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지우고 월드컵 개막식 내보낸 北…손흥민 ‘마스크 투혼’은 중계할까?
조선중앙TV는 21일 저녁 뉴스에서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 카타르 대 에콰도르 경기를 일부 중계했다. 연합뉴스 |
북한 조선중앙TV는 21일 오후 뉴스에서 "대회 주제가가 울려 퍼지는 속에 대회의 공식 상징물들이 등장했다"는 멘트와 함께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개막식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꼽혔던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OST(공식 사운드트랙) '드리머스'(Dreamers)를 부르는 장면은 빠졌다.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 가수의 활약상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24일 간판 손흥민 선수의 '마스크 투혼'이 예고된 한국과 우루과이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비롯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활약상을 북한이 어떻게 할까.
매일 3경기씩 '지연 중계'하는 북한
조선중앙TV는 월드컵 개막 이튿날인 21일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경기를 2~3분 분량의 영상으로 편집해 내보낸 데 이어, 22일부터는 각 경기를 1시간 정도 분량으로 편집한 녹화영상을 매일 3경기씩 '지연 중계'하고 있다.
조선중앙TV는 21일 저녁 뉴스에서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 카타르 대 에콰도르 경기를 일부 중계했다. 연합뉴스 |
23일 조선중앙TV 편성표에는 오전 11시 13분에 전날 열린 덴마크와 튀니지의 경기를 시작으로 오후 4시 4분에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 오후 9시 15분에 프랑스와 호주의 조별 예선 경기가 편성돼 있다. 예선리그의 대부분 경기를 주민들에게 중계방송하고 있다.
그런데 23일 편성에서는 미국과 웨일스, 멕시코와 폴란드전이 빠졌다. 미국과의 대치 국면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미국 대표팀이 출전하는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북한이 24일 한국대표팀의 경기를 중계하기로 결정할 경우, 실제 방송은 시합 이튿날인 25일에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이 BTS의 개막식 무대를 삭제하고 미국의 경기를 편성에서 제외했던 것처럼, 한국팀의 경기 역시 의도적으로 주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북한은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녹화 중계하면서도 지난해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 선수가 잘 보이는 영상을 의도적으로 잘라낸 채 방송하고 있다.
조선중앙TV는 7월 17일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25~26라운드 하이라이트 영상을 방영했다. 연합뉴스 |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중계 여부를 단정할 수 없지만,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인 데다 자신들도 참가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국 대표팀의 경기를 내보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대표팀이 좋은 성과를 낸다면 중계 가능성은 더 작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적 방송' 논란…北 중계 문제없나
북한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처음 방송에 내보냈다. 당시 조선중앙TV는 6월 18일 대전에서 열렸던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 경기를 1시간 분량으로 편집해 닷새 뒤인 같은 달 23일 오후 10시에 녹화 중계했다.
그런데 당시 북한은 국제축구연맹(FIFA)과 중계권 계약을 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경기 장면을 방송하면서 이른바 '해적방송'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 뒤 북한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한국방송위원회에 월드컵 중계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는 북한의 요청에 따라 방송발전기금과 남북협력기금에서 약 13만 달러(약 1억7000만원)의 중계권료를 FIFA에 대납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월드컵 중계를 지원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7월 2021-2022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25~26라운드 하이라이트 영상을 방영했다. 사진은 사우샘프턴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의 하이라이트. 연합뉴스 |
그러다 북한은 자국 대표팀이 본선에 참가했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부터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에서 중계권을 무상으로 받아 녹화 중계를 진행하고 있다. 무상 중계는 당시 ABU가 스포츠맨십에 따라 북한을 비롯해 동티모르, 라오스,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7개 빈곤국이 경기를 중계할 수 있도록 FIFA와 합의하면서 가능해졌다.
"北중계권 FIFA에 양도"
북한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도 ABU를 통해 무상으로 경기 영상을 받아 방송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방송 업계 관계자는 "이번 월드컵의 경우 FIFA와 한반도 지역 중계권을 가진 지상파 3사의 합의를 통해 방송 3사가 북한에 대해 가진 중계 권리를 FIFA에 양도했다"며 "FIFA가 북한과 직접 혹은 ABU를 통해 북한에 중계권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4년 7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남자축구 대표팀 검열경기 관람하는 모습. 뉴스1 |
북한은 월드컵 경기 외에도 2013년부터 해외 유명 축구 클럽의 경기를 녹화 중계하고 있다. 조선중앙TV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주일에 5차례 정도 오후 4시에 해외 축구경기를 편성하고 있는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빅리그의 경기를 주로 다룬다.
북한이 이처럼 해외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것은 축구에 대한 북한 당국과 주민들의 각별한 관심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축구장을 찾아 각종 경기를 직접 관람하면서 축구 발전을 독려한 바 있다. 특히 국제축구학교를 신설하고 축구장을 리모델링하는 등 축구 인프라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