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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원 주면 내어주겠다"…훈민정음 상주본 회수 1년째 '제자리'

작년 7월 "국가 소유권" 법원 판결 후 '제자리'

배씨, "강제집행 없고, 형사사건도 진행 안돼"



상주본, 보관 상태나 훼손 여부 장담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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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 회수 사업이 1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7월 문화재청이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57)씨에게 "상주본 반환 거부 시 법적 조치 하겠다"고 통보한 후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는 상태다.


지난해 7월 문화재청의 통보는 법원 판결을 근거로 했다. 법원은 같은 달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상주본의 소유권이 배씨에게 있지 않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 즉 문화재청에 있다는 사실을 대법원이 확인한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 측은 경북 상주에 사는 배씨를 찾아가 '문화재를 계속 은닉하고 훼손할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문서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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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기씨가 공개한 훼손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일부분. [사진 배익기씨]

이렇게 1년여가 지난 12일 배씨는 중앙일보에 "1년여 간 문화재청 공무원들이 여러 번 찾아왔고, 얼마 전엔 담당 직원들이 인사가 났다고 왔다. 하지만 강제집행은 없었고, 형사 사건으로 진행한 것도 내가 알기론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00억원을 주면 상주본을 내어주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 추후 강제집행 등이 이뤄진다 해도 상주본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주본 사례금 1000억원은 그가 문화재청이 상주본 가치를 최소한 1조 이상 간다고 본 것을 기준으로 두고 10분의 1 정도 가치로 정해 주장하는 액수다.


문제는 1년의 세월이 또 지나면서 꽁꽁 숨겨진 상주본의 보관 상태나 훼손 여부를 더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실제 배씨는 "상주본의 보관 상태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장마 등 날씨를 떠나 (내가) 얼마 만에 한 번씩 끄집어내서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해선 (위치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이어서 말 못하지만, 세종대왕이 노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선을 그었다.


상주본은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때도 일부 훼손됐다. 배씨는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상주본을 꺼내왔고, 이후 자신만이 아는 곳에 상주본을 보관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상주본이 이미 3분의 1 이상 훼손됐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하자 문화재청 측은 “실물을 보지 못해 모른다”고 답했다.


배씨는 상주본의 행방에 대해선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최근 상주본 모습을 담은 사진 공개도 거부했다. 그는 "소책자처럼 된 상주본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에 대해선 어떤 식으로든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고서적 수집가인 배씨는 2008년 한 방송을 통해 자신이 상주본을 갖고 있다고 처음 알렸다. 하지만 골동품 판매업자 조모(2012년 사망)씨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기나긴 공방이 시작됐다.


대법원은 2011년 5월 상주본의 소유권이 조씨에게 있다고 판결했지만 배씨는 상주본 인도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2014년에는 대법원으로부터 무혐의 판결을 받기도 했다. 조씨는 사망하기 전 상주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국가는 이를 근거로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배씨에게 상주본 인도를 계속 요구 중이다.


상주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같은 판본이면서 표제와 주석이 16세기에 새로 더해져 간송본보다 학술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재청 측은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그 동안 배씨를 45차례 만났으며 반환을 설득하고 있다.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배씨의 심리상태를 짚어내려 노력하고 있다”며 상주본 반환에 적극 노력 중이라고 했었다.


안동=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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