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맥주 100만㏄ 동났다…홍대 뒤집은 '경록절'의 사나이
록그룹 크라잉넛의 한경록의 생일 2월 11일은 홍대 인디밴드들과 락스타들이 총출동해 이른바 '홍대 3대 명절'이라는 '경록절'이 됐다.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을 찾은 한경록. 장진영 기자 |
서울의 내로라하는 젊음의 거리, 홍대 지역엔 3대 명절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 핼러윈데이, 그리고 ‘경록절’. 2월 11일 록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 겸 베이시스트 한경록(45)의 생일이다. “심심해서 부르면 50명이 모이더라”는 홍대 ‘인싸’ 한경록의 생일에 뮤지션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해 2007년엔 100명이 넘고,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누군가 “한경록 생일파티가 아니라 명절 수준인데. 이거 완전 경록절이네”라고 내뱉은 말이 ‘경록절’의 시초다. “놀다 보니 축제가 됐다”는 한경록을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치킨집 생일파티가 홍대 3대 명절로
군 제대 후 2005년 치킨집에서 시작했던 생일파티는 ‘경록절’로 진화해 2016년부터는 홍대 최대 라이브클럽 ‘무브홀’로 규모가 커졌다. 2020년엔 ‘경록절’을 찾은 이들을 800명까지 세다가 포기했을 정도다. 맥주 100만cc, 칵테일 1000인분, 고량주 100병, 막걸리 100병, 사케 100병 등이 이 자리에서 동났다.
한경록이 코로나19 로 오프라인 모임이 불가능해지자 온라인으로 진행한 '경록절'은 18시간 중계 기록을 세웠다. 장진영 기자 |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에 지면 안 되지. 그럼 집에서 놀자”는 생각에 지난해 온라인으로 진행한 경록절은 영국, 일본, 러시아 등 5개국 뮤지션 83팀 참여, 18시간 중계 기록을 썼다. 김창완이 직접 만든 ‘경록절 축가’를 불렀고, 박재범은 차에서 노래하는 ‘카라오케’를, ‘브로콜리 너마저’는 쿡방을 했다. 올해엔 “뮤지션과 팬들만으로 자생적으로 굴러가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협찬 없이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역시 성공했다.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까지 받았다.
한경록은 클래식 애호가인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그런데 그는 “나는 놀이문화를 선도해야 하는데 피아노 앞에 앉아 연습하는 건 초등 문화에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때 함께 몰려다니며 놀았던 동부이촌동 토박이 친구들이 지금의 ‘크라잉넛’ 멤버들이다.
음악 돌려 듣던 동네 친구들, 밴드 결성
중학교 땐 카세트테이프에 좋은 음악을 녹음해 돌려 듣다가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 다른 친구가 전자기타를 들고 장기자랑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집에 있는 클래식 기타로 로커 흉내를 내다가 93년 고2 때 ‘크라잉넛’을 결성하고 ‘우리끼리’ 공연을 했다. 비어있는 재건축 아파트에서 ‘공가 라이브’, 쌍둥이(기타 이상면 ㆍ드럼 이상혁) 동네 옥상에서 ‘옥상 라이브’를 펼쳤다. 친구들에겐 전자기타 기기용인 9볼트짜리 건전지를 입장료로 받았다.
본격 무대에 선 건 95년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 오디션에 합격하면서다. 약 5년간 일주일에 4일씩 공연을 하면서 밑바닥 실력부터 다졌다. 곡도 쓰기 시작했다. “로커는 영어로 노래해야 할 것 같아서” 영어 곡을 두어 곡 쓰다가 “감흥도 없고 외국인도 못 알아들어서” 동료 이상혁이 한글로 처음 쓴 곡이 ‘말달리자’였다. 한경록은 “우리끼리 음악 듣고 카피하면서 독학하다 보니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이론보다는 음악의 색채를 보고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경록이 만든 곡은 '밤이 깊었네' 등 100곡이 넘는다. 그는 "놀기도 창작의 일환"이라며 "숙취도 영감을 준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
‘크라잉넛’은 98년 최초의 인디앨범으로 꼽히는 ‘말달리자’를 발매하고 전국투어를 다니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한경록은 “뭐든지 운이 좋았다”며 “98년 ‘말달리자’가 나왔을 때 금융위기(IMF)가 터져서 분출구가 필요한데 우리 곡을 통해 공감을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쉴 새 없이 곡 작업과 공연을 하다 보니 피로가 쌓였다. 지금까지 ‘밤이 깊었네’ 등 100곡을 넘게 만든 한경록은 “창작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그래서 서두르지 말자, 편하게 하자 마음먹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홍대 르네상스 준비”
한경록의 홀로서기도 시작됐다. 지난 2017년 “락앤롤의 캡틴이 되겠다”는 마음을 담아 ‘캡틴락’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기획자가 되어 또 다른 락 페스티벌 ‘종로콜링’ 등을 진행했다. 코로나19는 그에게 무대와 관객의 소중함을 더없이 느끼게 해준 계기였다. “예전엔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무대와 관객이 얼마나 소중한지, 요즘엔 (공연을 다시 할 수 있어) 진짜 감사하죠.”
“나는 한경록이 되고 싶다”는 그는 최종 목표도 구상해뒀다. 그는 “꿈을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펀딩으로 받아 노래를 만들겠다”며 “작은 멜로디 박스를 로켓에 실어 경록절에 우주로 보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희망이잖아요. 그걸 담아서 우주로 보내면 각자의 목소리, 꿈이 우주에서 울려 퍼지는 거죠. 꿈을 쏘고 싶어요.”
[에필로그] 미미시스터즈는 ‘장기하와 얼굴들’과 이른바 ‘합의이혼’ 후 독립을 결심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찾은 이가 한경록이었죠. “우리 1집 만들 건데 도와달라”는 이들에게 한경록은 “멈추지 않고 가기만 하면 된다. 난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토닥였다고 하네요. 그런 그를 두고 미미시스터즈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며 웃었습니다.
■ "우린 자연사하자" 넋두리로 기적썼다…미지의 그녀들 정체
여성 듀오 ‘미미시스터즈’가 극단 선택을 한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우린, 자연사하자”고 한 넋두리에서 시작된 곡은 역주행으로 화제가 됐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