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외환딜러는 어떻게 춘천 관광명소의 목장주가 됐을까?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에 위치한 ‘해피초원목장’. 한우를 방목으로 키우고 있는 개인 목장으로 SNS에서 유명한 춘천의 관광명소 중 한 곳이다. 목장주 최영철 대표가 마흔 즈음 귀농, 2라운드 삶으로 일군 값진 결과물이다.
목장주 최 대표는 사실 한우와는 거리가 먼 외환 딜러였다. 수시로 변하는 외환시장의 가격정보를 확인하고 국제동향을 파악, 분석하는 등 외환 딜러로서의 삶은 하루하루 치열했다. 연봉이 올라갈수록, 커리어를 인정받을수록 쌓이는 스트레스와 업무 중압감도 커갔다. 직장생활 자체가 제로섬 게임처럼 느껴졌다.
마흔 즈음, 그는 일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2라운드 환승역에서 그는 삶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깊게 고민할수록 도시에서의 2라운드는 싫었다. 결론은 내 사업을 하되 대상지는 농촌으로 정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세 가지였다. ‘현금으로 거래하고, 외상이 없으며, 재고 부담 없는 일’을 해보자.
“1993년에 고향 춘천으로 내려왔습니다. 귀향하기 전에 1년 동안 친척과 축산 관련한 일로 동업을 했는데 농촌에서 현금이 돌고 외상과 재고가 없는 일이 한우 사육이더군요. 그래서 소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도시 탈출, 자연에서 한우 방목을 시작하다
그러나 기존의 한우 목장과 다른 시각으로 축산에 도전하고 싶었다. 일단 사람이 모이게 하자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즉, 축산업 자체의 생산성을 기본으로, 농축산물 가공, 관광 등을 연계하면 부가가치가 높아질 것이라 기대했다.
“미국계 은행에서 일할 때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어요. 현지 딜러들과 목장에서 열리는 가든파티에서 어울리곤 했는데 그때 목장의 사업성을 발견했습니다. 1차 산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조 및 가공의 2차, 서비스인 3차 산업이 모두 결합된 형태, 즉 6차 산업으로서 축산업의 미래를 8~90년대에 이미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한우 방목장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자신만의 구상을 차근차근 설계해 나갔다. 축산업은 레드오션이 아니라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그만의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대신 경험치를 쌓기 위해 6개월 정도 젖소 목장에서 일하며 목장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소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확인했다.
경험치가 쌓이자,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목장을 설계했다. 목장 부지는 산으로 정했고, 주변 자연경관도 고려했다. 이곳은 주변에 춘천호가 있고 춘천호를 둘러싼 산줄기가 수려하다. 목장 부지는 23만 제곱미터(약 7만여 평)로 일부는 시유지를 임대했고 일부는 매입했다.
“처음에는 그냥 산이었어요. 경사가 심해 목장을 만드는 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길을 닦고 초지를 조성하고 물, 전기도 새로 들어야 했어요. 우사를 짓고 나니 생각보다 지출이 컸어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시작은 한우 암소 6마리와 함께였다. 이후 150마리까지 늘면서 수입이 안정화되던 중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환율 때문에 사료 값이 치솟았다. 게다가 현찰로만 구매할 수 있었다. 반면 한우 가격은 급전직하. 겨우겨우 버티며 살아남았지만, 2008년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두 번째 위기는 기반까지 흔드는 혹독한 시련이었다.
“두 번의 위기를 통해 농사도 결국 경영이라는 것을 뼈아프게 실감했어요. 투자에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듯 안정적인 소득,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했습니다.”
목장에 관광을 입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다
처음부터 고민했던 목장에 관광을 결합하려는 계획을 실천할 때가 된 것이다. 산 중턱 너른 초지에서 방목으로 키우는 한우, 호수와 산을 감싸 안은 목가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자연경관이 경쟁력이었다. 마침 목장은 강원도축협으로부터 강원도 한우 브랜드인 ‘강원한우(과거 하이록한우)’ 체험목장으로 지정받았다. 금전적 지원은 없었지만 덕분에 관광과 체험을 겸한 목장으로 변모시키는 동력이 됐다.
“목장 진입로를 정비하고 자연학습장, 동물체험공간, 휴게공간, 팜 카페, 산책로, 주자창 등을 갖췄고 면양, 당나귀, 공작새, 토끼, 흑염소 등 다양한 동물들을 목장의 새로운 식구로 들였죠. 그렇게 2012년 12월에 체험목장을 개장했는데 시설비용을 마련하느라 소 120마리를 팔았더군요.(웃음)”
현재 해피초원목장에서는 너른 초지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는 한우, 양, 당나귀를 만날 수 있다. 특히 한우 방목장은 춘천호와 춘천호를 둘러싼 산줄기와 마주하고 있어 ‘알프스 같은 전망’으로 SNS에 입소문이 나면서 춘천의 포토존, 관광명소가 됐다. 해마다 늘어나는 방문객 덕분에 수익도 개선되었다. 코로나 19 와중에도 10월 말 기준 약 13만여 명이 다녀갔다.
“2018년부터 체험목장 입장료 수입이 크게 늘면서 현재 목장의 수익 구조는 체험목장 운영 70%, 한우 사육 30% 정도입니다. 체험목장 운영으로 바쁘다 보니 한우는 현재 30마리 정도만 사육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한우를 더 늘릴 계획입니다.”
농업을 미래의 직업으로 만들고 싶다
해피초원목장은 체험목장 외에 춘천시 농촌교육농장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저의 사회적 역할이나 책임을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청소년 농촌체험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그는 전문 농업경영인으로서의 전문성도 키워 나갔다. 농촌교육농장 교사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고 유럽으로 농촌교육농장 견학도 다녀왔다. 그런 노력 덕분에 목장은 지난 2013년 춘천시 농촌교육농장, 2016년 진로탐구 현장체험처(중학교 자유학기제)로 지정 받아 매년 중고등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농업과 농촌의 가능성에 매력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현재 농업이 많이 기계화됐습니다. 농산물 가공 및 제조는 물론 관광이나 체험을 결합할 수 있어요. 농사는 힘만 들고 돈벌이가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버려야 해요. 청소년들에게 농업을 미래 유망직업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금융맨으로서, 목장주로서의 저의 산 경험들이 청소년의 진로 선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장을 일구고 한우를 키우며 30년 가까운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갑이 아닌 사람을 보게 되고 고집이 아닌 뚝심으로 삶을 채우게 된다는 최 대표.
“남들이 선망하는 외환딜러로서의 삶을 버리고 귀농한 이후, 소를 키우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음을 단단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소를 통해 인생을 배웠죠. 우직한 한우처럼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뚜벅뚜벅 힘있게 걷다 보면 남은 인생길이 매일매일 가벼워진다는 것을요.”
기획 이채영 글 김남희 사진 이준형(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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