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시대, 평생 쓸 수 있는 멋진 가구를 생각한다면
‘USM’ 알렉산더 쉐러 CEO 인터뷰
스틸 파이프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은색 스틸 파이프와 둥근 조인트 볼, 납작한 철제 패널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이다. 단순한 철제 구조물인가 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중간에 책상과 책장, 서랍과 의자, 심지어 싱크대까지 만들어져 있다. 단 세 가지 재료로 만든 거대한 집. 바로 스위스 가구 브랜드 ‘USM’이 만든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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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열린 2019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USM 부스는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눈에 띄는 스틸 파이프 구조물 때문이어서도 그렇지만 스위스 모듈러 가구 USM을 실제로 체험해보기 위한 관람객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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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모듈러 가구 브랜드인 USM은 요즘 사진 기반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 특히 인기다. 3~4년 전부터 인테리어 인플루언서들의 집마다 USM 가구가 놓이기 시작했다. 세 칸짜리 TV 장을 구성하려면 약 300~400만원 정도로 고가지만 USM 애호가들은 특유의 미니멀한 분위기의 스틸 마감과 형형색색의 컬러, 견고해 보이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낸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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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M의 역사는 1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스위스 뮌징엔 지역에서 자물쇠를 만드는 철공소로 시작, 창호 시스템을 만들며 성장한 회사다. 1961년 공장을 새로 짓기 위해 당시 3대 경영자 폴 셰러(Paul Scharer)가 건축가 프리츠 할러 (Fritz Haller)에게 건축 의뢰를 하면서 본격적인 USM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로써는 드문 기능성 스틸 프레임과 유리 벽으로 건물을 지었는데, 상황에 맞게 공간을 확장하고 분리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였다. 1960년대에 지금의 애플이나 구글 사옥을 연상시키는 미래적인 건물이 만들어진 셈이다. 유리와 스틸로 된 건물을 만들어 놓고 보니 공간을 채울만한 가구를 찾을 수 없었고, 어울리는 가구를 직접 만들어보자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모듈 시스템 가구 US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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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튜브, 볼, 패널 단 3개의 요소로 완성되는 USM은 사용자가 필요와 환경에 따라 무한히 확장하고 변형할 수 있는 모듈 시스템이 특징이다. 크롬 스틸 볼과 파이프를 연결해 프레임을 만들고, 필요에 따라 서랍과 도어 등의 옵션을 추가하면 책장, 탁자, 옷장 등 원하는 가구를 만들 수 있다. 원한다면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맞춰 변형하고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가구 편집숍 ‘스페이스 로직’을 통해 한국에 소개된 지 5년, 인테리어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기 어려울 정도로 외형적 성장을 이룬 USM의 알렉산더 쉐러(Alexander Scharer·54) CEO를 단독 인터뷰했다.
Q : 한국에서 USM의 인기가 상당하다. 예상했나.
사실 이렇게 성공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 5년이라는 단기간에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한국이 큰 시장이 됐다. 어떤 해에는 30~40%까지 성장했다. 한국 인테리어 시장이 굉장히 성숙한 것으로 느껴진다. 한국 소비자들이 USM으로 가구를 구성해 인테리어를 한 사진을 보면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Q : 원래 가정용이 아니라 사무용 가구다.
유럽에서는 USM이 쓰이는 비율이 사무용 7:가정용 3 정도다. 초기에는 USM 특유의 프레임 구조를 선호하는 건축가들이나 순수 예술가들이 가정용 가구로 사용했다면, 지금은 유럽에서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가정용으로 USM을 들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특이하게 가정용과 상업용이 5대 5 정도의 비율이다. 주거 공간이 비교적 협소한 한국과 일본의 경우 공간에 최적화한 맞춤 수납을 할 수 있어 선호하는 것 같다.USM이 설치된 삼성 미술관 리움. [사진 스페이스 로직] |
1969년 파리에 새롭게 은행을 만들 준비를 하던 로스차일드 여사가 은행 사무실 가구로 USM을 대규모 주문하면서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항공사, 대학교, 관공서, 병원 등 체계적인 수납이 필요한 곳에 USM이 놓이기 시작했다. 전체 연간 매출의 70% 정도가 상업 공간, 30%가 생활 가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1993년 USM에 합류한 4대 경영자이자 현 CEO 알렉산더 쉐러의 공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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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모듈 퍼니처를 가정으로 가져온 주역이다. 어떤 전략이 있었나.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오피스 시장이 하락세를 겪었다. 가정용 설치로 경영 전략을 선회하려는 때에 마침 SNS 채널이 확산됐다. 오피스 시장은 스페이스 플래너에 의해 주도되지만, 가정용은 새로운 홍보 채널이 필요했다. 인테리어 감각이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USM을 사용하는 모습이 소개되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
Q : 특히 한국에서의 성장은 SNS 영향이 컸다.
다른 지역의 시장에선 USM을 창의적으로 조립하고 배치하는 컨테스트를 만들어 포스팅을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SNS 영향력이 대단한 데다, 한국 소비자들의 디자인 관심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포스팅 수준이나 팔로워 숫자 등으로 봤을 때 프랑스 같은 전통 유럽 시장보다 더 앞서는 것 같다.
Q : 실제 소비자들이 USM을 구매해서 변형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가.
물론이다. 사무실을 USM으로 꾸민 경우, 시설 관리자들이 변형하고 조립하는 것을 배워가서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에 있는 제약사 로쉬는 전체 가구가 USM이다. 관리자들이 공장에 와서 트레이닝을 받은 후 스스로 변형시켰다. 가정에서는 대게 USM 파트너의 AS서비스를 받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기저귀 갈이대로 사용하다가 조금 크면 책장으로, 아이가 성장하면 다른 용도로 쓰는 등 수십 년 동안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중고 시장에 팔아도 된다. 유럽에선 정가의 약 70%로 중고 가격이 형성돼 있다.
Q : 소비자가 직접 조립할 수 있는 쉬운 제품을 만들 생각은 없나.
그런 질문을 많이 받지만 우리는 하이엔드 제품이기 때문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유지하려 한다. 간혹 취미로 USM을 조립하는 경우도 봤지만, 우리는 가구를 만들고 조립하기보다 그 시간에 USM으로 만든 가구를 즐기면서 편안하게 쉬길 바란다. 물론 안전상의 문제도 있다.
Q : USM의 인기 비결이 뭘까.
매력적인 디자인이다.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기본은 건축적이고 논리적이지만 대단히 감성적인 가구이기도 하다. 막상 공간에 두고 보면 어떤 오브제들을 결합하느냐에 따라 따뜻함을 느낄 수도 있다. 2001년도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상설 전시로 USM 할러 시스템이 채택됐다. USM의 디자인이 클래식 반열에 올랐다는 얘기다.
Q : 50여년을 지속한 디자인이다. 혁신도 고민해야 할 텐데.
헤리티지와 혁신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현대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USM이 가진 본연의 전통을 보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USM 할러 시스템의 색은 14가지다. 200개까지도 만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20년 후에도 같은 색상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을 수 있다. 200개의 색을 오랜 세월 똑같이 관리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한다. 대신 USM 시스템에 더할 수 있는 추가적인 옵션에선 창의성을 발휘한다. 이번에 출시된 할러 E 시스템은 모듈 튜브 안에 조명과 USB 충전 옵션을 뒀다.<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당신의 집에는 USM이 가득한가.
물론 있지만 과하게 많지는 않다. 책이 많은 서재 정도에만 들여놨다. 처음 USM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오픈 책장이나 침대 옆 작은 작은 탁자부터 들여놓으라고 추천한다. 처음부터 수천 유로로 시작하지 말고, 500~800유로(60~100만원) 정도로 시작해 조금씩 늘려가면 된다.
Q : 앞으로 가구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할까.
점점 환경을 생각하는 쪽으로 변화할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저렴한 것을 사서 쉽게 버리는 가구보다 처음부터 높은 품질의 제품을 사서 오래 쓰는 스타일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케아같은 브랜드가 없었던 옛날에는 모두 가구는 일단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것으로 생각했다. 말하자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셈이다. USM은 디자인도 클래식하지만 재료 역시 지속적이다. 대를 이어 쓸 수 있고 무엇보다 사용자에게 맞게 변형해 쓸 수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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