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하다] 일당 70만원의 유혹…의사들의 '위험한 알바'
탐사하다
요양병원서 응급 상태 빠진 81세
병원 기록지엔 원장이 진료 의사
알고 보니 타병원 수련의가 당직
종합·개인병원 의사도 불법 알바
요양병원 원장 명의로 대리 진료
불법 당직·대리진료 의료계 만연
환자 안전과 직결된 의료법 위반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노원구 S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81세 박모 할머니가 응급상태에 빠졌다. 사흘 만에 인근 대형병원으로 후송됐지만 20일 만에 숨졌다. 유족들은 S요양병원을 상대로 “응급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흔한 의료분쟁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의료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숨어 있다. ‘불법 당직 아르바이트’와 다른 의사 명의로 진료하는 ‘불법 대리 진료’ 문제다.
고인이 응급상태에 빠진 날 고인의 ‘경과 기록지(progress notes)’에는 진료 의사가 S요양병원 원장 이모씨로 돼 있다. ‘탐사하다 by 중앙일보’팀이 입수한 S요양병원 당직표엔 당일 당직 의사가 김모씨로 나온다. 국립병원인 국립재활원 소속 레지던트다. 김모씨만 그랬던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국립재활원 소속 레지던트 5명이 추가로 이 병원에서 일했다. 이들은 대가로 주말 하루에 45만원 정도를 받았다.
레지던트는 의사 면허를 딴 후 3~4년간 전문의 수련 과정을 밟는 전공의를 말한다. 손호준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레지던트는 소속 기관이 아닌 다른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금지돼 있다”며 “위반 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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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원에선 종합·개인병원 의사(전문의)들도 당직 아르바이트를 했다. 올 1~3월에만 다섯 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S요양병원 관계자는 “전문의의 경우 주말 당직 대가로 70만~8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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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S요양병원에서 당직 아르바이트를 한 레지던트는 물론, 전문의도 자신이 아닌 이 병원 원장의 명의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평원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심평원 관계자는 “대리진료 사실을 숨기거나 수익을 탈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법 위반은 물론 보험급여 허위 부당청구, 사문서 위조죄 등이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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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이 같은 '몰래 아르바이트'가 의료계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들의 얘기다. 병원 입장에선 상근 당직 의사를 둘 때보다 절반 정도의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의사들로선 돈을 벌 수 있어서다.
익명을 원한 A병원 관계자는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경우 아예 레지던트들이 팀을 꾸려 요양병원이나 급성기병원(급성 질환이나 응급 질환을 진료할 수 있는 입원 가능한 병원)에서 당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 바닥에서는 다 아는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B병원 관계자도 “보건소나 건강보험공단 등에서 조사를 나와도 당직표만 슬쩍 보고 넘어가기 때문에 적발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박지용 교수는 “불법 아르바이트나 대리 진료는 의료인,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특히 환자 안전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 있다”며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도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불법 아르바이트와 대리진료에 대한 보건당국의 실태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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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최현주·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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