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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어리니까 눈감아준다? 발리예바의 '지체된 정의'

발리예바는 해변을 거닐고 있습니다. 하얀 색 옷을 입고서. 6개월 전 악몽을 잊은 듯 합니다. 러시아에선 여전히 스타입니다. 이번 여름엔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러시아의 한 아이스쇼에 출연했습니다. 변신까지 꾀했습니다. 처음으로 페어 스케이팅 연기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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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9일, 발리예바는 멈춰섰습니다. 여자 피겨에서 4회전 점프를 거뜬히 성공하고, 또 그 어려운 기술을 몇 번씩 해냈던 피겨 천재의 감춰진 비밀이 드러났으니까요. 2021년 12월 25일 제출한 도핑 검사물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이 한 달여가 지나 뒤늦게 공개됐기 때문이죠. 발리예바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발리예바는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피겨 단체전 1위까지 이끌었는데, 곧장 그 시상식은 보류됐습니다. 금지약물 양성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개인전은 뛰어야 되느냐 마느냐 논란이 일었는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는 미성년 선수의 보호를 이유로 출전을 허용했습니다. 이 결정은 또 다른 파문을 불러내며 올림픽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죠. 해설가들은 발리예바가 연기할 때 입을 다물었고, 올림픽 정신은 죽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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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의 잇단 논란에도 침묵하던 김연아도 가만히 있지 않았죠. 소셜 미디어에 내건 세문장은 너무 단호했습니다.


“도핑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합니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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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은 끝이 났고 발리예바의 도핑 진실은 6개월간 미궁에 빠졌습니다. 아직도 궁금증은 차고 넘치죠. 어떻게 열 여섯 소녀가 금지약물에 노출됐는지부터 의아합니다. 발리예바를 지도해 온 투트베리제 코치 사단의 가혹한 선수 관리도 의심이 깃들죠. 러시아는 발리예바의 할아버지가 심장병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같은 컵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양성 반응이 나왔을 것이라 해명했습니다. 물론 국제적 웃음거리가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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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2022년 8월 9일은 발리예바의 도핑 적발 조사가 1차적으로 끝이 나야 할 데드라인이었습니다. 미성년 선수의 직접 조사가 불가능하다 보니 주변인 조사를 위해 6개월의 충분한 시간을 줬습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지휘를 받는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가 나서 조사를 끝내야 할 상황이었죠. 스포츠전문 매체 '인사이드더게임즈'는 최근 '러시아의 1차 조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도핑의 진실이 있는 그대로 밝혀지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발리예바가 올림픽 당시 만으로 16세가 되지 않은 미성년이었기에 조사도, 징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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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된 정의라도, 뒤늦게나마 그 정의가 구현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분명한 룰이 지배하는 스포츠도 이번 사안에선 무력해 보입니다. 발리예바는 금지약물 덫에 걸렸지만 동시에 그 덫에서 자유로운, 논란의 인물로 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조사결과가 나오든 발리예바의 4회전 점프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게 더 서글프죠. 스포츠가 지닌 순수함, 아름다움을 잃었으니까요.

오광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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