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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 횡령 역대급 비리 총리···그 아내는 '사치의 여왕' 불렸다

[후후월드]

말레이 법원, 배임·자금세탁 등 7가지 혐의 유죄

‘1MDB 스캔들’ 글로벌 이슈로 확산

부인, 보석·명품 사들여…사치의 여왕으로 통해

총 42개 혐의로 5개 재판…더 큰 재판 남아


골드만삭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미란다 커·패리스 힐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들을 묶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2009년~2018년, 말레이시아 6대 총리를 지낸 나집 라작(6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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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현지시간) 나집 전 총리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법정에 섰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6년 간 45억 달러(5조3500억 원)를 빼돌린 혐의입니다. 권한남용·신뢰위반·돈세탁 등 관련 혐의만 42건입니다. 이날은 그중 7건만 다뤘습니다.


나집 전 총리는 한때 스타 정치인이었습니다. 기업인 출신의 23세 젊은 국회의원. 말레이시아 화합 캠페인으로 총리 재선까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비리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화려한 경력의 스타 정치인에서 역대급 비리 정치인이 되기까지. 온갖 스캔들을 몰고 다닌 나집 전 총리의 지난 5년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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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BBC출신 저널리스트 클레어 루캐슬 브라운과 월스트리트저널(WSJ) 편집국에 수상한 문건이 전달됐습니다. 스위스은행 직원이 보낸 문건이었는데, 한 국영기업의 공적자금 횡령 내역이었습니다. 문건의 주인공은 1MDB(Malaysia Development Berhad). 나집 전 총리가 2009년 말레이시아 경제개발을 목표로 설립한 국영 투자기업입니다. 국내외 자본을 유치해 말레이시아 부동산·금융·관광 등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러나 이 기업은 수익은커녕 빚만 가득했습니다. 2015년까지 채무가 110억 달러(13조1800억원)에 달했고, 배임·횡령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기업 고문인 나집 전 총리의 개인 계좌로 7억 달러(8300억 원)가 흘러가는 등 20만 건의 횡령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이른바 1MDB스캔들. 나집 전 총리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골드만삭스·JP모건 줄줄이 소환…글로벌 스캔들로


WSJ 보도 이후 말레이시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재선까지 성공한 총리가 국부를 빼돌려 개인 배를 채우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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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 세계 투자 은행과 국가 재정기관까지 연루되면서 더 커졌습니다. 글로벌 스캔들로 번진 겁니다. 미국·스위스·싱가포르·홍콩 등 전 세계 금융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MDB에 65억 달러(7조 7400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며 거액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도이치뱅크·JP모건도 소환됐습니다. 1MDB의 불법 자금 송금을 눈감아주고 비자금 조성을 도운 의혹이 줄줄이 터졌습니다.



할리우드 배우도 소환…그 중심엔 조 로우


비리의 중심엔 나집 전 총리의 의붓아들인 리자 아지즈, 그리고 나집 전 총리의 집사 역할을 했던 로택조(39)가 있습니다. 로택조는 조 로우로 불립니다. 이들은 빼돌린 돈을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각국의 고가 부동산과 호화 요트, 사치품 구매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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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에도 투자했는데, 이 과정에서 할리우드 배우에게까지 불똥이 튀었습니다. 조 로우가 디카프리오에게 준 피카소의 그림, 미란다 커에게 건넨 보석 등이 모두 불법 자금으로 산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되자 할리우드 스타들은 조 로우에게 받은 선물을 모두 말레이시아 정부에 반환했습니다.



입 막고, 눈 돌리고…잠잠해진 스캔들


물론 나집 전 총리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돈은 사우디 왕가에서 선물로 받은 것", "잠시 보관한 자금" 등 온갖 해명을 늘어놓으면서 말입니다.


그는 반정부 여론 탄압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1MDB 스캔들 조사에 나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해임하고, 총리 퇴진 운동에 가담한 인사들은 축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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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2016년 6월 나집 전 총리가 이끌던 여당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압승하며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나집 전 총리는 기세를 몰아 이미지 전환까지 시도했습니다.





2017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 소행으로 발생한 '김정남 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했는데요. 사건 초기부터 강경하고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며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북한의 억지 위협에도 "어떤 압박이나 협박도 받지 않겠다"며 당당히 맞섰습니다.


입장 변화도 빨랐습니다. 북한이 말레이시아인을 억류해 인질로 잡자 급히 협상 모드로 전환하더니, 당국의 수사 결과마저 부인했습니다. 전 세계는 말레이시아가 인질 외교에 굴복했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국민 보호를 가장 중시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 변신에만 집중했습니다.



자택서 귀금속 우르르, 트럭 5대로도 못 옮겨


그러나 떠난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 법. 2018년 5월 나집 전 총리는 3선에 참패하며 급속도로 몰락합니다.


신정부가 1MDB 스캔들 재조사에 나서며 나집 전 총리의 비리 수사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말레이시아 수사 당국은 총선 3일 만에 나집 전 총리에게 출국금지를 내리고, 곧바로 총리실과 일가를 압수 수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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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집 전 총리의 거주지에선 보석·명품 핸드백·현금 등이 쏟아졌습니다. 합치면 3000억 원어치였습니다. 압수품 양이 너무 많아 트럭 5대를 동원해 옮겼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 로스마 만소르(67)도 화제가 됐습니다. 로스마는 물려받은 재산도 일정한 소득도 없었는데, 사치의 여왕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나랏돈을 빼돌려 사치품으로 돈세탁을 했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된 셈입니다.



나집 전 총리·부인·의붓아들까지…일가족이 재판에


결국 나집 전 총리와 부인, 의붓아들까지 일가족 모두가 법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권한남용과 신뢰위반, 돈세탁이 주요 혐의입니다. 여기에 나집 전 총리는 2006년 국방부 장관 시절 잠수함 도입과 관련한 리베이트 수수 의혹, 측근 내연녀 청부살해 의혹까지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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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재판부는 혐의 7건 모두를 유죄 판결했습니다. 권한남용 12년, 신뢰위반 및 돈세탁 각 건 당 10년 등 총 72년의 징역형을 내리고, 벌금 4940만 달러(580억 원)를 부과했습니다. 다만 징역형은 동시 복역을 고려해 최고형인 12년 형만 최종 선고했습니다.


나집 전 총리 가족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나집 전 총리는 판결 전 "정의를 원한다.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앞으로 남은 35개 혐의와 관련 재판에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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