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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형 이춘재 살린 'B형의 저주'···국과수 오류로 감식 틀렸다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특정됐다. 처제 살인 사건으로 25년째 부산교도소에 복역하고 있는 이춘재(5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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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과거 3차례 용의 선상에 올랐다. 여기에 범인이 잡혀 모방 범죄라고 결론이 난 8차 화성 살인 사건까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문 등 가혹 수사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과거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 결과에 따라 수사를 했다"고 말한다. 이 감정 결과의 핵심 중 하나는 'B형 혈액형'이다. O형인 이춘재가 번번이 수사망을 빠져나간 계기를 만들어 줬다. 경찰 안팎에선 이를 두고 'B형의 저주'라는 말도 나온다.



8차 사건부터 확인된 용의자의 혈액형은 B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현 화성시 안녕동)에서 70대 여인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범행은 이후 1991년 4월까지 10차례에 계속됐다. 화성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라는 의미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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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살해했다. 때로는 피해자가 착용했던 옷가지 등으로 결박하고 재갈을 물린 뒤 살해하기도 했다.


범행 현장에선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 반응이 나오기도 했지만, 증거로 활용할 수는 없었다. 피해자들의 시신 상당수가 숨진 지 2~6일 뒤에 발견됐고 더욱이 야외에서 발견돼 당시엔 정확한 시료 채취가 어려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수사도 답보에 빠졌다.


용의자의 혈액형이 확인된 사건이 바로 억울한 옥살이 논란이 일고 있는 8차 화성 살인 사건이다. 1988년 9월 16일 여중생 A양(당시 13세)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음모 8가닥도 발견됐다. 화성 사건 중 유일하게 실내에서 벌어졌고, 피해자가 사망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돼 오염 가능성도 적었다.


경찰은 음모 등을 국과수로 보내 용의자가 B형이라는 것과 관련 특성에 대한 결과를 통보받았다. 국과수가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이라는 최신 수사 기술로 범행 현장의 음모를 분석한 결과 중금속도 검출됐다. 경찰은 이 결과를 토대로 생산직 종사자와 당시 태안읍에 거주한 이들 등 수백명의 음모를 수거해 조사했다.


그리고 이듬해 7월 농기계를 수리하는 22세 B형 남성 윤모(현 52세)씨를 용의자로 붙잡았다. 경찰은 4차례에 걸쳐 윤씨의 음모를 뽑아 조사했는데 용의자 범위를 좁혀가면서 윤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다.


그리고 윤씨의 것에 대해서만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사건 현장의 음모와 윤씨의 음모가 동일인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윤씨를 검거했고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았다.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감형돼 20여년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 2009년 가석방됐다.


현재 윤씨는 "당시 경찰의 고문 등 가혹 행위로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재심 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 등과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은 "국과수 조사 결과를 가지고 수사를 했다. 증거가 명확해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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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사건, 10차 사건 용의자도 B형?


8차 사건에서만 용의자의 혈액형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어 발생한 9차(1990년 11월), 10차(1991년 4월) 화성 사건에서도 용의자의 혈액형이 나왔다.


이들 사건은 산에서 시신이 발견되긴 했지만, 피해자가 숨진 지 15시간 이내에 발견됐다. 두 사건 현장에서 나온 용의자의 혈액형도 B형이었다. 혈액형을 근거로 8차 화성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았다고 생각한 경찰은 이후 B형 남성들을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경찰이 B형에 집중한 사이 O형인 이춘재는 계속 용의 선상을 벗어났다. 경찰은 그동안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이춘재를 용의자로 의심해 3차례 조사했지만, 이춘재는 이때도 혈액형이 O형이라는 이유로 수사 선상에서 벗어났다.


반전은 지난달에 일어났다. 33년 만의 국과수 재조사 결과 9차 사건의 현장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


국과수가 재감정한 결과 당시 과거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1990년엔 DNA 분석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오류가 났고 이 때문에 용의자의 혈액형이 B로 감식됐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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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관계자는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감정물에서 오염되지 않은 용의자의 DNA를 분리했다"며 "그 결과 용의자의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살해해 수감된 1994년 1월까지 14건의 살인 사건과 30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춘재 말고 다른 용의자 있을 수도" 주장 여전


현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과거 현장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사건은 3·4·5·7·9차 등 5건이다. 현재 8차 화성 사건에 대한 분석도 이뤄지고 있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윤씨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경찰은 재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당시 수사기록은 일부 사본으로만 남아있고 당시 증거물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국과수에 8차 사건 당시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결과에 대한 재검증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여전히 "이춘재 말고 다른 용의자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발 등 이춘재와 관련성 낮은 증거물이 나온 사건 현장도 있다는 당시 수사 관계자의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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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을 조사하고 있다. 이춘재는 14건의 살인사건에 대해선 범행 장소 등을 그림으로 그려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8차 사건과 관련해서도 숨진 A양 방의 책상 위치 등을 밝히는 등 범인이 아니면 알지 못할 만한 설명을 일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성범죄 자체에 대해선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 기억에 의존한 진술이라 오류 가능성이 있어 과거 수사기록과 비교해 신빙성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모란·진창일·최종권·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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