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쉼표가 필요할 땐 걷기 좋은 슬로시티 남양주 어때요?
일상의 변화와 휴식이 필요할 때, 느려서 행복한 도시 남양주로 떠나보자.
슬로시티(slowcity)란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이다.
1999년 이탈리아의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시작한 슬로시티 운동은 지역이 지닌 전통문화와 자연을 보호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자는 것으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가 깔려 있다.
이 천천히 살기 운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20년. 슬로시티는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 현대인에게 여유 있는 삶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가 만연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남양주는 국제슬로시티연맹에서 인증받은 국내 15개 슬로시티 중 한 곳이다.
다산길에서 만난 슬로시티 모습 |
남양주는 걷기 좋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다양한 걷기 대회를 개최하고, 시의 주요 지역을 연결해 ‘다산길’이라는 산책 코스를 조성해놓았다.
특히 다산길 2코스는 총 13개 코스 중 슬로시티의 핵심으로 꼽히는 조안면을 둘러보는 데 제격이다. 다산길 2코스를 따라 슬로시티로서 남양주의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능내역을 찾았다.
남양주가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주요 이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능내역은 남양주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1956년에 간이역으로 시작해 중앙선이 다니던 능내역은 2008년 중앙선 선로가 이설되면서 폐역이 됐다. 작고 소박한 이 기차역은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지만, 옛 모습을 복원해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덕분에 쓸쓸히 잊힐 뻔하던 폐역은 시골 기차역의 향수를 만끽하러 온 이들로 활기를 띤다. 그리고 역 앞으로는 남한강 자전거도로가 펼쳐져 자전거 여행객의 쉼터로도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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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내역을 시작으로 다산길 2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꽃이 지천으로 핀 연꽃마을이 나온다. 조안면 주민이 직접 조성한 이 마을은 산책로를 따라 넓게 이어져 방문객에게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하늘을 향해 커다란 잎을 벌리고 그 가운데 수줍게 꽃을 피운 연. 단아한 모습에 넋 놓고 보다 보면 어느새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다산생태공원에 다다른다. 남양주는 전체 면적의 84%가 상수원 보호구역인 데다 땅의 70% 이상이 산림 보존 지역으로 자연환경이 쾌적하다.
물과 나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다산생태공원만 봐도 남양주가 얼마나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인지를 알 수 있다. 1만 평이 넘는 넓은 부지에 대나무와 생강나무, 복분자 등 18종 나무 7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고, 팔당호를 바라보며 탐방로를 걷다 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다산 정약용이 사는 곳 마재마을 |
다산생태공원을 나와 정약용 선생의 얼이 깃든 마재마을로 들어섰다. 1762년, 다산 정약용은 철마산에서 무쇠로 만든 말이 나와 마재라 불리던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성균관 유생 시절과 과거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할 때도 수시로 찾았으며,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를 마친 뒤에도 이곳으로 돌아와 삶을 정리했다.
그만큼 그의 애정이 가득 담긴 마재마을은 25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산유적지로 조성해 정약용 선생의 삶과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있다.
다산유적지는 실학박물관을 거쳐 다산문화관, 다산 정약용 생가, 정약용 선생 묘 순으로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실학박물관은 조선 후기 실학에 관한 여러 자료와 정약용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다. 정약용 선생이 왜 실학에 초점을 두고 정치기구의 개혁과 노비제 폐지 등을 주장했는지 당시 시대상과 연결해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다산문화관과 다산전시관에서는 정약용 선생의 풍부한 학문적 소양을 엿볼 수 있다. 다산은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과학·의학·군사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두각을 드러냈는데, 다산문화관에서는 특히 조선 후기 과학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기려 그가 직접 고안한 거중기와 배다리 등을 소개한다.
다산유적지 뜰 안쪽에는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자리한다. 다산은 자신의 집에 ‘여유당(與猶堂)’이란 당호를 붙였는데, 이는 ‘겨울 냇물을 건너듯, 이웃을 두려워하듯’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라는 뜻이 담겼다.
여유당은 이름만큼이나 정직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외부로 트인 사랑채를 지나 안채에 들어서면 이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목민심서>를 집필했을 다산의 꼿꼿한 모습이 그려진다.
동방 사찰 최고의 경치 수종사
남양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운길산 수종사(水鐘寺)다. 1458년(세조 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한밤중에 난데없이 종소리가 들려 조사해보니 다름 아닌 바위 굴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고 한다. 세조는 그 자리에 절을 지으라 명했고, 물이 종소리를 낸다 하여 수종사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수종사의 풍경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조선 전기 학자인 서거정은 수종사를 가리켜 “동방 사찰 최고의 경치”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종사에 다다르면 저 멀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차게 흘러온 두 물줄기는 서로를 감싸며 조용히 한 몸이 되는데, 그 그림 같은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 선생, 추사 김정희 선생도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수종사의 경치를 즐겼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수많은 삶의 방식이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나 더 많이 갖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면, 조금은 덜 갖고 느리게 사는 것도 가치가 있을 터. 슬로시티 남양주는 수려한 자연과 유구한 전통 유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이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깨끗한 물과 토양이 반겨주어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기획 김승희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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