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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뉴스+] "#클린하이킹 #제로웨이스트? 힙하죠"…'멋' 타고 퍼지는 환경운동

'재미있고 멋져 따라한다'는 MZ, 환경에 대한 관심도 진화중


"올해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환경 캠페인은 대한주부 클럽연합회가 추진하고 있는 가정 쓰레기 분리수거 운동을 들 수 있다. 주부 클럽은 '환경오염의 주범은 나'라는 표어를 내걸고 90년을 환경오염 추방의 해로 규정하고 지난 2월부터 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폈다"


-'환경문제로 눈 돌린 소비자 운동', 연합뉴스 1990년 11월 24일


1990년에 나온 환경 운동 관련 기사입니다. '주범은 나', '표어', '추방'이라는 표현에서 진지함과 심각함이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기사에는 해당 단체가 간담회, 가두 캠페인, 교육회 등을 열었다고 적혀 있는데요. 조직화하고 체계적인 운동을 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91년생인 제가 알고 기억하는 '환경 운동'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운동의 양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제로 웨이스트 #클린 하이킹을 검색해 보니, 만화로 자신의 쓰레기 줄이기 체험기를 그리거나 유튜브 '한사랑 산악회' 개그를 따라 하며 클린 하이킹을 하는 게시글도 눈에 띕니다. '한사랑 산악회'는 개그맨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개그 코너인데 "여얼쪙! 열쪙! 열쪙!(열정! 열정! 열정!)"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습니다.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운동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지만, 심각성을 호소하며 경각심을 높이기보다는 재미와 멋으로 다른 이들의 동참을 이끌고 있습니다. 꼭 튀는 게시글이 아니어도 '플라스틱 다이어트'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며 기록하기 위해 쓴 글도 정말 많았습니다. 글에는 "선한 영향력이 멋지다""나도 해보니 좋더라" 같은 댓글들도 달렸습니다. 이렇게 '#제로 웨이스트'가 공유된 게시글은 14만개. #(해시태그)로 하는 환경 운동이 하나의 유행이 된 듯합니다.


["착한 산행, 멋지죠? 같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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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 뉴스팀이 만난 '클릭 하이커' 김강은 씨는 3년째 등산을 하며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산에서 주운 쓰레기로 예쁜 형상을 만듭니다. 지난 19일 취재진은 강은 씨와 인왕산에 함께 올랐습니다. 냄비, 신발 밑창, 강아지 목 보호대뿐 아니라 게딱지, 조개껍데기, 생선 머리 같은 쓰레기도 나왔습니다. 어패류의 경우 '언젠가 썩을 쓰레기'라 생각하고 버렸을 테지만 적절한 처리를 거치지 않아 악취가 심했습니다. 기상천외한 쓰레기를 발견할 때마다 기자도 강은 씨도 "윽! 여기도 있어요!"를 외쳤지만, 쓰레기들로 '마스크 낀 지구' 모양을 만들고 난 뒤 강은 씨는 이런 과정들이 '재밌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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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계기로 클린 하이커가 되었나요?


A. 아버지와 지리산에 갔다가 취사장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보고 그걸 주워 소셜미디어에 올렸어요. 처음엔 '불편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팔로워 탈퇴할 줄' 당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해 주는 거예요. '이런 내용이 사람들의 실천을 불러올 수 있겠구나' 그때 생각했어요.


Q. 산에서 주운 쓰레기로 정크 아트를 만드는데, 이게 '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라는 메시지까지 가지 못하고 '신기하다'에서 끝나면 어쩌죠?


A. 정크 아트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게 다 산에서 나온 겁니다. 믿어지세요?" 같은 글도 함께 올리거든요. 발칙하고 재미있게 표현을 하면, 사람들은 하나씩 뜯어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심각성을 느끼는 거고요. 좋은 일 한다고 처음부터 심각하게만 이야기할 필요 없는 것 같아요.


Q.#클린 하이킹 게시글을 올리고 계시는데, 변화를 체감하나요?


A. 사실 등산하며 쓰레기 줍는 건 산악회에서도 종종 하는 거였거든요. 제가 느끼는 변화라면, 이제는 젊은 사람 중에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이런 실천들이 젊은 층에서 '멋지다'고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자연에 착한 활동이 힙한(멋진) 것"이라는 인식이 더더욱 퍼졌으면 좋겠어요.


["#제로 웨이스트, 죄책감 아닌 일상생활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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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활동가 안윤재 씨는 기자보다 12살 어리지만, 제로 웨이스트 생활은 한참 선배였습니다. 설거지와 빨래를 할 때는 소프넛을 쓰고, 플라스틱 용기가 남지 않는 샴푸바, 잘 썩는 사탕수수 지퍼백 등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사용한 플라스틱을 모으며 '환경오염의 주범이 나였구나' 깨달아가고 있었던 기자에게 "인식하는 게 첫 단계"라며 "죄책감을 너무 많이 느끼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일주일 동안 플라스틱을 모아보니 배달 음식 포장 용기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단 한 번의 식사로 포장 용기가 5∼6개나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윤재 씨는 집 주변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음식점'을 체크해두고 주로 그곳에서 배달을 시켰습니다. 그렇다고 플라스틱 쓰는 가게를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못 먹어서 우울해질 것 같을 때'는 플라스틱이 함께 와도 시켜먹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윤재 씨의 집에도 생수나 음료수병 등 플라스틱은 있었습니다. 환경권을 공부하는 윤재 씨도 어쩔 수 없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써야 할 때가 있어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제로' 플라스틱을 하려면 속세를 떠나야 할 것 같아 적당한 타협을 했다는 겁니다. 무리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는 일단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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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친환경 소재로 바꿔도 불편하지 않을 것들부터 찾아봤습니다. 기자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캡슐 커피'였습니다. 하루에도 2∼3개의 캡슐 커피를 사용해 일주일이면 20개까지도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드립 커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탓에 텀블러는 여러 번 실패 경험이 있지만, 다시 시도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윤재 씨처럼 사탕수수 지퍼백이나 대나무 칫솔을 이용하는 것도 그리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부담감을 내려놓으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윤재 씨는 이제 제로 웨이스트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도 '뭘 하러 온다는 거지?' 싶었답니다. 어쩌면 스테인리스 빨대와 종려나무 수세미를 보고 놀라는 기자의 모습에 더 놀란 것은 윤재 씨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몄습니다. "느슨한 제로 웨이스트도 도움이 된다"는 윤재 씨의 격려처럼, 생활 속 플라스틱을 시나브로 줄여가 '요요 현상' 없는 다이어트를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친환경이 '멋진' 거라 하니….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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