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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 이익 위해 감정노동 하는 아이돌…폭력 구조 속에 갇혔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

걸그룹 AOA 괴롭힘 폭로와 연예활동 중단 사태

경향신문

한국의 아이돌은 과도한 감정노동과 엄격한 규율에 시달린다. 본업인 가무뿐만 아니라 모르는 관계자에게도 일단 90도 인사를 하거나 ‘타인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기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JTBC <믹스나인>

지난주, 그룹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전 AOA 멤버 민아의 글이 올라왔다. 괴롭힘은 오랫동안 집요했고 민아가 그룹을 탈퇴한 뒤에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지민은 사과문을 게재했으나 민아와의 대면에서 잘못된 행동으로 추가 피해를 입혔다. 기획사 FNC는 늦은 밤 기습적으로 지민이 AOA를 탈퇴했으며 연예계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민아의 글과 사진은 트리거가 될 수 있으니 위험을 느낀다면 보지 않기를 권한다. 나는, 읽었다. 나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어린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많은 여자들이 그 글에서 아직 울고 있는 어린 자신과 맞닥뜨렸을 것이다. 따돌림, 비난, 조롱은 은밀하고 조용해서 일반적인 폭력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피 흘리지 않고도 내면을 찌부러뜨리고 일상을 부순다.


<소녀들의 심리학>을 쓴 레이첼 시먼스는 관계적, 간접적, 사회적 공격을 ‘대체공격’이라고 명명한다. 관계적 공격은 “누군가를 벌하거나 자기 멋대로 하려고 상대를 무시하는 것, 보복하기 위해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 부정적인 신체 언어나 표정을 사용하는 것, 누군가의 관계를 방해하거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관계를 끝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간접적 공격은 표적에 고통을 가하는 장치로 타인을 이용하며, 피해자를 다치게 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듯 군다. ‘소문내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적 공격은 자존감이나 집단 내의 사회적 지위를 훼손한다. 레이첼 시먼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러한 대체공격은 사람을 “심리적으로 때려눕”힌다. 윤가은의 영화 <우리들>, 김려령의 소설 <우아한 거짓말>이 이러한 여자아이들 간의 관계와 폭력을 내밀하게 그려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직장 내 괴롭힘’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위계가 뚜렷하고 생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대응하기 어렵다. 또한 직업 특수성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그곳만의 독특한 양상을 빚는다. 이학준의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에는 기획사가 리더에게 연습뿐 아니라 출석·예절 같은 사생활을 규제할 권한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스타제국만의 문화가 아니다. K팝 전체의 관행이다. 무수한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리더’는 기획사로부터 권력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받는다. 리더가 소리를 지르거나 진정성을 의심하며 정서적으로 압박하는 장면이 꼭 나온다. 이러한 행동은 강도 높은 연습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진다. ‘절박함’과 ‘리더의 카리스마’로 포장된다. 기획사 주도의 리더 중심 체제, 이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교사가 주도하는 교내 따돌림과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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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본분 금메달> 방송 화면 캡처

리한나에 이어 비발디마저 ‘선배님’이라고 칭하는 뿌리 깊은 유교 문화, 폐쇄적이고 고립된 세계, 데뷔와 성취의 과도한 압박, 한두 살 차이가 크게 작용하는 어린 나이,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중한 업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열정이 부족한’ 개인 탓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는 생활 양식이 더해진다. 퇴근과 사생활이 없으며 동료가 곧 가족이다. 겹쳐진 층위 안에서 폭력은 ‘핸들이 고장 난 에잇 톤 트럭처럼’ 폭주한다. 이러한 폭력은 K팝 산업이 사멸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K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폭력의 본질이 K팝 신에서 불거진 사례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은 일반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람이 셋 이상 모인 모임에서도 일어난다.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동료와 선배, 감독과 팀닥터의 가혹 행위에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체육계 역시 가해자와 분리될 수 없고, 위계와 서열이 명확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입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기관이 없다는 특수성이 피해를 키웠다.


고립된 세계 속 과한 성취 압박

문제 땐 ‘개인 탓’하는 시스템

공사 구분 없는 생활까지 더해

본업 외 엄격한 규율에 시달려


기획사 주도의 ‘리더 중심 체계’

어린 공연 노동자 혹독히 다루며

폭력 조장·방치 그 안에서 이익

이 사태 가장 큰 책임자는 ‘FNC’


아이돌, 협업자로 존중하며 만든

예능프로 ‘문명특급’의 성과처럼

안전하고 행복하게 춤·노래하는

K팝 아이돌이 가능해지기를


폭력은 피해 당사자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토네이도처럼 빙글빙글 돌며 영향을 미친다. 반경 범위 안에서 폭력의 기준은 점점 낮아지고 안전장치는 사라진다. 최숙현 선수를 괴롭힌 선수와 감독은 혐의를 부인했다. ‘폭행’은 지도의 일환이고, ‘폭언’은 그냥 말을 좀 세게 한 것이고, 따돌리거나 음식을 억지로 먹인 것도 ‘때린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민 역시 민아가 처음 글을 올렸을 때 이를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내면을 망가뜨리는 심각성에 비해, 폭력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지민은 사과문에 “어렸을 때 당시의 나름대로 생각에는 우리 팀이 스태프나 외부에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라고 썼다. 이 문장은 가해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폭력을 승인하고 방치했는지 파악하는 맥락으로 읽어야 한다. 구조를 고찰하는 것은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감경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지금도 공론화되지 못한 채 벌어지는 폭력을 조금이나마 저지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다. FNC의 첫 번째 여자 연습생으로서 지민은 무수한 폭력과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지민이 받는 각종 여성혐오적 욕설, 지민과의 친분을 빌미로 다른 멤버를 공격하는 악플이, 얽히고설키는 폭력의 순환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민은 잘못했다. 폭력을 당한 모두가 더 약한 동료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민아 또한 걸그룹으로서 대중과 기획사의 공격에 노출되었으나, 그룹 내 멤버에게 폭력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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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규봉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감독.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그러나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는 어린 공연예술가 노동자를 혹독한 조건 속에 던져넣고, 폭력을 조장하고 방치하면서 이익을 본 FNC다. 기획사가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한 사람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10년에 걸쳐 서서히 망가지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피해 호소 후 대면 사과에서라도 적절히 중재했다면 민아가 추가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병이어’에서 따온 회사 이름 FNC(Fish and Cake)만큼이나 뻔뻔한 태도다. 이 작명은 10~20대의 어린 공연 노동자들이 회사를 책임져야 하고,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산업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끝없이 빵과 물고기가 솟아나는 화수분이 아니다. 무한정 꺼내 쓸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 어리고 약하면 보호해야 하고, 아프면 돌봐야 한다.


얼마 전 <문명특급>의 PD 홍밍키씨가 쓴 글 ‘돌판에 균열을 내자’가 화제가 되었다. 방송국에서 만난 처음 보는 아이돌이 하는 90도 인사를 받은 경험에서 홍 PD의 문제의식이 싹튼다. 아이돌의 기본으로 통하는 3가지(1. 아이돌은 늘 웃는 리액션을 해야 한다. 2. 상대의 요구에 친절히 응해야 한다. 3. 끊임없는 장기를 보여줘야 한다.)와 상반되는 3가지가 <문명특급>의 원칙이다. 1. 안 웃기면 웃을 필요 없다. 2.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한다. 3. 아이돌을 전문 직업인으로 대우한다. 이 세 가지를 지키면서도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연출과 편집에 공을 들여, <문명특급>은 팬뿐만 아니라 아이돌 당사자에게도 만족도가 높은 방송으로 유명하다. 홍 PD는 아이돌이 지금까지 어떤 방송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이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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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한국 아이돌은 과도한 감정노동과 엄격한 규율에 시달린다. 본업인 가무뿐 아니라 ‘타인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기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모르는 관계자에게 일단 90도 인사를 했던 것처럼. 그런데 이 전문 공연예술 노동자들이 거치는 많은 훈련 중, 그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이때 자신을 지킨다는 말에는 타인을 공격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돌본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은 불가능할까? 협업자로서의 아이돌을 존중하며 제작한 <문명특급>이 예능으로서도 멋진 성과를 올린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는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인류라고 처음부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며 노조를 끼고 시작하진 않았거든요.


K팝 아이돌의 안녕과 민아의 회복을 빌며, 지금이라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깨달은 사람은 즉각 가해를 멈추길 요구한다. 정의감에 심취해서 걸그룹 멤버에게 악플을 다는 행동까지 말이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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