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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고랭지밭 도둑 2명의 우연...그들은 왜 배추 훔치려했나

[사건추적]

긴 장마 배추값 10㎏ 2만7500원에 달해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 2배 이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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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5시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의 한 배추밭. 70대 남성이 배추를 잘라 망에 차곡차곡 담고 있었다. 마침 밭 앞을 지나던 A씨(30)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묻자 이 남성은 “밭 주인의 허락을 받고 배추를 가져간다”고 대답했다. 뭔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한 A씨가 사실 확인을 위해 밭 주인에게 전화를 걸자 이 남성은 자신이 끌고 온 승합차를 타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경찰에 신고한 뒤 배추밭을 둘러보던 A씨는 이번에는 10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60대 여성이 배추를 나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서둘러 이 여성을 향해 간 A씨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묻자 여성은 아무런 대답 없이 승합차를 타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뭐하시는 거예요” 묻자 황급히 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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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승합차를 타고 가던 여성은 얼마 가지 못해 차량이 인근 개천에 빠지면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성의 차 안에서는 작은 배추 50포기가량이 발견됐다. 강원도 양양에서 온 여성은 경찰에서 “형편은 어려운데 배춧값이 너무 비싸 가게에 보탬이 될까 해서 가져가려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붙잡힌 여성과 앞서 달아난 70대 남성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한다. 신고자 A씨는 휴가를 맞아 고향을 찾았다가 이날 두 건의 배추 절도를 현장에서 잇따라 목격했다.


생면부지의 두 남녀가 한날 한시에 강원도의 한 산골마을 밭에서 배추를 훔치려 했던 이유는 뭘까. 주민들은 역대 가장 길었던 장마의 영향으로 채소 가격이 금값이 된 점을 꼽았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배추 절도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5일 기준 서울 가락동 시장에서 팔린 평창군 고랭지배추 최고 경매가격은 10㎏(3포기)당 특등급(1등)이 2만7500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 특등급 배추가 1만23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전보다 배 이상 오른 셈이다. 가장 낮은 등급 배추 가격도 올해는 6300원으로 지난해 2200원의 3배 가까이 됐다. 가락동시장의 가격이 이 정도이니 소규모 음식점이나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가격에 배추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찰의 추적 끝에 뒤늦게 붙잡힌 70대 남성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찰에서 “음식점에서 쓰기 위해 배추를 가져갔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뒤에는 밭 주인을 찾아가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춧값 비싸…가게에 보탬 될까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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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올해 배춧값이 급등한 건 긴 장마로 인한 작황 부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다정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장기적인 코로나19 속에 장마가 길어져 8월 중·하순 작황이 전반적으로 안 좋았다”며 “올해는 추석이 늦다 보니 농가가 8월 수확용 배추 재배면적을 줄이는 대신 9월 중·하순에 수확할 배추 재배를 늘린 것도 가격급등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중국산 김치의 수입이 감소한 것도 배추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김치 수입량은 15만4685t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7만2688t과 비교하면 2만t 가까이 줄었다. 수입 김치의 99%는 중국산이어서 중국 김치 수입량은 국내 배추 가격에 매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창=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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