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0평 부모님의 정원에 카페를 지은 목수 아들
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 가는 길을 지나 굽이 굽이 산골자기 외길을 오르면 ‘모네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숲속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안에 몸과 마음을 푹 쉬고픈 공간 가 있다. 6년차 목수 고병율씨가 숲해설가 부모님의 20년 된 정원에 직접 짓고 가구를 만들어 운영하는 카페다.
천천히 채워나가는 공간
고 대표는 ‘러스틱(rustic)’의 의미처럼 시골스러우면서도 부모님이 오랫동안 가꾼 한국적인 정원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공간 콘셉트를 그리고 지우는 과정만 6개월, 모든 구상이 나온 뒤 큰 골조를 짜는 데는 1개월로 충분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러스틱라이프를 완성하기 위해 가구, 인테리어까지 손수 제작하다 보니 지난 5월 정식 오픈하기까지 1년 여 시간이 걸렸다. 물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이곳 저곳 손을 보고 있다. 부모님이 조금씩 정성을 쏟아 정원을 가꿨듯, 고 대표도 더디지만 천천히 러스틱라이프를 채워나가고 있다.
나누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툇마루
가을 빛으로 물든 부모님의 정원을 지나 돌담과 넝쿨로 둘러싸인 러스틱라이프 문을 열면 나무로 짠 그의 가구들이 반긴다. 중앙에 위치한 널찍한 평상 형태 좌석은 고 대표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댁 툇마루에 앉아 놀던 기억을 담아 만들었다. 이런 구조는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단점 때문에 대개의 카페들이 꺼리지만, 고 대표는 어렴풋하지만 따듯하게 남아있는 자신의 추억을 손님들과 나누고 싶었다. 이 외에 작은 숲속을 꾸민 테라리움 테이블, 맷돌 모티프의 탁자, 자갈 돌이 깔린 바닥, 한복 소재의 오브제 등을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해 한국적인 정겨운 분위기를 강조했다.
나누고 싶었던 홍천의 것들
러스틱라이프의 커피는 머신을 쓰지 않고 오직 드립으로 내린다. 한적한 시골 분위기를 잇기 위해 조금 손이 많이 가더라도 잡음을 내고 싶지 않았다는 고 대표의 섬세한 배려다. 이 외에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꿀오미자, 오미자에이드는 홍천의 산물인 오미자와 아버지가 직접 양봉 한 꿀로 만든다. 목련꽃차 역시 주변 농장에서 재배하는 꽃차 잎을 쓴다. 홍천에서 나고 자란 로컬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해 이곳만의 특별함을 더하고 싶었다는 고 대표.
어쩌다 카페를 짓기까지
자칭 ‘시골생활자’ 고 대표는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삶의 균형이 맞는 소박한 시골살이를 지향한다. 그래서 소싯적 카페를 열고 싶다는 거창한 로망도 없었고, 자신이 건축 일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는 그. 30대 초 고 대표가 목공 일을 배우게 된 건 그저 본가인 홍천, 시골에서 자리 잡기 위해 나름의 기술이 필요해서였다. 항상 손 볼 곳이 있는 시골에서 굶어 죽지 않을 최고의 기술 중 하나로 목공이 꼽혔다. 그렇게 막연한 호기심과 필요에 의해 국비 지원 사업으로 배운 첫 번째 일이 한옥 목공이다.
처음에는 맞지 않는 일 같아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지인을 도와 몇 가지 작업을 진행하니 그의 ‘감’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목공에 재미와 보람을 느끼기 시작한 고 대표는 목조 주택, 인테리어, 정원사 기술에 이르며 5~6년 간 배움에 매진했다. 이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청년창업 공간재생 지원 사업*에 참여해 러스틱라이프를 짓고 있었다고.
*청년창업 공간 재생 지원 사업이란, 강원도의 유휴공간을 보존하고 활용해 새로운 지역 가치를 창출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청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13,000평 버려진 땅을 맨손으로 가꾼 부모님
“정원을 가꾼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떤 날은 울면서 가꾸기도 했죠. 돈 벌 생각이면 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저 좋았으니 20년 간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꾼거죠”
고 대표 어머니의 이야기다. 공간은 만들 수 있지만 러스틱라이프를 둘러싼 13,000평의 정원을 가꾸는 건 1년 만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숲속 감성을 낼 수 있던 건 이미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부모님의 역할이 컸다. 꽃과 나무를 너무 좋아해 춘천 지역 모임 ‘우리꽃사랑모임’ 회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춘천 용화산 숲해설사까지 자처했던 고 대표의 어머니와 강원도청 농업부 국장을 맡았던 전직 공무원, 현직 숲해설가인 아버지의 20년 세월 합작이다. 고 대표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정년 퇴직하기 15년 전 그를 설득해 선조 때부터 갖고 있던 터에 집을 짓기로 했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마음껏 만지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여력이 될 때마다 집 주변 산과 땅을 조금씩 사들여 정원을 가꿨다. 폐비닐이 널부러진 버려진 땅을 고 대표의 어머니가 맨손으로 가꾼 셈이다.
방치돼 있던 공간의 원형을 살려 카페로
“공간 자체에 욕심이 큰 편이죠”
인터뷰 내내 겸손으로 일관하던 고 대표가 유일하게 눈을 반짝이며 전한 소신이다. 그가 러스틱라이프를 얼마나 소중히 지었을지 이 한 마디로 느껴진다. 러스틱라이프가 지어진 위치는 고 대표의 부모님이 15년 전 집을 지을 당시 농업용 창고로 쓰려고 만든 여분의 공간이었다. 고 대표는 방치 상태였던 이 유휴 시설을 잘 다듬어 카페로 개조하기로 했다. 본래 공간의 특색을 유지하기 위해 큰 틀을 허물지 않는 것이 그의 1차 목표였다. 비용 절감 면에서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기에 건물 전면에만 작은 돌로 기둥을 세우고, 정원이 잘 보이는 창을 내는 식으로 시골 분위기를 더할 요소를 더했다. 또 부모님이 농업용 창고를 만들 당시 지붕 위를 평평하게 해 작은 집터로 활용하려 한 위치에는 화덕, 가마솥, 그늘 막 등을 손수 만들어 숲속에 둘러싸인 하나뿐인 야외 테라스를 완성했다.
카페 주인장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지만 공간에 대한 욕심만큼은 뚜렷했던 고 대표. 단순히 부모님의 정원 속에 카페를 지을 생각이었다면 업체에 맡기는 편이 몸과 마음이 편했을 수 있다. 하지만 고 대표는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정성 덕에 러스틱라이프는 쉬 발길 닿기 힘든 곳에 있음에도 오픈한 지 1년도 안되어 입소문을 타고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이제 고 대표는 주차 공간, 좌석 부족 등 초보 창업자로서의 시행착오를 하나씩 해결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양봉 체험장, 요정 집, 멍하니 별을 구경하는 ‘별멍’ 구역, 내추럴 와인과 함께 캠프 파이어를 즐기는 곳 등 목수로서의 무궁무진한 공간 계획도 갖고 있다. 다시 찾을 러스틱라이프의 모습이 더 기대될 수밖에.
Tip. 시골 집에 카페를 내고 싶다면 시골의 어떤 공간이건 그 공간과 주변만의 특색이 있다. 그것을 강조할 방법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찾아내는 것이 먼저다. 이를 무시하고 요즘 도시에서 유행하는 것들을 무작정 가져오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또 초보 창업자라면 지역 지원 사업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은 물론 흐름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된다. 본래 살던 공간에 카페를 차릴 계획이라면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을 구분 짓는 것도 중요하다. 카페와 집으로 들어서는 길이나 입구를 다르게 하거나 집 주변에 울타리를 치는 방법이 있다.
러스틱라이프 구경하기 >> www.instagram.com/rusticlife_cafe
기획 임소연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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