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모피를 입어도… 남자는 존엄하고 여자는 음탕하다?
티치아노의 ‘이중잣대’
|남자 ‘티치아노의 자화상’
권력 과시하며 당당한 자세
실크의 광택·건강한 피부 등
모든 것이 번쩍이고 우아해
|여자 ‘거울 앞의 비너스’
겉으론 화려하고 탐스럽지만그
권력은 남자에게 받은 것
거울 속엔 공포·두려움 비쳐
모피와 권력: 같은 옷, 다른 느낌
모피를 입은 여자와 모피를 입은 남자. 둘 다 베네치아의 거장 티치아노(Titian·1488~1576)가 남긴 그림의 대상이다. 여자는 일명 ‘모피를 입은 비너스’라 불리고, 남자는 티치아노 자신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가볍게 말해 ‘같은 옷, 다른 느낌’에 관한 것이고, 좀 더 무겁게 말해보면 ‘이중 잣대’에 관한 것이다.
21세기에 모피를 입는다는 건 취향의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력의 문제이다. 돈이 있어야 입는 옷, 혹은 돈만 있으면 입을 수 있는 옷이 바로 모피다. 티치아노가 그림을 그렸던 16세기 중반에 모피는 권력의 문제였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The Peace of Augsburg)에서 평민들은 염소나 양의 모피 외에는 입지 못하도록 결정됐다. 여우나 담비 같은 고급스러운 모피는 금지되었던 것이다. 종교적 화의와 평민들의 의상 제한에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지금 상식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는 두 가지를 요구하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속제후들은 종교의 자유를 원하는 동시에 특권 신분을 요구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는 구교를 신봉하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신교도 제후들 간의 화의로 제국 내 종교적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하고 있었다. 여기서 ‘1국가 1종교’의 원칙이 채택됐다. 또한 지역의 종교는 황제가 아닌 제후가 결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써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최초로 개신교가 공식 용인되고 신교도 제후들이 교황의 지배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교권보다 세속권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에게 종교적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해당 지역의 신민이 다른 종교를 가졌다면 그 지역을 떠나야 했다. 더불어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제후와 그에 복종해야 하는 신민의 신분적 차별은 더 커졌다. 고급 모피를 금지시킨 것도 신분적 차별을 유지하기 위해 세속제후들이 특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16세기 중반 모피를 입거나 입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도, 돈의 유무도 아닌 권력의 문제였다. 모피를 입은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사안이 더 추가됐다. ‘모피를 입은 여자’와 ‘모피를 입은 남자’는 같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권력을 가진 남자는 멋진 남자이지만 권력을 가진 여자는 나쁜 여자였던 것이다. 모피와 권력을 둘러싼 ‘이중 잣대’, 그 이야기를 좀 더 해보기로 하자.
모피를 입은 남자: 회화의 제왕
먼저 모피를 입은 남자. 그는 권력을 과시하며 당당한 포즈로 앉아 있다. 그는 유럽 역사상 가장 커다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발밑에 떨어진 붓을 주워 주었다는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 티치아노다. 1533년 이미 티치아노는 카를 5세로부터 황금박차의 기사와 백작의 작위를 받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림 속 티치아노가 입고 있는 값비싼 모피와 금목걸이는 모두 카를 5세가 “그대야말로 회화의 제왕”이라는 칭송과 함께 내린 하사품이다. 그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귀족이었므로, 값비싼 모피를 입을 자격이 있었다. 신의 영광만큼 자신의 영광을 드높이고 싶어 했던 세속군주들은 이 ‘회화의 제왕’의 그림을 얻고 싶어 안달했다. 각국 주요 권력자들의 그림 주문이 밀려들자 교황은 자신이 거절당할까 두려워 눈치를 볼 정도였다고 하니 티치아노는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셈이다.
티치아노는 99살까지 장수를 누렸는데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이러한 부분도 전설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자화상이 완성되었을 때 티치아노의 나이는 74세였다. 당시 노인을 그림 대상으로 삼는 건 환영받기가 어려웠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 그림은 티치아노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노년은 아름다웠다. 그의 노년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젊었을 때 갖지 못했던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이마는 지혜롭게 번쩍이며, 그의 눈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떤 세계를 보고 있는 듯이 저 먼 곳을 향한다. 실제로 그의 명성은 그에게 부를 가져다주었다. 황제가 하사한 모피와 금목걸이, 그 안에 받쳐 입은 실크 블라우스까지 그의 모든 것은 번쩍이고,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사실 그를 진정한 의미에서 “회화의 제왕”으로 만들어준 것은 모피 그 자체보다 모피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다. 윤기가 흐르는 최고급 모피의 질감은 보는 이가 만지고 있는 듯 느껴진다. 여기에 실크의 광택, 얇은 듯 건강한 노인의 피부, 깊은 눈빛이 생생함을 더해준다. 그런데 그림을 가까이 보면, 이 광택감은 흰 물감 덩어리를 거칠게 올려놓은 데서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적당히 생략하면서도 하이라이트를 살려서 그린 이 기법은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 듯한 착각을 주는 효과도 있다. 박제된 유명인이 아니라 여전히 영광을 누리고 행사하는, 여전히 살아 있는 한 인간이 우리 눈앞에 있는 것 같다.
모피를 입은 여자: ‘음탕한 눈’의 발명
이번엔 모피를 입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림의 정식 제목은 ‘거울 앞의 비너스’다. 이 그림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1870)라는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고, 이 소설은 이후 동명의 제목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1967)가 되었다. 이 그림이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그림이 아주 이상하기 때문이다. 앞서 많은 화가들이 거울 앞에서 단장하는 비너스를 그림에 담았지만, 모피를 걸친 비너스의 모습을 그린 적은 없다. 그렇다면 티치아노의 그림 속 ‘알몸에 호화로운 모피를 두른 비너스’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티치아노는 이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1538년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알몸의 비너스를 등장시킨 적이 있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와 함께 소위 ‘침대 위의 비너스’의 원조가 된 그림이다. 20세기 들어 여러 미술사가들이 이미 이런 류의 그림들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남성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성을 대상화한 그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티치아노 이후 많은 화가들이 ‘침대 위의 비너스’를 그렸다.
그러나 어떤 작품도 티치아노가 구현해낸 ‘감각의 시각화’를 능가하지 못했다. 필자가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다만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인데, 그 보드라운 살을 만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눈으로 만져지는 그 살은 두 살배기 아기의 살과 같이 보드라운, 근육이라는 것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노동이라는 것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오로지 보드라운 촉감덩어리의 몸이었다.
이렇게 청각, 촉각으로 연결된 눈은 현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탕한 눈(Eye-fucks)’으로 부르는 게 가장 적합할 것이다. 물론 호크니는 이 단어를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눈이라는 맥락에서 사용했지만 나는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사용하고 싶다. 본다는 것은 결코 중성적인 것이 아니다. 원근법적 시각은 각자가 처한 입장에서 세상을 지배하고 재단하고, 통제하는 방법이다. 동시에 티치아노가 발명한 눈은 말 그대로 상대방을 에로틱한 감각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리는 눈이다. 일종의 감각적 오용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경우다.
감각의 제국에서는 누가 권력을 쥐는가
감각의 오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극단적인 예는 앞서 언급한 ‘거울 앞의 비너스’에 대한 후대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소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티치아노의 그림에 숨겨진 의도를 정확하게 미러링(mirroring)하고 있다. 알몸을 감싸는 부드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모피의 촉감과 거기에 담겨 있는 권력의 문제를 소설가는 정확히 이해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치아노의 ‘거울 앞의 비너스’를 사랑했다. 그는 노예가 되어 그녀의 모든 요청을 들어주었지만, 그녀에게도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를 학대하고, 자주 채찍을 휘둘러서 고통을 주는 일이었다. 모피를 입고서 말이다. 누가 이런 정신 나간 짓을 사랑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소설가의 이름 자허마조흐를 따서 마조히즘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졌다.
사실 여자 주인공인 반다는 잔혹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남자 주인공의 간청에 따라 채찍을 휘두르고 그를 노예로 만들었던 것뿐이다. 여기에는 지배자와 노예라는 권력관계밖에 없다. 두 남녀의 진정한, 서로의 자아를 보듬어주고 성장시킬 수 있는 대등한 관계의 사랑 따위는 없다. 그녀는 그저 그의 판타지를 실행해주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녀의 잔혹한 행동은 모두 그의 욕망이 미러링된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매우 시시하다. 둘은 변태적인 쾌락을 추구하던 젊은 시절을 보내고 다시 시민사회로 돌아온다. 여기에 그녀는 잔혹한 폭군이 아닌 그를 사랑해 그의 지독한 소원까지 모두 들어준 착한 사람이었음이 확인되면서 끝난다.
티치아노의 ‘거울 앞의 비너스’ 역시 자신의 권력을 온전히 즐기지 않는다. 관람객이 바라보는 비너스는 화려하고 아름답고 탐스럽다. 그런데 거울 속에 비친 비너스의 얼굴, 즉 비너스가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녀에게 권력을 상징하는 모피를 걸쳐준 것은 바로 그였다. 그리고 그 모피의 궁극적인 소유자 역시 그다. 여자는 남자가 허용한 한에서만 권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모피를 입은 남자는 멋있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모피를 입은 여자는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나쁜 ‘폭군’이다. 모피, 정확하게는 권력을 둘러싼 이중 잣대는 이렇게 문화적인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이중 잣대
앞서 이중 잣대가 남녀에게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남녀관계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사람을 판단할 때도 어김없이 발동한다. 그런데 이 이중 잣대는 너무 오랫동안 무의식화되어 있기에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추상적이라 최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게 좋다. 제시카 발렌티의 책 <그런 이중 잣대는 사양합니다>가 50가지의 예를 들어서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자는 ‘헤프다’, 남자는 ‘정력이 좋다’” “사랑에 집요하면 남자는 로맨티스트, 여자는 스토커” “남자는 포르노 관객, 여자는 포르노 배우” “남성 사회운동가는 활동가, 여성 사회운동가는 골칫덩이” 등이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실례다.
남녀에 대한 이러한 이중 잣대는 보이지 않는 창살처럼 우리의 의식을 가둔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라고 해서 이런 이중 잣대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이중 잣대에 갇힌 우리의 생각도 요즘 우리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다 보니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다.
그의 그림은 가히 천재적이지만 문화적 유전은…원하지 않는다
필자는 소위 클래식한 미술, 문학 작품들 언저리에서 밥을 벌어먹고 살고 그것들로부터 삶의 힘도 얻으니, 이 두 가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전숭배가 가장 두렵다. 숭배는 특정 대상을 무비판적으로 좋아하고 나쁜 점을 보지 않으려는 편향적인 생각이다. 소위 고급 취향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의 그릇된 관념을 자기도 모르게 용인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예술계에는 우리가 쉽게 넘볼 수 없는 천재적인 거장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었다. 인간은 모두 시대의 자식이다. 누구도 자기 시대의 관념, 편견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떤 거장은 시대가 제기한 문제에 응답하면서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이 경우 자기 시대와 불화하고 자기 시대를 초월하는 불우한 예술가가 되기 쉽다.
반면 티치아노 같은 거장은 당대인들의 무의식에 내재한 관념을 귀신같이 끄집어내어 형상화하면서 성공한 예술가가 됐다. 이 경우 그 문화사적인 의미도 부정할 수 없이 중요하다. 비슷비슷한 ‘침대 위의 비너스’를 열광적으로 구입한 사람들이 모두 세속군주들이었다는 것은 이 그림이 당시 지배계급의 관념에 부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티치아노의 그림을 사랑하지만 그 천재적인 붓질 때문에 틀린 관념이 계속 문화적 유전자(Meme)로 유전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모두 알다시피 이제껏 인간은 완벽한 적이 없었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완벽하지 못한 세상에서 만들어진 관념이 완벽할 리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일이다. 불평등의 이중 잣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일이다. 미술평론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베를린 국립 회화관(Gemaldegalerie) : 본문에서 다룬 티치아노의 ‘자화상’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1830년에 개관한(1998년 재건) 미술관으로 13~18세기 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1500여점이 72개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필자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