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되고 싶어요" 해녀사관학교에 남자들 몰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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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과 거제를 아우르는 남해에서 ‘물질’하는 해녀에 관한 문화를 전수하고 복원하는 모임이 있다고 해 찾아갔다. 모임 이름은 ‘해녀퐁당’이다. 해녀가 전복이니 미역이니 낙지를 잡으러 바다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퐁당’이란 이름을 짓게 됐단다.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모임은 모두 도시에서 어촌으로 돌아간 귀어·귀촌인이다. 바다에서 활동하였던 해녀가 점차 사라지고 나잠과 어로에 대한 문화가 잊혀 가는 것이 아쉬워 모였단다.
해녀 문화 전수하고 복원하는 모임 ‘해녀퐁당’
‘해녀퐁당’의 리더인 최영희 대표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회사의 지긋지긋한 갑질에 환멸을 느끼고 6년 전 통영으로 내려왔단다. 그리고 해녀를 양성하는 ‘해녀사관학교’를 만들었다.
단순히 해녀를 양성하는 것만 아니라 해녀 문화를 전승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한국해녀문화전승보존회란 조직을 만들어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 해양 문화에서 해녀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 큼에도 평가절하됐기에 놓칠 수 없는 작업이라서 추진하고 있단다. 해녀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복원하고 새롭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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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장인 김정옥 씨는 결혼을 계기로 도시에서 바닷가로 와 한동안 영어 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최 대표를 만나 해녀 문화 전승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덕분에 물질을 배웠다. 물질은 스킨스쿠버와 해산물 채취가 결합된 작업으로 산소통을 매지 않고 숨을 참고하는 작업이라 훈련이 필요하다. 연약한 몸이지만 해녀의 삶을 생각하면서 해보니 되더란다. 지역 주민들도 해녀체험을 하면서 점차 해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 좋단다.
또 다른 멤버인 신나영 교수는 대학 평생교육원에 있을 때 해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본디 한국무용이 전공인 신 교수는 해녀가 일하러 가면서 내는 소리와 몸짓에 주목해 ‘엄마의 바다’라는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그는 해녀는 잠수부가 아닌 해안가 문화의 주인공이라고 강조한다.
가장 막내인 이소영 씨는 해녀사관학교 2기생으로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해녀 체험 프로그램을 관광 상품화하는 것도 그가 하는 일 중에 하나. 그는 물소중이라고 하는 전통 잠수복이 잘 어울린다. 지금은 고무 재질의 잠수복을 입지만 과거에는 한복 재질의 잠수복을 입었다. 1702년에 발간된 탐라순력도에 물소중이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해녀의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
독특한 서열문화 가진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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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는 독특한 서열 문화가 있다고 한다. 물질의 실력과 연륜에 따라 가장 높은 계급이 대상군이고 아래로 상군, 중군, 하군으로 이어진다. 막내인 하군은 똥군으로도 불렸다고 하니 재미있다. 이들은 대상군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일한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채취한 해산물을 모아 공평하게 나눈다. 물질이 끝나면 다들 모여 전복, 조개, 미역 등의 해산물을 씻고 껍질을 벗기고 손질하고, 몇 개는 불을 피워 구워 먹는다. 그러면서 선배는 신참 해녀에게 물질에 대한 고난도 기술을 전수하고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격려한다.
불가에 마주 앉아 손질 작업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불턱에 앉아 작업 준비와 평가, 교육을 하며 성과를 논하는 모습은 오늘날 기업이 배워봄 직하다. 일방적이지 않으면서 공평하고 민주적인 불턱 문화는 수백 년 동안 해녀들에게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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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건 귀어를 하건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는 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꿈꾸지만 역시나 고민에 빠지게 하는 건 생계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문화에 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지역 문화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지역 주민과 융합하지 못하고 겉도는 결과를 낳게 한다.
남자들도 해남 되려고 ‘해녀사관학교’ 찾아
귀어·귀촌을 해 바닷가에 살면서 지역 문화를 계승하고 복원하고 창조하는 ‘해녀퐁당’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나올 해녀에 관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기대해 본다. 귀어·귀촌에는 낚시와 양식업만 있는 게 아니라 해녀도 있었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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