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해수면 상승과 같은 얘기들로 문제를 추상화하거나 자연을 대상화하는 시선으로 심각성을 흐리는 우화를 단호히 피한다. 채식을 하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 식의 ‘백인들의 윤리적 행동들’도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지 개인의 각성만을 촉구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차원의 생활양식 조정은 전체적인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오직 정치적 차원의 움직임으로 확장될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각자가 전부 책임을 공유하기 때문에 “민주적”이다. 한국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7위를 차지해 책임이 적지 않다. 책에선 “집은 무기로, 도로는 죽음을 부르는 덫으로, 공기는 독약으로 바뀔 것”이라는 묵시록적인 경고를 한다. 일상을 일상으로 지킬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