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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천연풀장·원시림…오바마도 반한 ‘태초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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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디그 섬 ‘앙스 마롱’ 해변. 바다와 바위가 합작한 천연 풀장이다.

인도양의 휴양지 세이셸은 실제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영국 윌리엄 왕자의 신혼여행지, 오바마·베컴 같은 세계적 셀럽의 휴가지로 알려져 늘 럭셔리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국에서도 가장 비싼 신혼여행지로 소문이 자자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신비로 가득한 세이셸의 매력을 반감하는 면도 있다. 럭셔리 리조트와 눈부신 옥색 해변이 세이셸의 전부는 아니어서다. 7월 말, 세이셸의 여러 섬을 가봤다. 1억5000만 년 전 지구의 흔적이 오롯한 밀림, 황홀한 해변 길, 아프리카와 아시아 문화가 섞인 음식 등 의외의 매력이 수두룩했다.

1억5000만 년 전 태어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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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발레드메 자연보호구역’. 희귀 야자수 6종이 공존한다.

세이셸은 아프리카의 섬나라다. 케냐에서 동쪽으로 약 1600㎞ 떨어져 있다. 115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로, 모두 합친 면적은 400㎢. 서울의 3분의 2 수준이다. 인구는 약 9만9000명이다.


세이셸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세계적인 생태관광지 ‘프랄린’이었다. 세이셸 군도는 약 1억5000만 년 전 탄생했다. 하나의 초대륙이었던 남반구가 갈라졌을 때 파편처럼 떨어져 나와 군도를 이뤘다. 인도양에 외따로이 떠 장구한 세월을 지내면서 독특한 생태를 유지했다. 프랄린 국립공원 ‘발레드메 자연보호구역’에서 그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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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드메르는 세이셸에만 자생하는 야자수다. 지구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씨앗이 암나무에 열린다.

“훼손되지 않은 천연 야자수림이 원시 그대로 남아 있다. ‘코코드메르’는 식물계에서 씨가 가장 크고 무겁다. 무려 20㎏에 달한다.”

코코드메르는 경이로운 식물이다. 암나무 열매의 씨앗은 여성의 엉덩이를 닮았고, 수나무 꽃은 남성 성기를 빼닮았다. 유네스코는 ‘진화가 덜 된 원시 상태의 자연’이라고 설명하는데 정말 원초적으로 생겼다. 발레드메에는 코코드메르를 포함해 6종의 세이셸 고유종 야자수가 자생한다. 어떤 야자수 잎은 너무 커 대형 파라솔을 펼친 듯했다. 산책길에 만화 캐릭터처럼 생긴 도마뱀과 주먹만 한 달팽이도 불쑥불쑥 나타났다.


프랄린 섬 북서쪽에 자리한 해변 ‘앙스 라치오’는 수많은 해외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예쁜 해변으로 꼽은 바다다. 물놀이와 일광욕을 즐기는 여행자 틈에 세르비아 커플 젤리카와 두산도 있었다. 결혼을 기념해 친구들과 함께 세이셸을 찾았다고 했다. 두산은 “바다가 없는 우리에겐 지상낙원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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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본 열대어.

프랄린 주변에는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기 좋은 작은 섬도 많다. ‘그랑 쇠르’ 섬 앞바다에 뛰어들었다.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의 주인공 남양쥐돔을 비롯해 전갱이와 돔이 많았다. 동남아 바다에서 만난 녀석들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고 사람을 덜 경계하는 듯했다. 바닷속도 억겁의 세월 전 그대로인 걸까?

그림엽서 같은 바다

프랄린에서 페리를 타고 15분 만에 ‘라 디그’ 섬에 도착했다. 항구 풍경이 프랄린과 전혀 달랐다. 자동차는 안 보이고 자전거와 전기 카트가 바쁘게 오갔다. 알고 보니 환경 보호를 위해 내연기관차 반입을 제한했다고 한다. 인구는 4000명 남짓인데 자동차는 60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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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브라 자이언트 육지거북. 몸무게가 200㎏이 넘고 개체 수는 세이셸 인구보다 많다.

자전거를 타고 ‘유니온 이스테이트’를 찾아갔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바닐라와 코코넛을 재배하던 농장이었는데 지금은 인기 관광지다. 자전거를 타고 농장을 돌아다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거북이라는 ‘알다브라 자이언트 거북’ 수십 마리를 만났다. 유럽인의 혼획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었다가 지금은 개체 수가 1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세이셸 인구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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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을 상징하는 해변, 앙스 수스 다정. 라 디그 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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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이스테이트 끄트머리에 세이셸을 상징하는 해변 ‘앙스 수스 다정’이 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바윗덩어리, 설탕처럼 하얀 모래, 영롱한 옥빛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이 셰이셀의 어느 바다보다 압도적이었다.


라 디그 섬은 하이킹도 인기다. 세이셸 관광청이 추천한 ‘앙스 마롱 트레일’(8.9㎞)을 걸어봤다. 오전 9시. 가이드 알릭스, 20대 캐나다 여행자 둘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해변을 따라 걷는다고 해서 제주올레를 떠올렸으나 오산이었다. 야자수 빽빽한 정글과 백사장이 번갈아 나타났고 돌길도 많아 체력 소모가 컸다. 암벽등반 수준은 아니어도 사지를 모두 이용해 바위를 오르고 좁은 바위틈을 포복하듯 기어가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매운맛’ 코스였다.


두세 시간을 걸어 앙스 마롱에 도착했다. 바위가 방파제처럼 두른 천연풀장이 나타났다. 챙겨온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1시간 남짓 해수욕을 했는데 ‘웰던’ 소고기처럼 등이 타버렸다. 알릭스가 챙겨준 간식을 먹은 뒤 다시 걷다가 앙스 피에로 해변에서 멈췄다. 만조여서 물이 허리춤까지 찼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 알릭스가 트레킹을 포기하고 보트를 부르더니 “여기에서 1986년 영국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런 낭만적인 바다에서 잠시나마 조난 경험을 해본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화 섞인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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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건물이 많은 빅토리아 다운타운.

세이셸의 수도 빅토리아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라는 별칭답게 두세 블록 안에 볼거리가 모여 있다. 세이셸은 인구 90%가 가톨릭 신자다. 나머지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믿는데 다운타운에 성당과 힌두·이슬람사원이 다 있다. 성당·사원 모두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전통시장 ‘셀윈 클라크 시장’도 들러봐야 한다. 매일 아침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을 거래하는 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진다. 어업은 관광업과 함께 세이셸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이다. 참치가 주요 수출 어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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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 강한 문어 카레. 여러 문화가 섞인 세이셸 대표 음식이다.

세이셸의 음식에는 문화적 다양성이 담겨 있다. 세이셸은 1756~1814년 프랑스 식민지였고, 이후 1976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호텔에 가면 프랑스식 정찬을 먹고, 대중식당에서는 영국·미국·인도·아프리카가 뒤섞인 음식을 먹는다. 간이 센 편이고, 육류보다는 해산물이 낫다. 문어 카레가 특히 맛있었다. 싱싱한 문어를 깍두기 크기로 썰어 매콤한 카레와 함께 끓여내는데 중독성이 강해 세 번 사 먹었다. 버터레몬 소스를 얹은 돔구이, 참치 스테이크도 입에 맞았다. 세이셸은 럼과 맥주도 직접 생산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타카마카 럼’은 양조장 투어가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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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명소인 보발롱 해변. 백사장 길이가 3㎞에 이른다.

수도가 있는 마헤 섬에도 멋진 바다가 많다. 꼭 가봐야 할 곳은 섬 북쪽 보발롱 해변. 드넓은 백사장이 약 3㎞ 펼쳐진다. 열대의 밤 정취를 느끼기 좋은 바와 저렴한 한 끼를 때울 만한 푸드 트럭도 있다. 리조트와 외국인 관광객이 점령군 행세를 하는 동남아 유명 해변과 달리 현지인이 함께 바다를 즐기는 모습이 좋게 보였다.


세이셸은 아프리카에서 국민 소득(2022년 1인당 GDP 1만7117달러)이 가장 높고, 삶의 질도 좋은 편이다. 근무시간은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데, 관광 가이드도 대부분 오후 4~5시면 일을 끝내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렸다. 해 질 무렵 가족끼리 먹거리를 챙겨 해변으로 나와 낙조를 감상하고 깔깔거리는 현지인의 모습이 장대한 자연 풍광 못지않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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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셸은 한국보다 5시간 늦다. 언어는 영어·프랑스어·크레올어를 쓴다. 공식 화폐는 세이셸 루피(1루피=약 100원)이지만 호텔이나 식당, 관광지에서는 달러와 유로도 통용된다. 한국과 연결된 직항편은 없다. 에미레이트항공과 에티오피아항공을 주로 이용한다. 두바이를 경유하는 게 가장 빠르다. 비자는 필요 없지만, 세이셸 정부 웹사이트에서 전자여행허가(ETA)를 받아야 한다. 10유로.


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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