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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우리 새끼>에서 배우 이태성의 엄마로 출연했 던 박영혜 씨 는 ‘자식들도 다 컸으니, 이제 나만의 시간을 좀 가져볼까?’ 했던 52세의 나이에 싱글 대디가 된 아들의 18개월 손자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다. 내 인생을 뒤로 하고 다시 육아를 시작한 그녀는 이 때부터 제빵 기술, 동화 구연, 심지어 마술까지 섭렵하며 50대를 오로지 손자를 잘 키우기 위한 시간으로 보냈다. 여유가 조금 생기면 손자에게 해주려고 배운 것들을 이웃들을 위해 재능 기부를 하면서 열성적인 할머니이자 자원 봉사자로 살았다. 그리고 63세가 된 올해, 신인 영화감독이 되어 전 세계 55개국 영화제에 초청받아 46개의 트로피를 휩쓴 영화를 만들었다. 자식과 주변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으로만 보였던 지난 세월이 결국 내면을 채우며 자신을 더욱 잘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는 그녀의 가슴 뛰는 60대 인생을 만나보았다.
63세에 독립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이 드라마틱합니다.
계획대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서 저 역시 하나씩 진행되고 이뤄지는 순간마다 얼떨떨했습니다. 처음에 봉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장애인 커플의 결혼 소식을 SNS에 올렸는데, 그 게시물을 보고 평소 친분이 있던 신성훈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장애인과 장애인의 결혼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보니, 그분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하셨죠.
바로 이튿날 실제 주인공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는데, 신 감독님이 정말 펑펑 우셨어요. 그도 그럴 것이 장애인 커플이 성사되기 쉽지 않은 이유는 혹여 한 사람이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상대를 돌보거나 대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그분들 역시 남편은 뇌성마비, 아내는 선천성 하반신마비로 보조인이 없으면 생활하기 힘들 만큼 지체장애가 심한데도 사랑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던 거죠. 바로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해 8월에 첫 촬영을 시작했어요.
원래 영화 제작 현장 경험이나 이해도가 있었나요?
아들이 배우지만 촬영 현장에 가본 적도 없고, 대본을 유심히 들여다보지도 않았어요. 저 역시 영화 제작 실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죠. 그래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일일이 물어가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어요.
신성훈 감독님과 공동 집필을 했는데, 일정 부분 각자 작업한 다음 저희 집에서 치열하게 의논하고 고민하며 다듬어 시나리오를 완성해 나갔죠. 숱하게 밤을 새웠답니다.
평소에 시를 끄적이고, 편지 쓰는 걸 좋아했던 것이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시나리오가 완성된 다음에는 경험이 많은 신성훈 감독님께서 투자와 스태프 구성을 담당하고, 저는 배우 캐스팅과 촬영 현장 진행을 맡아서 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모르는 것은 묻고, 또 힘들거나 어려운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챙겨가며 적응했어요.
8월에 크랭크인했으면 한여름 뙤약볕에서 촬영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같습니다. 직접 겪어본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한여름 더위 속에서 시작한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매일이 강행군이었어요. 덥고, 습한데다 무엇보다 비가 많이 와서 새벽에 시작해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나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저와 비슷한 연배였던 촬영감독님을 제외하고 스태프 대부분 20~30대였는데, 하나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참여하니까 저 역시 도저히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살도 많이 빠졌지만, 이를 악물고 했습니다.
특히 저는 장애인들과 오랫동안 밀접하게 지내온 만큼 현장에서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 손끝 발끝 등 디테일에 많이 신경 썼어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신 감독님이 저의 그 세심한 연출 덕분에 영화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안도감이 들더라고요.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배우를 찾는 공개 오디션에서 장애인 연기를 준비해 달라는 주문을 했는데 대부분 삶의 고통 한가운데 있는 아픈 장애인을 표현하는 데 급급하더라고요.
일반인이 생각하는 장애인은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모습만 있는 건가 싶어 마음이 너무 답답했어요. 장애인 역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고, 그중에서도 특히 웃을 때 얼마나 천진난만한데요. 하지만 그런 걸 표현해 주는 배우가 단 한 분도 안 계시더라고요.
그때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 하는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꾸준히 이어온 봉사 활동이 결국 63세 신인 영화감독 박영혜의 데뷔를 일궈냈네요?
봉사활동의 시작은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시설에서 반찬을 만들어주는 거였어요. 그곳에 가면 유독 저를 반가워하며 연신 “예쁜 누나, 예쁜 누나” 하면서 살갑게 따르던 친구가 있어요.
처음 봤을 때 서른다섯이었으니 지금은 마흔다섯살이 되었겠네요. 저는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더라고요. 속으로는 ‘예쁜 누나 소리 듣고 싶어서 자꾸 거길 가나?’ 생각했을 정도라니까요. 해맑고 티 없는 그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면 기쁨과 보람이 마음속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아요.
그러다 손자 한승이를 키우면서 동화 구연, 마술 등을 배웠는데 그 때 함께 배웠던 동료들과 공연하는 봉사 모임을 만들었죠. 어린이 시설, 장애인 시설, 노인 시설 등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10여 년간 활동하고 있어요. 신성훈 감독님 역시 봉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어 그간 친분을 쌓아온 것이 이렇게 함께 영화를 만드는 인연으로 이어졌고요.
처음에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워낙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그때마다 늘 도와주고 응원해 주죠. 이번에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들 태성이는 자신이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영화 관련 책을 한아름 가져다주는가 하면,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는 두 아들이 노트북을 마련해 주기도 했어요. 집에 노트북이 있어도 아들이 집에 없을 때나 손자가 학교 갔을 때 슬쩍슬쩍 만져보던 게 전부였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제 컴퓨터가 생겼지요. 그래서 지금도 그 노트북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답니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 나이가 걸림돌이 되진 않았나요?
애초에 영화감독에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이유는 장애인 커플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있는 그대로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였어요. 그런데 신성훈 감독님께서 실화 바탕 영화의 경우 실제 스토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만들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며 감독 역할을 제안하셨지요.
그때 나이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저는 늘 나이 때문에 못 할 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거든요.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할 뿐이잖아요. 게다가 제가 체감하는 63세는 여전히 무척 젊어요. 그래서 나이로 인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내가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은 컸는데 가족들의 지지가 용기를 주었습니다.
국내 개봉 전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받았습니다. 감독님의 데뷔 나이도 큰 관심이었을 것 같아요.
지난 9월 31일에 첫 번째 수상 소식을 접하고 오늘까지 전 세계 55개 영화제에서 상을 46개나 수상했습니다. 팬데믹 시기인지라 영화제들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한동안 실감이 안 났어요. 그러다 얼마 전 ‘제13회 LA웹페스트’에 초청받아 다녀왔는데, 현장의 열기를 느끼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꿈만 같고 정말 영화같았습니다.
저희 영화가 호명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지르게 되고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더라고요. 발표가 나고 저와 감독님이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그제야 사람들에게 제 나이가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관계자들이 할리우드에서도 63세에 데뷔하는 감독은 흔치 않은 일인데,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내년에 꼭 다시 한번 영화제에 와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영화감독 데뷔가 목표가 아니었고, 그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뿐인데 인정까지 받았습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가지 이름으로 살잖아요. 저 역시 딸, 아내, 며느리, 엄마, 할머니 그리고 최근에 감독이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었는데 아직은 영화감독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저에게 딱 어울린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주변에서 감독님, 감독님 하고 부르면 여전히 몸 둘 바를 모르겠고, 수상 소식이 들려와도 믿기지 않고요.
물론 영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얻은 감격과 기쁨이 굉장히 크지만 당분간은 일상으로 돌아와서 고갈된 체력을 보충하고 가족을 돌보고, 봉사 모임도 이어가려고 해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보람과 기쁨이 굉장히 값진 것이거든요. 그렇게 다시 일상을 열심히 살며 이야기의 소재를 찾고 글을 써볼 생각이에요.
살아보니 60대와 50대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던가요?
사람들이 흔히 40대는 40km, 50대는 50km, 60대는 60km 속도로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요즘 그 말을 실감합니다. 불과 엊그제 환갑이었는데, 이제 한 달만 있으면 64세가 되고, 조금 있으면 노령 연금을 탈 나이가 돼요.
무엇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가야금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소소하지만 작은 도전을 통해 일상에서 성취감을 쌓아가며 60대를 보낼 생각이에요.
이번에 영화감독에 도전하면서 60대에도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용기를 얻었거든요.
좋아하는 일에 맘껏 도전하고 싶어도 60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하는데요.
마음속에서 내 나이를 지워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제 주민등록증을 잘 안 봐요. 제가 몇 살인지 잊을 정도로 나이를 세지 않고 살죠.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나이 때문에 못 할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찢어진 청바지를 입을 수 있고, 배낭 메고 다닐 수도 있어요. 다만 그렇게 나이를 잊고 살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예요. 무엇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죠. 몸이 건강해야 작은 것 하나라도 도전할 용기와 여유가 생기거든요.
생각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기질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새로운 것이 있으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죠. 어느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맛보면 뭐가 들어갔는지 자세히 보고 집에 와서 똑같이 흉내 내 봅니다. 동화 구연도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더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배운 거거든요.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멋지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똑같은 일상 속에서 좀 더 잘해보고 싶다거나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미루거나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에요. 그런 작은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것이 저에겐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것 같습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전원생활을 하려면 20년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저 막연하게 전원에 가서 집을 짓고 살면 100% 실패한다고. 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작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정확하게 아는 것일테고요.
남들 눈에는 가족들 돌보느라 온전한 제 삶이 없었던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제게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제가 스스로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런 삶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그 꿈을 이루는데 나이는 결코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더 열심히 살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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