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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점장에서 퇴직 후 지리산으로 들어간 까닭은?

명예퇴직금을 마다하고 퇴직해 지리산 앞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린 인물이 있다. 일명 ‘지리산이 택한 남자’ 정영혁 씨다.

“지금 던지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은행의 지점장. 몇 년만 더 일하면 차곡차곡 쌓인 퇴직금을 받고, 박수를 받으며 떠날 수 있었을 자리를 왜 나왔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계시처럼 다가온 퇴직은 그를 어떤 연고도 없었던 지리산으로 이끌었다.


사실 그가 산으로 간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원래 알아주는 산 마니아이기 때문. 중학교 때부터 국내 산을 섭렵하기 시작해 퇴직하기 직전까지 쉬는 날만 되면 해외 유명한 산을 올랐다. 그를 설명하는 단어에서 은행원만 빼면 그는 ‘산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Q 퇴직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은행에서 일한 건 24년이지만 산에 다닌 지는 42년 됐어요. 은행에 있으면서도 제 레이더는 늘 산으로 향해 있었죠. 그러다가 지인이 지리산의 한 온천에 일할 자리가 하나 났는데 오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백두대간 산맥 한 자락에 베이스캠프 차리고 인생 후반전을 살고 싶다’였거든요. 그 제안을 받으니 이 때다 싶었죠. 딱 두 가지만 내려놓으면 지리산에 갈 수 있겠더라고요. 바로 돈과 사회적 지위였지요.


딱 하루 고민하고 퇴직을 선언했습니다. 5년 빠른 정년이었고, 명예퇴직을 받는 기간에 퇴직을 신청하면 훨씬 많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도 아닐 때 사표를 던지니 다들 제정신 아니라고 했어요. 

Q 돈, 사회적 지위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었나요?

13년 전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크게 수술을 했어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때 뭔가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생각이 완전히 전환된 건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예요.


히말라야의 원주민들은 정말 가난해요. 세계 경제력 규모를 보면 뒤에서 3등 정도랄까요? 그런데 삶의 만족도는 세계 랭킹 선두에 있어요.


그렇게 관광객이 몰리는 상업지역이어도 돈에 휩쓸리지 않고 본인의 만족 대로 사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사람답게 사는 일,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Q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연애할 때부터 배낭 하나 메고 산에 가는걸 좋아했고 하고 싶은 건 해야하는 성미라는걸 아니까 아내는 덤덤하게 지원해줬어요. 가족들은 지금 서울에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올라가서 만나는데 아주 좋아요. 50세가 넘으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사랑이고 평화더라고요(웃음). 

Q 지리산으로 와서 어떤 일을 하셨어요?

일단 온천에서 관리직으로 일을 하면서 지리산에 정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세계맥주집, 편의점, 치킨집까지 열어봤는데 다 망했죠. 공중에 날린 돈을 합하면 수억 될 거예요.


어차피 마음 먹고 도전해본 거라 다 괜찮았는데 가장 슬펐던 건 사람이었어요. 선의로 한 일이 안 좋게 받아들여지는 등 사람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일이 정말 많았어요. 수업료 내고 사람 공부했다고 생각합니다.

Q 노고단 게스트하우스&호텔은 어떤 계기로 열게 됐나요?

지리산에 온 지 3년 정도 되니까 진짜 꿈꾸던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워낙 산을 좋아해서 저 같은 사람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와중에 지금의 건물을 만나게 됐죠.


지리산 온천이 관광특구가 된 지 23년 됐는데 그 시점에 지어진 오래된 모텔을 고친 거예요. 3개월 동안 매일 리모델링 전문가 한 명 한 명 만나서 의논하고 잔소리(?)하면서 컨셉트에 맞게 고쳐 문을 열었습니다. 

Q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일단 겨울 추위가 엄청났어요. 집에 있어도 턱뼈가 덜덜 떨릴 정도라 웬만큼 건강한 사람 아니고는 버티기 힘들다 생각했어요. 다음은 사람이 가장 힘들더군요. 여기 문을 열기 전 3년 동안 지리산에서 이런저런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원주민들과 부딪히는 수준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자리 잡아가면서 지금은 괜찮아졌는데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어요. 


Q 게스트하우스라기에는 규모가 제법 큰데 어떻게 운영하세요?

저랑 청소하시는 분, 펍 담당하시는 분 총 3명이 일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3명을 더 두고 6명이 일을 했는데 인건비가 안 나오니까 구조조정을 했죠. 바쁜 시기에는 아르바이트를 씁니다.


숙박업이라는 게 손님이 많을 때나 없을 때나 바쁜 건 똑같더라고요.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본 적 없고 19시간씩 일하고 있더라고요. 은행에서 이렇게 일했으면 초고속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었을 거예요(웃음).

Q 수익은 괜찮나요?

처음 문 열 때 3년은 투자하겠다 했는데 진짜 3년 동안 마이너스였어요. 이제 간신히 ‘똔똔’이 됐어요. 앞으로 더 괜찮을 거라고 믿는 이유가 ‘지리산 게스트하우스’ 검색하면 우리 노고단 게스트하우스&호텔이 제일 먼저 나오고 평점도 높아요. 또 재방문하는 고객이 많고요. 딸이 왔다 가면 다음에 엄마와 함께 오고, 회사 연수로 왔다가 다시 가족과 함께 와주세요.

Q 재방문이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게스트하우스는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지리산 등산이나 종주, 둘레길을 걷고 싶어하는 분들이 찾아주시는데, 깔끔하게 딱 필요한 것만 가져다 놓고 등반에 집중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숙박시설로 으뜸이거든요. 또 걷기 후에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도 마련해놔서 많이 좋아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지리산에 수없이 올랐던 만큼 리얼한 팁을 많이 알려주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가이드도 해줘요. 해외 숙박 예약사이트를 통해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온 외국인들이 남긴 평을 보면 고급 정보를 알려줘서 지리산 종주 잘했다는 후기가 엄청 많아요. 

Q 은퇴를 앞둔 분들이 많이 부러워할 것 같아요.

저를 만나는 중년 남자들 대부분이 다 부럽다고 해요. 퇴직 후에 공기 좋은 곳에 와서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사니까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막연하게 귀농귀촌한다 생각하면 백전백패예요. 저도 가진 거 전부 올인하고 이걸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니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어요.

Q 앞으로 좀더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숙박업은 시간이 지나면 리모델링으로 돈이 크게 나가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히말라야 갔을 때 아주 인상깊었던 게 있었어요. 롯지에 여행자들이 와서 자기 흔적을 곳곳에 빼곡하게 남기면 롯지 주인장이 오래된 메모를 떼고 새 메모를 붙이는데, 그게 본인 사는 낙이라고 하더군요.


어찌나 부럽던지 저도 이곳이 좀더 여행자들의 아지트처럼 그들의 사진과 내음으로 빼곡히 채우는 게 꿈이 됐어요. 그게 노고단 게스트하우스&호텔의 리모델링인 셈이죠.


기획 서희라 사진 이대원(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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