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숲에 누울까 비자림에 앉을까… 초록의 유혹
전남 장성 봄 숲 여행
여의도공원보다 6배 큰 축령산 편백숲
소방관·감정노동자 줄 잇는 치유의 공간
단풍 명소 내장산 백양사도 신록 물들어
산내 암자에선 봄 채소로 사찰 음식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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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록수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다. 전남 장성 축령산의 편백숲은 초록의 봄빛이 짙고 고왔다. 편백과 삼나무가 터널을 이룬 오솔길에 아침 해가 순하게 내려앉았다. 백양사 뒤편의 비자나무 숲은 고요했다. 거대한 나무 아래에 앉으니 일상의 고단함이 가실 듯했다. 산중 암자에서 봄 때깔처럼 고운 절밥 한 그릇 얻어먹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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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림왕’으로 불리던 춘원 임종국(1915~87) 선생을 아시는지. 한국전쟁 이후 벌거숭이 상태였던 축령산에 숲을 일군 주인공이다. 그는 물지게를 이고 산을 오르내리며 편백을 심었다. 1956년부터 76년까지, 편백 27만 그루가 그렇게 뿌리내렸다. 그의 유골도 축령산 언덕 느티나무 아래 묻혀 있다.
자고로 숲은 이른 아침에 가야 한다. 막 잠에서 깬 햇빛이 수풀을 뚫고 들어올 때, 숲은 가장 영롱한 빛을 낸다. 골든타임을 놓칠까, 새벽부터 숲에 드는 길. 대덕마을 휴양관을 들머리 삼아 2㎞가량 임도를 따라 걸으니 어느새 편백숲 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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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에는 편백 친구 삼나무도 많았다. 전체 규모는 대략 67ha. 덕분에 걷기 좋은 숲길이 많았다. 지난겨울 낙하한 편백 열매와 삼나무 잎이 숲길을 뒤덮어 발이 포근했다. 걸을 때마다 보스락보스락 소리가 났다.
편백과 삼나무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것이 사뭇 닮았다. 구분법이 있다. 잎이 넓게 펼쳐진 건 편백, 도깨비방망이처럼 뾰족뾰족한 건 삼나무다. 습한 땅에서 자라는 삼나무는 표면이 축축하지만, 편백의 줄기에는 물기가 없다.
편백은 척박한 땅에서도 별 탈 없이 자라는 순한 나무다. 대신 적은 영양분으로 버티기 위해 미생물 따위를 죽이는 저항 물질을 끊임없이 토해낸다. 우리도 익히 아는 ‘피톤치드’다. 그래서일까. 편백숲에선 무엇보다 숨통이 트였다. 풀 냄새가 진동했다. 삼림욕 천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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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누워 봄바람을 맞으세요.”
스트레스를 토로하자, 정혜정(55) 산림치유지도사가 처방을 내렸다. 편백에 해먹 치고 눕기다. 몸을 누이고, 나무를 올려다봤다. 봄빛이 편백의 초록 잎을 지나 얼굴로 떨어졌다. 숨을 가다듬었다.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여행정보=축령산 편백숲은 산 중턱에 있다. 모암·추암·금곡·대덕리 등 인근 마을에 숲으로 드는 출입로가 있다. 어떤 길을 택해도 족히 40분은 걸려야 편백숲의 품에 안길 수 있다. 편백숲 안쪽으로 10.8㎞에 달하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국립장성숲체원에서 요가와 명상, 오일 마사지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가비 5000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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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가는 길은 단아했다. 장성 중평삼거리~백양사 매표소 천변으로 벚꽃이 흩날렸다. 쌍계루 앞 널찍한 연못에도 봄이 성큼 와 있었다. 잎이 아기 손바닥만 해 ‘아기단풍’으로 불리는 내장산 단풍은 봄에도 고왔다. 연둣빛 이파리마다 조그맣고 빨간 꽃망울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단풍나무 꽃은 이맘때만 볼 수 있는 앙증맞은 봄 손님이었다.
쌍계루 너머의 백양 자연 관찰로는 봄의 전령과 걷는 길이었다. 봄물 흐르는 계곡 길을 따라 현호색·개별꽃·제비꽃 같은 들꽃이 사방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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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친 화진 스님의 제안에 당장 쫓아 나섰다. 쌍계루 뒤편 산비탈에 오르니 초록의 비자나무가 수두룩했다.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제153호)이었다. 스님들이 오랜 시간 아껴온 산책길이란다. 스님들이 키우는 차나무도 오솔길에 숨어 있었다. 한데 세상에 알려진 바 없어, 쌍계루를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모르고 지나친단다. 덕분에 비자림은 더없이 한적했다.
백양사 비자나무는 고려 고종 때인 13세기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나무는 바둑판의 재료로, 열매는 기생충 없애는 약으로 쓸모가 높았다. 그 시절 사찰에 꼭 필요한 나무였을 게다. 마침 키가 족히 5m는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비자나무에도 꽃망울이 맺힌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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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천진암 공양간에서는 사찰 음식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스님의 음식을 경험하려는 사람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터키에서 온 셰프, 뉴욕에서 온 대학생, 불가리아에서 온 모녀, 브라질에서 온 교수 등등 참가자의 국적이 실로 다양했다.
“과욕 없이 수행에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만 담는 게 사찰 음식입니다. 식재료 본연의 맛에 충실해야 합니다.”
손두부를 활용한 애호박찜, 텃밭에서 갓 뜯어 만든 취나물 무침 등 갖은 요리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봄꽃처럼 요리도 색깔이 고왔다. 5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 4년간 묵힌 유자청, 말린 귤껍질 등 간을 내는 식재료에 정성과 철학이 깃들어 있었다. 맛이 어땠느냐고? 그저 봄을 깨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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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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