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기부 '배민' 김봉진 "기부왕 왜 못나오는지 알겠더라"
음식배달앱 ‘배달의민족’ 대표
빌 게이츠 같은 기부왕 없는 이유
기업가 탐욕보다 환경요인이 커
동남아 같은 더운 나라 곧 진출
불 피우기 싫어해 외식문화 발달
2017년 10월, 한 기업가가 사재 1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액수도 컸지만, 그가 갓 마흔을 넘긴 젊은 기업가라는 점, 한때 아이 학원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던 그가 성공하자마자 선뜻 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 받았다. 주인공은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43) 대표였다.
김 대표는 이달 중순 배민 뿐 아니라 모든 외식 배달업 종사자 중에 누구든 사고가 날 경우, 의료비·생계비로 지원해주라며 20억원을 사랑의 열매에 기부했다. 이 돈을 끝으로 100억 기부 약속을 1년 6개월만에 모두 지켰다. 2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에 있는 우아한형제들 사옥에서 김 대표를 만나 기부에 얽힌 뒷 얘기와 신사업 구상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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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마련도 쉽지 않았다. 보유 주식을 팔아야 했는데 주주들이 반발했다. "경영권이 약해진다, (기부는) 회사를 더 키운 뒤에 나중에 해도 되는 일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 같은 거액 기부자가 국내서 안나오는 이유는 한국 기업가의 탐욕보다 '세금 폭탄' 같은 기부 환경 탓이 더 크다"며 "성공한 벤처 선배들이 왜 은둔형으로 사는지 기부를 직접 해보고서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등의결권 얘기를 꺼냈다. "미국처럼 창업자에게 1주당 1표 이상을 주는 제도가 있다면 보유 주식을 팔아도 경영권 약화 걱정을 안해도 된다"며 "그러면 기부 뿐 아니라, 후발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펀드 조성, 사회 문제 해결 위한 사회적 기업 설립 등 가치 있는 일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등의결권이 상속의 도구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창업자에게 한하고 상속 때는 1주 1표의 보통주로 취급하면 될 것"이라고 해법을 내놨다. 현재 국회에는 차등의결권 도입 법안이 발의돼 있다. 정부와 여당은 도입에 긍정적이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기부내역 |
배달 음식 시장은 국내 뿐 아니라 북미·유럽·중동 등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해외 진출 계획을 밝혔다. 그는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던 시절, 집집마다 있던 재봉틀이 기성복을 사입으면서 모두 사라졌다"며 "거주 공간에서 주방이 점점 줄어들다 결국 사라지는 시대가 머지 않아 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조리 식품을 사 먹어보면 이보다 더 맛있게, 더 싼 값에 만들 자신이 없어진다"며 "다음 세대는 '음식은 엄마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시켜주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율배송 로봇 기술이 발전해 음식 배송에 드는 비용이 현재의 3500원에서 500원 정도까지 떨어진다면 음식은 시켜먹는게 더 싼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진출지역으로 '더운 나라'를 꼽았다. 그는 "동남아 지역은 불 옆에 서는 걸 꺼려해 외식 문화가 발달해 있다"며 "시장 연구와 진출 플랜이 마무리 되는대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해에만 매출이 90% 성장했다. 배민을 통한 음식 주문 액이 연 5조원을 넘어섰다. 우아한형제들의 총 매출도 연간 3200억원대로 늘었다. 일이 크게 늘고 있지만 이 회사는 직원 근무 시간을 오히려 줄이고 있다. 2015년 주 37.5시간제를 도입했다가 2017년엔 주 35시간으로 줄였다. 김 대표는 "일하는 시간을 줄였으나 배민은 근무 강도가 높은 회사로 통할 정도로 업무 집중도가 높다"며 "(근무시간을) 앞으로 더 줄일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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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직원들이 '짧고 굵게' 일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경영 노하우로 두 가지를 공개했다. 관리자는 직원들의 업무 집중이나 창의성 발휘에 방해가 되는 부분을 파악해 제거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면 사무실 조명 일부를 간접 조명으로 바꿨는데, 컴퓨터 모니터에 조명 빛이 반사돼 눈이 피곤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두명씩 함께 하는 일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2인용 독서실 테이블이 들어간 업무공간을 사내 곳곳에 배치한 것도 같은 이유다. 관리자들은 또 직원 개개인에게 전체 프로젝트 중에서 어떤 부분을 맡고 있는지 명확히 인지시키는 일에 신경을 쓴다. 모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김 대표는 경영 애로 사항으로 개발자 인력난을 꼽았다. 그는 "꾸준히 뽑아 쓰기 어려워 아예 개발자 학교 ‘우아한 테크 코스’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이달 들어 첫 모집을 했는데 50명 정원에 1149명이 몰려왔다. 이들 중 절반은 배민에 채용하고, 나머지는 다른 IT 기업에서도 뽑아 쓸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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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터뷰 말미에 꼭 써달라며 다시 기부 얘기를 꺼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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