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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사는 것' 파이어족 자매 신현정·신영주

경향신문

올해로 조기 은퇴 6년차인 ‘파이어족’ 신현정·영주 자매. 유튜브 채널 <파이어족-대퐈마tv> 제공

열심히 일해도 내 집 마련의 기회는 점점 묘연해지는 느낌이다.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기는커녕 고용의 불안정은 커지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지만 ‘돈’ 때문에 더 오랜 시간 회사에 매여서 살아갈 생각을 하면, 한편 아찔하기도 하다.


사회에서 한창 일할 나이 ‘마흔’에 미래의 먹거리를 준비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 ‘파이어(FIRE)족’. 이들의 삶의 방식은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로또’보다 현실 가능한 ‘조기 은퇴’의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늦어도 40대 초반까지는 은퇴하겠다는 목표로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젊은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만난 신현정, 신영주 자매는 올해로 조기 은퇴 6년 차인 파이어족이다. 두 사람은 4년 동안 악착같이 일하고 저축해 약 5억 원으로 2015년 은퇴했다. 현정씨가 마흔, 영주씨는 서른아홉이었다. ‘한국형 파이어족’으로 불리는 두 자매의 은퇴 후 일상과 재테크 방식에 대해 물었다.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함이 파이어족을 결심하게 했다

두 사람은 파이어족이 되기 전 남대문에서 낮에는 옷을 생산하고, 밤에는 도매로 옷을 팔았다. 7년간 밤낮없이 일을 했더니 번아웃이 왔다. 쉬고 싶은 마음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는데 1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재정상태는 제로 세팅이 됐다. 돈 버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었던 두 사람은 경력을 살려 다시 의류업에 종사했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이 이어지던 중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시골에 계시던 엄마가 저희랑 같이 살고 싶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서울에서 보증금 2000에 월세 90만 원 하는 빌라에 살았는데 엄마를 모셔오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저희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열심히 일했는데도 부모님을 부양할 수조차 없다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꼈죠.”


그때 현정씨는 오래전 기사에서 읽었던 ‘파이어족’의 생활 방식이 떠올랐다. 쳇바퀴 같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기 은퇴를 꿈꾸며 동생을 설득했다. 영주씨는 “정해진 기간 동안만 절약하면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언니의 얘기가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몸이 고된 것뿐만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할 시간조차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파이어족을 결심한 ‘확실한 동기’였다.

■파이어족으로 가는 짠내나는 여정

조기 은퇴를 결심한 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자신들의 소비패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지출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이유에서였다. 1년 치 생활비를 적은 뒤 같은 항목을 묶어서 지출이 가장 많은 순서로 나열했다. 집(월세), 차(유지비), 취미생활, 해외여행이 상위권에 있었다. ‘그냥 절약하자’로는 돈을 모을 수가 없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그길로 차를 팔고 취미생활이나 여행도 접었다.


은퇴를 위한 종잣돈은 5억 원, 기간은 4년으로 정했다. “5억이라는 돈은 저희가 월 생활비로 200만 원 정도를 쓴다는 단순한 계산에서 나온 금액이었어요. 너무 디테일하게 생각하면 가기도 전에 지치거든요. 또 내 집 마련이나 자동차 구입 등을 계획에 넣으면 금액이 점점 커져 불가능에 가까워져요. 5억이면 밥은 굶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파이어족’의 은퇴 시점은 1년 생활비의 25배를 모았을 때로 계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비슷한 연봉을 받는 동료들이 외제차를 타고 다닐 때 두 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다들 커피를 마실 때도 주문하지 않았다. 월세와 어머니 용돈, 차비와 식비 등을 제외한 소비는 최대한 줄였다. 극단적인 절약에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영주씨는 “20대 때는 소비 요정이었다”며 “돈을 쓰고 난 뒤 남는 게 없다는 걸 느껴봤기 때문에 절약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고 언니랑 함께해서 덜 지쳤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파이어족이 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절약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로 목돈을 만드는 것은 다음 문제다. 절약해서 모은 자산과 경험은 은퇴 후의 삶과 자산 관리에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목표 없이 투자만으로 불린 자산은 상대적으로 늘 부족하게 느껴지고 쉽게 소비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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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 게 은퇴 후 가장 달라진 점이죠.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기분이 참 좋아요.”

■은퇴 후에 찾은 내 삶의 주도권


올해로 조기 은퇴 6년 차인 두 사람도 은퇴 후 3년까지는 불안한 생활을 이어갔다고 했다. 모아둔 돈이 은퇴를 위한 충분한 금액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이 야금야금 사라져 버릴까 봐 쓰지를 못했다. 장 보러 가서도 가장 저렴한 물건을 샀다. 3년 동안 해보고 안 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 단순노동이라도 하자는 각오도 다졌다.


‘노동을 갈아 넣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일상’도 불안을 부추겼다. 자신들의 생활을 남들은 부러워하겠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돈 좀 모았다고 나태하게 사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을 수없이 했다고 했다.


은퇴 자금을 종잣돈으로 삼아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재테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뉴스를 통해 경제 흐름을 공부했다. 운도 따랐다. 현정씨는 “당시 경기가 좋았어요.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했는데 지난 5년간 자산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생활비를 계속 쓰는데도 자산이 늘고 생활이 유지되니 그제서야 조기 은퇴를 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어요.”


두 자매의 삶은 은퇴 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현정씨는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라며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기분이 참 좋다”고 말했다. 영주씨는 “끊임없이 나와의 대화를 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언제 가장 행복한지, 궁극적으로 뭘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의 자유가 가장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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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누군가와 함께 파이어족을 준비할 때는 비슷한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 공통의 목표가 있는지를 충분히 논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가족이라도 비슷한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 공통의 목표가 있어야

현정씨와 영주씨는 유튜브 채널 ‘파이어족-대퐈마TV’와 책 <파이어족의 재테크>를 통해 파이어족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파이어족이 ‘주식이나 투자로 큰돈 벌어서 사표 던지고 멋지게 은퇴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기 은퇴에 대해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또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확신이 들자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경험담이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영상에는 ‘혼자라서 돈 모으기 힘들다’ ‘아이가 있어 파이어족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등 다양한 환경에서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의 댓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두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누군가와 함께 파이어족을 준비할 때는 비슷한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 공통의 목표가 있는지를 충분히 논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저희가 비혼 자매라 그런 질문이 많은 거 같아요. 20대 때는 몰랐는데 30대가 되고 보니 결혼한 경우 혜택이 훨씬 더 많거든요. 아이가 있으면 가산점도 있고요. 다들 자기한테는 혜택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 목표 금액을 모으는 게 중요합니다.”(현정씨)


“싱글은 번 돈을 혼자 다 독식할 수 있어서 더 많이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약이나 저축에 대한) 동기부여가 없는 경우가 많고, 고생했다는 보상심리로 나를 위해 돈을 써요. 반면에 가정을 꾸린 분들은 아이의 미래라는 강한 동기부여가 있죠. 각자 (조기 은퇴하고 싶은) 동기부여를 찾는 게 돈을 모으는 방법입니다.”(영주씨)


두 사람은 파이어족을 꿈꾸는 20대에게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절약하기보다는 명확한 목표나 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20대에는 소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근육을 기르기 좋은 나이예요.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사보고 플렉스도 해보는 거예요. 단 카드나 빚을 지면 안되고 몇 달에 걸쳐 돈을 모든 뒤 사는 거죠. 소비습관을 기르면 연봉이 좀 더 오른 30대에는 나에게 맞는 소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남들보다 빠른 은퇴. 일하지 않는 일상을 두 자매는 무엇으로 채워나가고 있을까.


영주씨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하는 거 같다”며 “매년 1월에 소비와 자산을 체크하고 그해에 하고 싶은 걸 얘기하는데 ‘무엇이 하고 싶은지’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파이어족이 되기 전에는 업무에 대한 계획을 다 꽤고 있었지만 정작 제 자신에 대한 계획은 없었거든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무조건 도전하고 있습니다.”


“파이어족은 정말 하기 싫은 일에서 은퇴하는 거예요. 누군가 나에게 갑질을 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돈 때문에 그 지시에 따라야 하는 일에서 은퇴하는 것이죠.” 현정씨는 말했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고,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거예요. 파이어족 뒤에는 제대로 된 의미의 욜로족의 삶이 시작되는 거죠. 40년을 살았지만 조기 은퇴 후 (인생에 있어 가치 있는 결과로) 남는 게 훨씬 더 많아요.”


글 이진주 기자·영상 유명종 PD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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