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기사에서 웨딩카 운전원, 노경환 씨의 창업스토리
서비스업은 재취업이 어렵다는 공식을 과감히 깨뜨린 사람이 있다. 노경환 씨는 호텔리어에서 갈고 닦은 서비스 정신으로 ‘웨딩카 운전원’을 창직했다.
1라운드를 마치려니
나에게 은퇴는 쉼표가 아닌 마침표였다
호텔리어 경력만 20년. 노경환 씨는 ‘호텔에서 일한다’는 것이 생경하던 시절부터 일을 시작해 호텔 총지배인까지 오르면서 ‘호텔리어’라는 정체성으로 1라운드를 살아왔다. 그의 삶이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시점은 63세 때 찾아온 ‘은퇴’였다. 이때만 해도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그저 현재의 소임을 다할 뿐이었다. 그렇게 호텔리어라는 거대한 물살에 떠밀리듯 살아왔던 그에게 은퇴는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온 ‘뜻밖의 불청객’이었다.
“전혀 준비를 못 했어요.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마음 한편엔 부푼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여태껏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막상 은퇴하고 나니 환상이 금방 깨졌어요. 수입이 끊겨 돈이 궁해지니 비로소 현실이 보이더라고요.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은 낮아지고, 사람들도 피하게 됐어요. ‘설 곳’은 물론 ‘기댈 곳’조차 없어져버렸죠. 그래서 어떻게든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은퇴자들을 위한 재취업 시장이 정말 좁더라고요. 특수직이나 기술직, 전문직이면 모를까, 저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더 갈 데가 없는 게 현실이죠.”
1라운드를 마치고
호텔리어에서 대리운전 기사로
하루하루 근심의 층위가 깊어져 가던 노 씨는 우연히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친구와 만남이 닿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친구는 재취업을 했다는 것이고, 그 일은 ‘대리운전’이었다. 친구는 대리운전에 대해 ‘현실 조언’을 해주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노 씨는 대리운전에 입문하게 된다. 대리운전도 결국은 서비스직이었다. 그에게 서비스란 오래 걸친 외투처럼 너무도 친근한 말이었지만, 대리운전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대리운전을 ‘막장직업’이라 하더라고요. ‘마지막 직업’일 만큼 힘들고 어렵단 얘기죠. 직접 해보니 힘든 점이 참 많았어요. 일단 대리운전을 폄하하는 의식이 있다 보니 저보다 한참 어린 손님들의 무례함이 저에겐 곤욕이었죠. 운전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시비를 걸거나, 조수석에 앉아 신발을 벗고 글로브 박스 위에 발을 올려 놔요. 이외에도 술에 잔뜩 취해 대리 부른 것도 기억 못하는 사람,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이 많아요.”
노 씨가 대리운전을 하면서 주목한 사람은 ‘손님’만이 아니었다. 바로 함께 일하는 동종업계 사람들. 노 씨처럼 은퇴 후 이 일에 뛰어든 ‘은퇴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자신이 은퇴 후에 느꼈던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을 그들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노 씨는 은퇴자들의 애환을 무시한 채 자신만 잘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자신이 그랬듯 은퇴 이후 길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만들자고.
"제가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요. 어느 날 한 번 제가 옷을 격식 있게 차려 입고 대리운전을 나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 손님들의 반응이 이전과 현저히 다른 거예요. 무시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자세를 갖춰 잡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나’라는 상품을 고급화하는 게 중요하구나.
자신감이 붙은 저는 동료들에게 얘기해줬어요. 웬만하면 잠바 입지 말고, 운동화 신지 말라고. 내가 누추하면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무시당한다고 말이죠. 제 말에 공감한 동료들 또한 저처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이 모습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대리운전 일에 만족할 게 아니고, 우리 같은 은퇴자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힘써야겠다고 말이죠.”
1.5라운드를 지나며
배움은 2라운드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
노 씨가 새로운 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아들의 결혼식날이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결혼식날인데도 새벽부터 부랴부랴 직접 운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노 씨의 입장에선 결혼하는 사람의 웨딩카는 친구나 직장동료가 해주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운전을 부탁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고 결례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다. ‘은퇴한 사람들이 결혼식 이동서비스를 제공해주면 어떨까?’
“신랑신부는 결혼식 하루를 위해 그전부터 많은 준비를 하잖아요. 그런데 당일날까지 스트레스 받아가며 힘들면 안 되죠.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좋은 날, 시니어들이 안정감 있게 운전을 해주면 그들도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제 아이디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물었어요. 그러자 젊은 사람들은 꼰대가 운전하는 걸 싫어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기성세대들의 생각이었어요. 막상 젊은 친구들의 생각을 들어보니 ‘착한 소비’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디어가 승산이 있겠다 싶어 사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죠.”
그치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건 창업 경험이 전무한 노 씨에게 어려운 작업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족한 창업 자금으로 인해 아내 또한 반대했다. 두 가지 어려움이 노 씨의 발목을 꽉 잡은 것이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무작정 인터넷에 ‘창업’이라는 단어를 두들겼다. 그는 생각보다 창업에 대한 지원책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고심 끝에 그가 선택한 건 상상우리에서 진행하는 ‘창업아카데미교육’이었다. 이 교육 덕분에 그는 창업에 대한 모호함이 섬세함으로,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뀔 수 있었다.
“상상우리에서 5개월간 교육을 받았어요. 시간으로 따지면 216시간 정도죠. 이 수업이 없었다면 저는 창업을 못 했을 거예요. 그리고 이곳은 일반 창업이 아니라 사회적기업 창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저의 취지와 잘 맞았죠. 일단 사회적기업이 뭔지에 대해 배우고,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사회적기업이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배워요.
제 경우는 단순히 웨딩카 서비스가 아니라 은퇴 시니어들에게 웨딩카 운전일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가치가 생겨나도록 하는 거예요. 이렇게 웨딩카 운전원에 대한 아이디어가 하나씩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창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2라운드를 맞이하다
대리운전 기사에서 웨딩카 운전원 대표로
그리하여 2016년 10월 ‘더쇼퍼’라는 이름의 사회적기업이 설립됐다. ‘쇼퍼’란 고급 승용차에 귀빈들을 태우고 운전하며 일반 운전기사가 해내지 못하는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수 운전기사다. 노 대표는 결혼식 당일 신랑신부는 물론 이들의 가족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웨딩카를 운전해 주는 우리나라 최초 ‘웨딩쇼퍼’가 되었다.
더쇼퍼는 궁극적으로 웨딩쇼퍼를 통해 은퇴 시니어와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세대통합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처음 혼자서 했던 일이 현재 총 12명의 직원들이 힘을 합쳐 웨딩카 운전원으로 일하고 있다. 웨딩쇼퍼들은 결혼식날 신랑 신부를 태우고 미용실, 결혼식장, 공항까지 운전해주는 ‘맞춤 이동서비스’를 제공한다.
“2017~2019년까지 2년 2개월동안 신혼부부 325쌍에게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보통 결혼식은 주말에 하고, 일요일보단 토요일에 많은 것을 감안했을 때 저희가 실제로 일한 건 130일 정도예요. 점점 늘어나는 손님에 이 업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특히 제가 놀란 건 젊은 사람들이 예약할 때 ‘더쇼퍼’의 취지에 공감돼서 신청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요즘 세대의 ‘착한 소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죠 저희 세대보다 훨씬 생각이 바르고 똑똑하다는 것을 느꼈죠.”
현재 노 대표는 예약을 받고 직원들에게 일감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때 절대 ‘아무에게나’ 일을 배분하지 않는다. 신랑신부의 동선을 확인하고 최대한 교집합이 있는 웨딩쇼퍼를 선정한다. 천주교 신자라면 천주교 신자인 웨딩쇼퍼를 추천해주는 식이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 덕분에 손님들은 만족도는 매우 높다. 그래서 지인 추천으로 소개받고 예약하는 손님들이 많다. 호텔리어 때부터 몸에 밴 ‘서비스 정신’이 웨딩카 서비스의 사소한 부분까지 반영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일이 값진 건 실제 웨딩 쇼퍼들의 만족도 또한 높다는 데 있다.
“우리 웨딩쇼퍼들은 공통적으로 웨딩카 운전 일을 ‘사회 공헌’으로 생각해요. 부모 세대로서 자녀 세대들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잘 해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거죠. 그래서 다들 뿌듯해해요. 특히 손님에게 내 서비스를 인정받고, 칭찬받고, 고맙다는 마음을 전달받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게다가 돈도 벌잖아요. 예식이 보통 토요일에 있기 때문에 토요일 하루 일한다고 가정하고, 하루 평균 케어 시간이 8시간임을 감안하면 하루에 11만원, 한 달에 최소 44만원은 벌어요. 괜찮은 용돈 벌이죠. 그래서 웨딩 쇼퍼 중에 ‘여성’들이 많아요. 운전 기사하면 보통 남자를 먼저 떠올리는데 저희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에요. 손님들 또한 여성 웨딩쇼퍼를 더 선호하기도 하고요.”
노 대표의 꿈은 현재진형형이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서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은퇴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꿈을 실천 중이다.
기획 우성민 사진 지다영(스튜디오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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