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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전성기

귀농 후 ‘텃세’에서 살아남으려면...

서울 살이를 접고 충남으로 귀농해 각종 텃세를 극복하고 어엿한 10년차 귀농인으로 자리한 구재성 씨가 말하는 시골 텃세 극복기.

EBS 다큐 프로그램 '시선'의 한 장면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잘 나가는 금융맨으로 일하다가 돌연 충남 부여로 귀농한 구재성 씨. 귀농 1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농부로 자리잡았지만 마을 주민에게는 아직 ‘밭일 열심히 하는 외지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10년째 마을 주민들이 자신을 외지인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이상하거나 텃세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마을을 벗어나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로, 10년을 같은 마을에서 살던 주민에게 그 세월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촌의 공동체문화를 잘 모르는 귀농인들이 소외감과 과한 참견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고, 마을 주민들은 그것을 텃세라고 말하며 자신들을 비난하는 게 이상한 것이다. 


그는 주민과 귀농인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기대가 텃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서로의 기대를 없애면 텃세도 사라진다는 것. 또한 성공적으로 귀농귀촌을 하고 싶다면 회사에 처음 입사한 회사원의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된다는 팁도 전한다. 

CASE 1
“아침에 일도 안 하고… 저 친구 게으른 사람 아니여?”

마을의 메인 스피커 3명을 내 편으로 만들어 두세요


막 귀농귀촌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을에서 가장 입김이 센 주민을 포섭하는 일입니다. ‘말빨’은 곧 ‘여론’이라는 걸 명심하세요. 보통 마을에서 입김이 센 사람은 이장과 부녀회장, 노인회장, 새마을지도자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배우자일 확률이 더 높습니다.


왜냐면 배우자들이 마을회관에 더 자주 갈 확률이 높거든요. 이들과 친해져 내 편이 되면 어지간한 실수로 생긴 좋지 않은 여론도 쉽게 덮이고 사소한 선행도 금방 확산되어 평판이 좋아집니다.


다음은 마을에서 농사일을 가장 부지런히 하거나 경작을 많이 하는 사람을 찾는 겁니다. 농촌은 부지런한 게 1등인 사회입니다. 다시 말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끔씩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잘 먹히기 때문에 친해지지는 않더라도 누군지 알아둘 필요는 있는 것이지요. 

CASE 2
“우리 마을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적어도 3년 동안 마을 행사에 열심히 참석하세요


회사에 입사했다고 가정해 볼까요? 신입사원이 회식이나 문화 행사에 별다른 사유 없이 빠진다는 건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지요. 농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에 동화되려는 노력이 필수로, 마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주민들의 이름과 집의 위치 등을 파악하고 마을의 애로사항 등에 공감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런 태도를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건 더 중요하고요.


그 방법으로 처음 3년 정도 마을의 초상이나 회의, 면 단위의 행사에 열심히 참석하는 것입니다. 같은 동네에 산다고 해서, 농사만 같이 짓는다고 저절로 녹아 들어가진 않습니다. 농촌은 특히 사람이 귀한 곳이라 외지에서 온 사람이 마을 일에 무관심하지 않고 이런저런 행사에 잘 참석한다는 인상을 심어 두면 서서히 동질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CASE 3
“TV도 안 나오고, 물도 새는데... 와서 봐 줄 수 있는가?”

적절한 공개적 자아 비판을 하세요


10년 동안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1년 열두 달 마을 주민의 TV나 리모콘이 고장난다는 것입니다. 노인이 많은 시골에서는 기계가 고장이 나면 귀농인이 잘 고쳐주리란 기대가 있습니다. 기대가 있으면 실망도 생기는 법,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게 하는 게 좋습니다.


기대를 내려놓게 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서울에서 펜만 잡고 있던 백면 서생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기계치라고 자아비판을 하는 것이죠. 시골에서는 해봤는지, 안 해 봤는지 경험치가 제일 중요합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시도 때도 없이 A/S 기사로 불려가는 일이 사라질 겁니다. 물론 매번 그러면 안 되죠. ‘저는 잘 모르지만 A/S센터에 전화해 드릴까요?’ 등 성의를 보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CASE 4
“서울 가는 기차표 시간을 몰러.”

아는 건 아낌없이 나누세요


익숙하지 않은 시골에 살다 보면 동네 주민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내가 먼저 필요한 것들을 나누면 일이 쉬워집니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노인들에게는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터미널이나 기차 시간표, 예금 금리, 정부의 농촌정책, 농업기술센터의 복지서비스 등이지요. 이런 내용을 묻지 않아도 틈틈이 알려주면 고마워하면서 반드시 되갚아줍니다.


농촌에 살면서 느끼는 점은 시골 사람들은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일단 받으면 어떻게든 갚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김치 겉절이라도 만들어 갖다주거나 갚을 게 없으면 농자재라도 가져다 주더군요. 그러니 소소한 착한 일을 평소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로 제 경우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버스 타러 나가는 시간대에 제 차를 끌고 나가서 태워다 드리거나, 시골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치킨, 호떡 등을 만들어 배달 서비스도 했었습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인심을 얻을 수 있었죠.

마을발전기금은 이해 가능한 선으로


마을발전기금이라는 이름으로 귀농귀촌인에게만 걷는 비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비용 역시 마을마다 천차만별인데, 터무니없이 비용이 크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다.


구재성 씨는 마을발전기금 대신 전입신고하듯, 마을 어르신들께 고기와 술을 대접하는 잔치를 열어 신고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법보다 정서가 먼저인 시골에서 자신의 집을 짓는 동안 발생한 소음과 먼지를 인내하고, 동네 주민들이 살면서 잘 닦아 놓은 길과 수도 등을 사용한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잔치를 치렀다고. 


‘재능 기부’는 마을과 동화되려는 하나의 방법


한 귀촌인은 교육 시설이 미비한 마을에 재능 기부로 신뢰를 쌓았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위한 영어 교실을 연 것. 매주 토요일 1~2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람도 느끼고 아이들을 통해 몰랐던 마을 소식도 들으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중이라고. 


기획 장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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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의 재능과 경험을 교류하는 “Value Sharing 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