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구리당당 김정렬이 인생 2막에 관을 짜는 이유
‘숭구리당당’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보여줬던 개그맨, 젊음과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세계에서 설 자리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인생을 고민 중인 그가 시도하는 두 번째 카드는 목공이다.
방송 환경의 변화로 요즘은 개그 프로그램 자체가 줄었다. 개그맨들은 가수를 겸업해서 ‘개가수(개그맨+가수)’로 활동하거나 교양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트렌드에 맞게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도전해서 새로운 개인 채널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선배 격인 시니어 개그맨들 역시 과거 자료를 활용하거나 옛 추억과 향수를 공유할 수 있는 세대를 겨냥한 유튜브 채널을 열어서 활동하기도 하지만 수익을 낼 수 있는 규모로 운영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개그맨 이봉원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업 실패의 역사를 들려준 것처럼 나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출연 횟수가 줄어든 연예인들이 쉽게 선택하는 것은 ‘식당’ 사업이다.
올해로 39년 차인 개그맨 김정렬 씨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선택한 것은 목공. 개그맨이 하는 목공은 무엇이 다를까 궁금해하는 사이, 그가 만드는 것이 가구가 아닌 ‘관’이라는 사실에 폭소하게 된다. 그야말로 개그맨다운 인생 2막의 시도다.
방송활동이 뜸한데, 새로운 시도를 모색한다고 들었습니다.
파주에 있는 목공방에서 6개월 정도 목공을 배웠어요. 그것이 10년 전입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 뒤 지인 소개로 지금 이용하고 있는 일산의 목공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0년이면 상당한 경력인데, 목공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39년간 개그맨으로 살아왔는데 그 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렸을 때 팽이나 썰매 같은 것을 잘 깎고 만들었고 지게 같은 것도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던 기억도 있고 끌질도 잘했어요. 아,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취미로 배워서 은퇴 후에는 생활에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그렇다면 전문적으로 배워야지 싶었지요. 톱질하고 못질하는 수준으로는 안 되잖아요. 전통 방식인 짜 맞춤 가구 제작을 배운 이유입니다.
짜 맞춤 가구를 배우는 과정은 일반 목공과 다르나요?
톱과 끌, 대패 사용에 대한 기본 기술을 먼저 익힙니다. 요즘에야 모든 것을 기계로 해낼 수 있지만 기본을 알아야 합니다. 기계로 만들더라도 마지막 공정에서 다듬는 것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고요.
6개월 동안 배우면서 처음에는 스툴과 TV 보드를 만들었어요. 이후에 함께 익힌 사람들과 전시를 하면서 운 좋게 팔려서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직접 만들어서 집에서 사용하는 가구도 있나요?
침대와 콘솔, 의자 같은 것은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공을 배우고 취미로 해오면서 인생 2막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목공으로 생활을 이어가기가 솔직히 쉽지 않아 보여요. 수요가 너무 없으니까요. 나야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정말 ‘비생활적’인 일이지요. 취미가 아닌 생업으로 하기 위해서는 한 분야나 아이템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서 만들더라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쉬운 아이템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싶은데 요즘 도마를 만들거나 새를 깎거나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주문을 받고 팔기 위해 목공을 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거나 작가로서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목공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저 역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생활에 보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공 작가를 지향하지만 팔렸으면 좋겠어요. 팔린다면 내가 목공을 잘한다는, 잘 만든다는 뜻이 아니겠나 싶어요.
독특하게도 관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은 가구나 공예품을 떠올리는데 어떻게 해서 관을 만들 생각을 했나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관조차 살 수가 없었지요. 외상으로 관을 썼는데 그게 평생 마음에 걸렸어요. 어린 나이였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불효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세상에 계신 아버지에게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관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의미이지요. 무엇보다도 짜 맞춤으로 정성 들여 관을 만드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가구는 다 만들지만 관을 만드는 사람은 없으니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일종의 틈새시장이랄까요(웃음).
관은 언제부터 만들었나요?
4년 됐어요. 그런데 그동안 제작한 수량이 많지 않아요. 미리 주문받아서 만들어야 하는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수의와는 달리 관은 미리 만들어놓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지인들이 부모님을 위해 주문한다든가 해서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은 3개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무연고자로 돌아가신 분이나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장례에 사용할 수 있는 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가는 길이 좀 더 따뜻할 수 있도록 재능 기부를 할까 생각합니다.
요즘 공방에 나와서 어떤 작업을 하나요?
주문을 받게 되면 뭔가 만들지만 주문이 없는 때는 기법을 익히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수공구로 사개맞춤이나 주먹장의 장부를 가공하는 연습을 하지요.
요즘에는 목공 기계가 잘 나오기도 하고 가공을 돕는 도구인 지그도 잘 나와 있지만 수공구를 좀 더 잘 쓰고 싶어서입니다. 가구라는 것이 1밀리미터 이하의 오차로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신만의 공방을 열어볼 생각은 없나요?
개인 작업을 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데 아내가 도시 생활을 원해요. 나 역시 시골 출신이지만 농사를 짓거나 한 경험도 없어서 적응이 필요하고요. 그래서 예행연습을 한번 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미국에 몇 년 살면서 부동산중개인 자격을 취득한 일이 있던데 흥미로웠습니다.
자녀들의 어학 공부를 위해 가족이 다 함께 미국에 갔었어요. 아이들만 공부시키는 게 아니라 나도 영어 공부를 하고 실력을 테스트해보자는 생각에 에어컨 수리 기사 자격 필기시험을 봤어요. 주간지 두께 정도의 교재를 보고 공부했는데 쉽게 합격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평소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는 부동산중개인 자격시험을 보자는 생각에 하루에 13시간씩 1년간 공부해서 텍사스주의 부동산중개인 자격을 취득했지요. 여섯 번 시험에서 떨어지고 일곱 번째에 합격했답니다(웃음).
평소의 허당 이미지와 달리 관심사도 많지만 열정도 많아 보입니다. 인생 2라운드를 위해 준비한 목공이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오래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준비를 했는데 잘 맞는 곡을 만나서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선수’로서 가수로 활동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새로운 일을 인생 후반전에 도전해본다는 의미가 크고요.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아왔고 앞만 보고 살면서 생긴 흰머리가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게 아니니 후회하지 말자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기대해주세요.
글, 사진 이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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