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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이요? 또 다른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종수의 농구人터뷰(80)] '국보급 센터' 서장훈(상)

“사람마다 여러 가지 모습이 있잖아요. 정말 까칠한 사람같이 보이는데 겪어보면 의외로 다정하고, 반대로 친근해보였는데 시크한 사람도 있고요. 정도의 차이만있지 모든 사람이 가지고있는 부분 아닐까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험으로 이것저것 알게되면서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죠. 하지만 연예인, 운동선수 등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된 이들은 이미지가 한쪽으로 고정되는 경우가 많아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처럼 굳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 싶습니다”


서장훈(49‧207cm)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중 하나다. 스포츠 팬들에게는 농구 선수로서 정점을 찍은 ‘국보급 센터’로, 일반 팬들에게는 텔레비전만 틀면 쉽게 볼 수 있는 인기 방송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호동과 더불어 가장 방송계에서 성공한 스포츠인 출신 연예인으로 꼽힌다.


최근 방송계는 스포츠인 출신들의 연예계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예전만해도 이전 경력과 관계없이 예능감을 보여줘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현재는 어느 정도 커리어만 가지고있으면 어렵지않게 적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고정 팬을 가지고 시작하는 그들의 장점을 살리고자 각 방송사별로 맞춤형 컨텐츠가 경쟁하듯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올해 제작된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천하제일장사2>, <편먹고 공치리5 승부사들>, <일타강사>, <노는 언니2>, <내일은 위닝샷>, <골 때리는 그녀들>, <최강야구>, <뭉쳐야 찬다 2> 등 다양하고 숫자도 많다.


서장훈이 그러한 스포츠인 예능 전성시대에 끼친 영향력은 적지않다. 직접적으로 무엇인가를 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예상 외로 워낙 크게 성공했고 그로인해 ‘스포츠인 출신의 스타성’을 방송계 쪽에서도 제대로 인지했다는 소리다. 사실 서장훈이 이정도로 성공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않다. 선수시절 끼를 보여준 적도 적고 유쾌함보다는 시크한 이미지가 컷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장훈은 자신만의 스타일과 캐릭터로 뜻밖의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달변과 그로인한 반전 이미지다. 서장훈의 유려한 말솜씨는 선수시절부터 유명했다. 단순히 차분하게 말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단어 선택이나 화법에서부터 눈에 띌 정도였다. 방송에서는 그야말로 포텐이 터졌다. 

특히 말 솜씨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어지간한 베테랑 연예인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했다. 어떤 프로, 어떤 자리에 가도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이른바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것)'를 능숙하게 해내며 방송을 보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줬다. 개그감을 가지고 망가지는 컨셉이 아닌 화법을 통해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자리잡은 스포츠인 출신 연예인은 역대로 둘러봐도 찾아보기 쉽지않다.


거기에 특유의 반전 이미지도 시청자들에게 ‘서장훈이?’라는 놀라움을 안겨줬다. 선수시절 서장훈은 워낙 승부욕이 강해 코트에서 거친 모습을 주로 보였다. 그로인해 많은 이들에게 그런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출연진의 짖궂은 농담에도 사람좋은 표정으로 허허 웃어넘기는 등 그간 알려진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컨셉으로 취급받았으나 오랜시간 변하지않고 계속되자 ‘친근함’으로 바뀌며 서장훈이라는 사람을 다시 보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다.


이에 ‘농구人터뷰’에서는 농구선수와 방송인으로 모두 성공을 거둔 서장훈의 다양한 모습을 다뤄볼까 한다. 스토리에 중점을 두는 시리즈의 성격상 무엇보다 ‘인간 서장훈’에 대해 깊게 들어가보고자 노력했다. 인터뷰는 <상, 하> 2부작으로 나누어 진행해보았다.

“코트 안과 밖에서의 저는 다소 차이가 컸습니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늘 비슷합니다. 녹화 스케줄 외에 방송에서도 한번 언급한바있는데 어머님께서 건강이 안좋으셔서 병원을 오가고 있습니다. 출연하는 방송이 좀 되는지라 기본적으로 좀 바쁜 편이기는 해요. 그냥 언제나처럼 단순하게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Q.인터뷰 요청도 많이 들어오셨을 듯 싶어요.

그렇지도 않아요. 한 10여년 정도 방송 활동을 하면서보니까 연예인들은 유명세에 비해 인터뷰 등이 많지않더라고요. 어차피 배우들은 작품으로 말하고, 그 작품들은 알아서 평론이나 관련기사들이 쏟아져나오잖아요. 유명 예능인들도 요새는 재방송까지 더해져서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니까요. 저같은 경우 방송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농구 기자 분들에게 간혹 인터뷰 제의가 들어오기는 했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그것도 뜸해졌고요. 일단 농구 관련 얘기는 제가 조심스러워요. 현장을 떠난지 워낙 오래되다보니까 아는 것도 적고, 또 어줍잖게 입 열었다가 괜스레 잘하고 계신 분들에게 민폐를 끼칠까싶어서요.

​​​Q.어지간한 질문은 다 받아주는 성격같지만 인간적으로 이런 질문은 하지말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을까요?

흠…, 뭐가 있을까요? 그렇게 물어보시니 저도 생각하게 되네요. 그냥 저는 어린 시절부터 누구와 자꾸 비교되는 삶을 살아왔어요. 제가 유망주일때는 앞서 잘나갔던 선배와, 이후 기록을 하나씩 만들어가며 커리어를 쌓아가게 되자 이번에는 후배들을 저와 비교하고.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2~30년을 그러다보니 살짝 지겹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하하핫…, 동문서답이려나요? 그런 질문을 하지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물어보시니까 문득 이 생각부터 드네요.


​​​Q.아, 저는 사생활적으로 민감하거나 그런 부분을 얘기한거에요.

아! 이혼 그런것들요? 뭐, 저는 구태여 꺼내고 싶지는 않은데 방송 등에서도 적지않은 분들이 언급을 하셔서 나중에는 어느 정도 초월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인상 박박구기면서 하지마! 그러기도 그렇고요. 그냥 저는 그래요. 뭔가 어떤 상황에서 저만 좀 망가지고 그럴 것 같으면 별반 상관없어요. 특히 나이를 먹다보니 ‘그럴 수도 있지 뭐’, ‘저분들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받아들여지게 되더라고요. 단, 어떤 말을 하는 과정에서 저말고 다른 분들이 본의아니게 피해를 보거나 그런 경우는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좀 있죠. 얘기를 주고받는 것은 질문한 이들과 저인데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이 언급되거나 소환되면 미안한 일이잖아요.


​​​Q.개신교 신자라고 들었어요.

솔직히 신자라고 하기도 죄송스럽습니다. 부모님 등 저희 가족이 신자인 것은 맞고 저도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닌 것도 맞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거의 다니질 못했으니까요. 은퇴후 방송 일하면서도 또 스케줄 때문에 못갈 때가 대부분이고요. 어떤 환경에서도 빠지지않고 다니는 분들도 계실텐데 이런말 조차 핑계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디가서 잘 신자라는 말을 쓰지않습니다. 마음으로 믿고는 있지만 이래저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Q.‘예능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따뜻해졌다’는 내용의 기사를 언젠가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죠. 제가 예능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그런 부분이 컸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제가 선수일 때는 이미지가 그렇게 썩 좋지만은 않았잖아요. 어린 시절부터 주목을 받으면서 강자 취급을 받다보니 마치 늘 이겨야되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부분이 있어요. 매일매일이 전쟁터였고 거기서 살아남기위해 이를 악물고 뛰어왔어요.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선수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차에 따라서는 불쾌하셨을 분도 계시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느꼈을 분도 계셨겠죠.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피부에 와닿는 부분도 있었고요. 일찍부터 이름을 알리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한 친구가 경기중 항의도 많이하고 웃는 얼굴보다 인상 찡그리고 있을 때가 더 많고…, 그러다보니 거친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각인되지않았나 싶어요. 그러다가 방송을 하게되니까 사람들이 ‘의외의 제 모습’에 놀라면서도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많이 느꼈고 더불어 당시에 마땅히 하고 있던 일도 없었기에 조금 더해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고 지금도 하고있게됐네요.(웃음)


​​​Q.어떻게 방송에서 그렇게 싹 달라진 모습을 하게된건가요?

사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요. 저는 늘 비슷했어요. 제가 무슨 연기파 배우도 아니고, 설사 연기력이 출중하다고해도 10여년을 그렇게 할 수는 없죠. 그리고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도 무슨 천사표하고는 거리가 좀 있지않나요. 선수때 성격 그대로 방송하는거에요. 선수 서장훈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비쳐질때는 코트안에 있을 때 뿐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코트 밖에서의 저는 모르셨을거에요. 코트 안에서나 과도한 승부욕을 뿜어내지 밖에서는 별반 욕심도 없어요. 동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더 가지려거나 누리려고 그러지도 않았고요. 경기를 뛸 때의 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죠. 그리고 방송은 승부의 세계는 아니니까 평소의 제 모습으로 편하게 다가간 것이고요.

“이기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아붓는게 선수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현역 시절 몇몇 선수들 같은 경우 그 이상으로 항의하고 거기에 일탈 행위까지 종종 저질렀음에도 인기가 좋았단 말이에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조금 억울하지는 않았나요?

어린 마음에는 그런 부분도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 농구대잔치에서 뛰어서 우승을 했단말이에요. 나이는 어리지만 키도 가장 컸고 형들도 막 이기고 그러다보니까 본의아니게 이겨야할 대상이 되지않았나 싶어요. 게임을 하다보면 맨 마지막 보스있잖아요. 일종의 끝판왕같은. 게임이나 영화 등에서 최종 보스를 이기는 이가 영웅이 되고 사람들이 거기에 열광하잖아요. 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인물이 되었던거죠. 견제도 많이 들어오고 과격한 파울도 적지않았습니다. 그로인해 제 입장에서는 심판 판정에 민감해졌던 것 같아요. 실제로 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는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종종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이 그렇잖아요.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해도 결국은 나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거죠. 그러다보니 일종의 호소라고나 할까요. 그렇게해야 손해를 덜 볼 것 같고…, 하지만 심판 분들도 사람이잖아요. 그런 경우가 잦아지면 그분들 나름대로 ‘쟤는 왜 이렇게 툭하면 항의를 하는 거야’라고 피곤하거나 화가 나실 수도 있었겠고요. 그런 상황이 일종의 악순환처럼 반복된 것 같아요.


​​​Q.조금 자제해야 겠다는 생각은 안들었을까요?

그게 참 힘들어요. 그냥 일상 생활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 관계 같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스포츠는 예능이 아니잖아요.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표를 끊어서 경기장을 찾아주시고 혹은 중계시간에 맞춰 텔레비전을 트신 분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승부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선수로서의 사명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했죠.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 공격 혹은 승부의 흐름을 좌우할 중요한 순간에 슛을 쐈는데 수비가 손을 쳤단말이에요. 착각이 아니라 누가봐도 손을 친 것이 맞아요. 그런데 휘슬이 안불려요. 그것 하나로 승부의 흐름이 바뀔 수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가야할까요. 자칫 경기에서 지고 집으로 돌아가야하는데. 과연 그것이 돈을 받고 경기를 하는 선수의 자세인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죠. 저는 그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그 순간을 돌아보면 너무 과했나 싶기도 하지만 당시의 저는 매순간 너무나도 진지했던 것 같아요.

​​​Q.농구선수로서의 목표가 뚜렷했던 것 같아요.

맞습니다. 어릴 때부터 제 목표는 확실했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 그것도 그냥 최고가 아닌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매순간 정말 죽어라 최선을 다했고요. 목표가 이뤄졌는지 안이뤄졌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부분은 아니니까요. 보시는 분들의 평가에 맡길 뿐이죠. 그저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 안에서 싹 쏟아부었습니다.


​​​Q.농구계로 돌아갈 프로 감독 등을 해볼 생각은 없나요?

가끔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예능도 좋지만 농구계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하지 않겠냐고요. 일단 어린 시절부터 제 꿈은 최고의 선수였지 최고의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목표와 열정의 지향점이 다르니까 얼마나 불타오를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요. 솔직히 감독을 원하는 선후배들은 엄청 많잖아요. 평생 운동만하던 사람이 은퇴를 하고 다른 쪽에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워요. 그래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 부분이 지도자의 길이죠. 하지만 저같은 경우는 살짝 달라요. 방송을 안했다해도 지도자 쪽에는 욕심이 없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제와서 구태여 그쪽으로 가서 얼마 없는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감독 한자리를 맡게되면 좋은 쪽으로든 아님 반대의 경우로든 화제성은 있겠네요. 하지만 다른 많은 분들이 하고싶어하는 그 자리를 뺏어가면서까지 해야되나? 그런 생각부터 듭니다. 물론 저도 압니다. 감독이라는 자리가 제가 하고 싶다고 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어떻게보면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답변이었을 수 있겠는데 일단 질문을 그렇게 하셨으니까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말을 풀어보았습니다.

“아이 낳으면 똥 기저귀 갈수 있나요?”

​​​Q.주변에서 많이 들어보셨을 듯한 질문입니다. 결혼 생각은 없으실까요?

생각있습니다. 집에서도 원하고 있고요. 막 간절하지는 않지만 이제 결혼 안해 그런 생각은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저도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싶죠. 하지만 다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는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쨌거나 정말 좋은 인연이 찾아온다면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인연이 찾아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어머님도 편찮으신지라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Q.깔끔한 성향으로 유명해요. 만약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똥 기저귀 갈고 그런 것은 가능하시겠죠?

그럼요. 내 새끼인데 그것을 못하는게 이상한거죠. 저희 본가에서도 강아지 키우는데 제가 똥도 직접 치우고 그래요. 어쩌다보니 보통 사람들보다 좀 깔끔을 떨게 됐지만 저것과 이것은 다르죠. 내 새끼 케어하는 것은 자신있습니다. 세상에 저말고도 깔끔 떠는 이들이 좀 있겠지만 다들 마찬가지일거에요. 일상에서의 깔끔함과 육아는 다른 영역이니까요.


​​​Q.객관적 사고를 갖추게된 배경에는 책을 많이 읽은 영향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책만 읽어서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음…, 저희 부모님께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도 제가 방송에 나와서 여기저기 끼어들고 떠들 수 있는데는 부모님께서 저에게 이것저것 신경써주신 덕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운동만해서는 안된다고 공부의 중요성도 강조하셨고 억지로라도 책을 읽도록 해주셨어요. 어릴 때는 운동만 잘하면 되지하고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니 정말 큰 자산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객관적 사고같은 것은, 저희 부모님 또한 현실적인 분들이신지라 여러 가지 부분에서 닮아간 부분도 큰 듯 해요.

​​​Q.언젠가 인터뷰때 최희암 감독이 ‘대학 시절의 장훈이는 본인이 이해를 하면 다소 힘든 일도 다 따라갔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말인즉슨 이해를 해야만이 거기에 수긍한다는 성향이라고 봐도 될까요?

그런 부분이 좀 강했다고 보는게 맞죠.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은 꼭 내가 이해할만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치에 맞지않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는 부분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220회 정도했어요. 한회차에 대여섯명 혹은 대여섯팀 정도 만났는데, 그렇게치면은 거기서 만나서 얘기를 나눈 사람만해도 천명이 넘거든요. 쉽게 얘기하면 천명이 넘는 사람들과 상담을 한건데 성격도 다 다르고 사연도 가지각색이잖아요. 제가 해결책을 내놓은 컨셉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분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젊은 시절 가졌던 생각들이 꼭 정답만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종종 느끼고 있어요. 논리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들, 현실적으로 해결이 안되는 상황 등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참 많구나하는 것을 깨닫거나 재확인하게 되는거죠.

“폭력성 파울요? 그때는 그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이해합니다”

​​​Q.선수 서장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중 하나는 정상적으로 수비하기가 어려운 선수인지라 린치에 가까운 상대팀의 폭력성 파울을 참 많이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선수생명이 위태로웠던 순간도 몇 번 있었음에도 그렇게 만든 상대 선수들을 별반 원망하지 않는 듯 싶더라고요. 진짜 보살인가요?

아…, 그것은 제가 막 대인배고 마음이 엄청 커서가 아니에요. 대한민국 농구는 모두가 동료에요. 지금 고등학교 농구팀이 몇 개일지는 모르겠지만 30~40개를 넘어가지는 않을 듯 싶어요. 어릴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만나서 일찍부터 안면을 익히는가하면 대학에 올라가게 되면 선후배로 다 엮이게 되요. 미국처럼 어지간히 유명하지 않으면 서로 모르는 관계가 아니란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동료들인거죠. 그 사람들이 경기중 승부욕이 생기게되면 의도치않게 과한 동작이 나올 수 있지만 일부러 다치게 하려고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잘해보려고, 열심히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된거거든요. 물론 저도 사람인 이상 당했던 당시에는 화도 나고 그랬죠.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흘러서 돌아보면 고의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되니까 원망하고 말고도 없는거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원수로 살 것도 아니고 또 봐야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당시에는 다들 젊었잖아요. 혈기왕성했던 시기죠. 더욱이 몸을 써가면서 승부를 하다보면 순간적으로 확하고 올라가는 경쟁심도 장난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있고, 그분들도 저를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대인배세요.

아이참, 제가 답답했던 것이 그 부분이에요. 우리 농구 팬분들에게도 그렇고, 제가 방송을 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요. 코트에서 항의가 잦고 과한 승부욕을 드러냈던 것은 저의 농구철학이 그랬던거고,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코트 밖까지 끌고가지는 않아요. 하지만 코트 안에서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단정짓듯 판단하는 분들도 적지않은 듯 싶더라고요. 정말 답답했어요. 제가 했던 것은 농구고, 선수라면 이기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인지라 그렇게 한부분이 커요. 하지만 바깥에서 제 지인이나 아는 사람들에게 승부욕을 불태울 일이 뭐가 있나요? 제가 그분들을 왜 이겨야 하나요? 비록 코트 안에서는 거친 모습도 적지않았지만 사실은 나 정말 부드럽고 좋은 사람이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에요. 저 스스로도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않아요. 그냥 남들하고 똑같이 좋은 부분도 있고 별로인 부분도 있는 평범한 사람일뿐이에요. 그러니까 코트 안에서의 모습만이 저의 전부일 것이라고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종종했어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잖아요. 어차피 우리들 모두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누군가를 평가하려면 여러 가지 모습을 충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소리죠.


​​​Q.갑자기 든 생각인데 나이를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몸은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단계지만 마음적으로는 꾸준히 성장하는 것 아닐까싶어요. 간혹 20~30대분들 만나면 반짝반짝하는 젊음이 참 부러워요. 얼마나 좋은 시절이에요. 하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아직은 조금 어리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모든게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마음이라는 나무에 경험이라는 열매가 하나둘 늘어가는거죠. 저도 아마 그 나이 떄는 그랬을거에요. 그래도 나름 공평하지 않나요? 몸은 늙어가는데 마음의 성장도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습니다.(웃음)

“농구 인생에서 가장 가뻤던 순간요?”

​​​Q.농구를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센터 포지션을 봤나요?

아니죠. 저는 농구를 늦게 시작했고 그로인해 초반에는 포지션이고 뭐고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뭐 제대로 할줄 아는게 있어야 포지션이라도 맡죠. 저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야구를 했어요. 그러다가 학교를 옮기고 그러는 과정에서 농구로 바꾸게 됐죠. 그러다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해온 선수들과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의 1년은 프로에서의 1년과는 또 다르거든요. 적어도 성장의 의미에서 보면 그렇다고 생각해요. 또래들보다 몇 년은 뒤떨어진 상태에서 경쟁 아니 그들의 뒷모습만 봐야했죠. 중학교 1학년말부터 농구를 시작했는데 기본기에서 너무 차이가 났습니다. 키도 큰 축에는 속했지만 농구하는 친구들 중에서 월등히 크다 그런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이도저도 아닌 입장이었죠. 당연히 눈에도 잘 안띄었고요. 농구를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집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고요.


​​​Q.그때 슛연습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농구부원들과 어울려서 경기를 할 실력이 못되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구석에서 슛이나 던지는 것 뿐이었죠.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 휘문중고 체육관 구석 벽쪽에 림이 있었어요. 골대라고 할 수는 없고 그냥 벽에 덩그러니 백보드하고 림만 붙어있는거죠. 거기서 제가 무엇을 하겠어요. 그래도 실력은 키우고 싶었으니까 거기다대고 슛을 던져댔습니다. 의도치않게 슛연습은 많이 하게 된거죠. 어찌 생각하면 긴 농구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 도움을 좀 받은 것 같아요. 더불어 야구를 했던 경험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야구공을 던질 때 스냅이 있잖아요. 손가락 두개로 공을 채는 스냅이 있는데 농구공을 던지는 것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슛 연습도 많이 했지만 실력도 빠르게 는데는 그러한 부분에서 덕을 좀 받았구나 싶습니다. 손끝의 감각이나 그런 것을.


​​​Q.야구를 했어도 랜디 존슨같은 장신 투수로 성공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아닐거에요. 제가 방망이는 좀 쳤는데 투수는 잘 못했어요. 기본적으로 어깨가 튼튼한편이 아니라서 투수와는 맞지않았습니다. 잠깐 시켜줘서 하기는 했는데 영 시원치않아 가지고 금세 탈락했죠. 초등학교때 중견수 등 외야수로 주로 활동했습니다.


​​​Q.농구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방송에서도 언젠가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2가지를 꼽습니다. 성과로 봤을 때는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를 빼놓을 수 없겠죠. 제가 국가대표로 뛰면서 중국을 이겨본게 그때가 처음이에요. 정말 지긋지긋했죠. 이기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중국이 좀 강해요. 정말 한번 잡아보려고해도 저 멀리서 계속해서 앞서가는 그런 존재였죠. 국가대표를 10년을 넘게했는데 도통 이기지를 못했어요. 물론 22세 이하 대회에서는 이긴 적은 있었지만 성인대표팀에서는 그전까지 계속 지기만 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너무 기뻤어요. 제가 국가대표로 처음 등장했을 당시 팬분들의 기대가 엄청 컸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기대하셨겠죠. 그런가운데 큰 무대에서 중국을 잡아냈던지라, 이런저런 숙제중 하나를 풀었다 싶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농구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Q.오~아시안게임 금메달보다 더 기쁜 순간이 있었어요?

의미를 따지면야 어찌 금메달과 비교하겠습니까.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공식 시합을 뛰게 된 적이 있어요. 가비지 타임이기는 했지만 제 입장에서는 의미가 작지않았죠. 선배님이 어시스트를 잘해주셔서 앞에 아무도 없는 노마크 찬스에서 농구 인생 첫경기 첫슛을 넣게 됐습니다. 너무너무 기쁘고 기분이 좋았어요. 저희 팀이 큰 점수 차이로 이겨서 승패가 갈린 게임이었던지라 제가 그 슛을 넣었다는 것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감격이자 축제였죠. 그렇게넣고 집에 들어와서도 너무 좋아서 잠을 못이뤘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던 시점에서는 다들 ‘서장훈이가 저 정도는 해야지’라는 기대감이 있어서 그때만큼의 기쁨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편으로 계속>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SN 무엇이든 물어보살, 연예의 참견 캡쳐, SBS 미운 우리 새끼 캡쳐,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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