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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년만에 사라진 영창…"軍 X판 된다""투명화장실 겪어봤나"

[밀실] <44화>

경험자가 말하는 '영창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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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마다 있는 화장실 벽이 반투명 유리였어요. 제가 안에서 뭘 하는지 다 볼 수 있으니까 화장실 가는 것도 망설여지더라고요.” A(22)씨 “한 번은 철창 안에 있던 수용자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근손실'이 올 것 같으니 턱걸이 운동을 하게 해달라’고 조르더라고요.” B(26)씨



#전역자에게 직접 듣는 '영창 썰',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차가운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헌병과 수용자로 마주했던 사람들이 밀실팀에 들려준 이야깁니다. 이런 촌극이 벌어진 곳은 '군대 안 감옥', 영창입니다.


영창 제도는 군대에서 잘못을 저지른 병사를 15일 기간 이내 부대 내 유치장에 감금하는 징계죠. 영창에 갇힌 기간만큼 의무 복무 일수가 늘어나 전역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병사에겐 공포의 대상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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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영창 제도가 공식 폐지됐습니다. 도입된 지 124년 만이었죠.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병사들을 감금하는 건 인권침해라는 비판이 이어진 결과였죠. 국방부는 “병사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영창을 군기 교육으로 대체하고, 인권 친화적인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창. ‘영창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은 영창 폐지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밀실팀이 군 복무 시절 영창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2명, 영창을 운영하는 헌병이었던 전역자 2명을 각각 만났습니다.



"반성하는 사람 없더라" vs "선 넘기 전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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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에 오면 짜증만 늘어서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잘못을 돌아보는 경우는 없고 ‘군 생활 늘어나서 짜증 난다’는 얘기만 되풀이하죠. 그 상태로 부대에 돌아가면 남아있는 피해자랑 관계만 껄끄러워지는 거예요.”


6년 전 영창에서 헌병으로 근무했던 C(28)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창에 오래 있었지만 잘못한 병사를 바로잡는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도 했고요.


밀실팀이 만난 헌병 전역자와 영창 수용 경험자들은 대체로 영창 폐지에 찬성하는 편이었어요. 영창 헌병 출신 B(26)씨는 “영창을 담당하는 간부들은 ‘여기 들어오는 병사들 건드려봤자 좋을 게 없다’는 식이었다”며 “헌병과 수용된 병사들도 서로 농담 주고받으며 노는 시간으로 여겼다”고 밝혔습니다. 영창의 실효성이 의심됐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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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이 형사처벌과 달리 전과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는 병사도 있었다고 해요. 5년 전 후임과 다퉈 5일간 영창 신세를 졌던 D(25)씨는 “영창에서 만난 사람 중엔 ‘군인은 사고를 쳐도 교도소로 곧장 가지 않고 영창 가는 선에서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고 전하더군요.


반면 마땅한 대안 없이 영창을 폐지하면 군대의 규율을 해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왔습니다. 지난해 부대에서 규정을 어기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적발돼 영창에 갔던 A씨는 “영창은 병사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브레이크’”라고 하더군요. 그는 “영창만큼 병사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엇갈립니다. 영창 폐지를 다룬 기사의 댓글 중엔 “군대가 X판 되고 있다” “인권 타령하다 교도소까지 없애겠다”는 비판과 “구시대적인 징계는 없어지는 게 맞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죠.



영창의 하루는…밥 먹고 잠잘 때 빼곤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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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에 가면 하루 종일 허리를 꼿꼿이 펴고 양반다리로 앉아 벽만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더라.”


영창에 관한 여러 ‘썰’ 중 하나입니다. 밀실팀이 만난 사람들은 “과장된 소문”이라고 입을 모았는데요. 적어도 이들이 영창에 있었던 2014년 이후엔 없었던 일이라는 거에요.


지난해 영창에 다녀온 A씨는 “병사들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것까지 헌병들이 허락해줬다”며 “수용된 병사는 헌병을 ‘근무자님’이라 부르고, 헌병은 나를 ‘A(이름) 병장님(계급)’이라고 부르는 등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습니다.


5년 전 영창에 갔던 D씨는 영창의 하루 일과를 설명하며 내부 구조를 그림으로 그려줬는데요. 중앙의 감시초소를 둘러싼 여러 개의 유치장을 헌병이 감시하는 구조였다고 합니다. 모든 일과는 헌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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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의 일과는 하루 세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방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수용된 병사들은 영창에 비치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헌병의 허락을 받아 군대 밖 지인에게 편지를 쓸 수도 있죠. 단, 졸거나 누워서 자다간 헌병의 따끔한 지적을 받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병사들은 철창 앞으로 옹기종기 모입니다. 영창 가운데에 놓인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A씨는 그 시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평소엔 잘 안 보던 뉴스를 텔레비전으로 볼 때가 영창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지루하지도 않고,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윤 일병’ 이후 영창도 달라져…인권침해 해소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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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은 아니었죠. 영창 헌병 출신 C씨는 “내가 근무했던 2014년까지만 해도 병사의 앉아 있는 자세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매섭게 질책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죠.


분위기가 달라진 계기는 2014년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언론에선 ‘윤 일병 사건’이라고 불렀죠. 선임 병사들이 윤 모 일병을 집단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입니다. 이후 국방부는 “군대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분위기를 개선하겠다”며 혁신정책을 내놓죠.


C씨는 “윤 일병을 비롯한 여러 사건 이후 수용된 병사를 향한 불필요한 지적을 줄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병사들이 양반다리를 살짝 풀고 편하게 앉아 있어도 나무라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영창 내 인권침해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영창에 다녀온 A씨는 “방마다 철창 앞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벽이 반투명 유리였다”며 “관리하는 헌병 입장도 이해하지만, 화장실 갈 때마다 고민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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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와 헌법 제12조 위반 등을 근거로 영창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군인권센터는 “영창 폐지를 계기로 군이 병사에게 징계 내리는 방식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판사가 발부한 영장 없이 병사를 영창에 가두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며 “영창은 사라졌지만, 군 간부들이 일정한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징계를 내리는 전반적인 관행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숱한 논쟁을 뿌리다 124년 만에 사라진 영창 제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박건·최연수·윤상언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백경민·이지수·정유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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