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행복”…“나를 돌보는 데도 24시간이 부족”
대담집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비혼’ 펴낸, 41년생 김애순씨·88년생 이진송씨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비혼' 의 저자인 ‘41년생 독신주의자’ 김애순씨(오른쪽)와 ‘88년생 비혼 꿈나무’ 이진송씨가 지난 1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건물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우리 사회에서 ‘비혼 여성’만큼 이중적인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존재도 드물다. 자유롭고 화려한 골드미스, 혹은 외롭게 늙어가는 히스테릭한 노처녀. ‘41년생 독신주의자’ 김애순씨(78)와 ‘88년생 비혼 꿈나무’ 이진송씨(31)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비혼>(알마출판사) 대담집을 내기로 의기투합한 것은 세상의 선입견에 덧씌워지지 않는 실제 비혼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씨는 20대 중후반 무렵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비혼 여성으로서의 미래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 든 중년 비혼 여성의 삶은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는 화려한 골드미스만 보여주는데 그마저도 나중엔 결국 결혼하는 서사로 이야기가 진행되죠. 비혼의 끝은 비참한 고독사로 귀결된다며 공포심만 자극하는 사회에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다시 태어나도 비혼으로 살겠다는 김애순 선생님을 알게 돼 용기를 얻었어요. 더 많은 사람들과 제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내게 됐습니다.”
‘비혼 대선배’인 김씨는 여성 평균 결혼 연령이 21~23세였던 1960년대에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기고도 계속 일을 해서 20대 후반부터 어디를 가든 폭발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 살아왔다.
최초 독신단체 회장 역임
행복은 편한 일상 같은 것
비혼에 매몰될 필요 없고
가능성 닫아두지 말아야
- 김애순씨
1990년에는 전국 최초의 독신단체 ‘한국여성한마음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까지 맡았다.
하지만 정작 김씨는 처음 출판 제의가 들어왔을 때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이씨에게도 “아직 (비혼을 결심하기엔) 너무 이르다니까!”라고 진심 섞인 농담을 던졌다. 김씨는 “젊은이들에게 나처럼 비혼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라고 했다. “결혼해도 고생이지만 결혼 안 하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사실 산다는 게 원래 다 그렇죠.”
이 책은 비혼이 완벽해서, 기혼보다 우월해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비혼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꾸리고자 하는 삶에 결혼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비혼에 수반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씨는 어린 시절 바람피우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그가 중학생 시절 일찌감치 비혼을 결심하게 된 데는 그것도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 속 여성 변호사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항상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어요. 그러려면 자기에게 행복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해요.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자식 자랑하곤 하는데 그게 부럽진 않더라고요. 나에게 행복은 일상의 편안함, 오랜 시간 속에 배어 있는 만족과 기쁨 같은 것이어서 그걸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일에 집중했죠. 물론 결혼에서 오는 여러 장점들도 알지만 그게 부러웠으면 지금까지 혼자 못 살았지, 뭐.”
김씨와 50년가량의 시차를 두고 비혼을 결심한 이씨의 경우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사람들은 비혼을 결심했다고 하면 성장 과정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거나 연애에서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곤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씨는 “따끈한 스위트홈에서 갓 구워낸 빵처럼 자랐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이상적인 가정이 유지되려면 얼마나 ‘여자를 갈아 넣어야’ 하는지 더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비혼은 특별한 선택 아냐
자연스러운 삶의 한 형태
결혼 아니어도 가족 인정
‘동반자 등록법’ 통과돼야
- 이진송씨
그가 비혼을 결심한 것은 단지 글을 쓰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비혼은 특별하지도, 별나지도 않은,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비혼 여성을 향한 선입견은 다양한 버전으로 존재한다. 가장 흔한 것이 비혼 여성은 아이를 낳고 키워본 적이 없어 “이기적이고 미성숙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1단계 결혼, 2단계 출산, 3단계 육아를 거쳐야만 성숙한 인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설정해 놓은 경로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단계를 통과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에요. 출산, 육아가 없는 자신만의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 비혼들에게는 또 다른 경로로 도달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의 영역이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연애와 결혼이 사랑이라는 개념을 독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김씨는 어린이박물관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아이를 좋아하면 결혼해서 직접 낳지 그랬냐’는 말에 지겹도록 시달려온 그는 “아니, 고구마 좋아하면 다 고구마 농사 지어야 해요?”라고 반문한다.
이들은 혼자 살면 외롭고 쓸쓸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집안일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자기 자신과 잘 지내며 스스로를 돌보는 데도 24시간이 모자라서 외로울 시간이 없다. 물론 혼자이되 고립되지 않는 것은 비혼에게 중요한 숙제이다. 김씨는 재작년까지도 지인들과 함께 등산과 여행을 다니며 지루할 틈 없이 살아왔다. 가족에게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며 인간관계를 넓혀온 덕이다.
4인 가구를 ‘정상 가정’의 기본값으로 정해놓고 “여성의 안전을 남편에게 아웃소싱시킨” 사회에서 비혼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인 건 사실이다. 비혼에게는 결혼하라고 강요하고 동성커플의 결혼은 법적으로 금지하는 우리 사회는 ‘당연한 결혼’과 ‘금지되는 결혼’을 분명하게 나눠 차별하고 있다.
이씨는 “집을 계약할 때도 여자 혼자 가면 우습게 보는 경향이 많다. 정부의 주거정책도 결혼한 가정만 우대하고 비혼 가구는 소외시킨다”면서 “결혼이란 제도가 아니어도 함께 사는 사람이 가족으로 인정받고 제도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동반자 등록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비혼들이 더 많은 목소리를 내며 존재를 가시화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가부장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도 ‘독녀’라 불리는 비혼 여성들이 존재했다. 다만 기록에서 지워졌을 뿐이다. 그래서 김씨와 이씨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기록하기로 했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없는 것처럼 보이면 불가능하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씨는 “그런 측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선택지가 협소했던 시절에도 원하는 대로 살아온 김애순 선생님은 나에게 멀리서 넓게 보면 우리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증인이자 희망”이라고 했다.
김씨는 비혼을 꿈꾸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픈 한마디를 부탁하자 “결혼지상주의자가 될 필요도 없지만, 비혼이란 선택에 매몰될 필요도 없다. 인생은 예측불허이기 때문에 가능성을 닫아두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비혼”이라고 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