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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비슷해진 지구촌, 리메이크 드라마 뜬다

영국 원작 ‘라이프 온 마스’ 한국판

1988년 한국 풍경 재연하며 화제

‘마더’‘미스트리스’도 잇따라 호평


‘굿닥터’‘시그널’ 일본 버전도 인기

“검증된 콘텐트” 하반기에도 줄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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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드라마 리메이크의 성공 기준은 무엇일까. 5일 종영한 OCN 주말극 ‘라이프 온 마스’가 남긴 질문이다. 2006~2007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원작인 ‘라이프 온 마스’는 상대적으로 낮은 채널 인지도에도 마지막회 시청률 5.9%(닐슨 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2018년 서울에서 연쇄살인범을 쫓다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한태주 형사(정경호 분)가 1988년 인성시에 떨어져 관련 사건들을 경험하는 설정으로, 장르물을 선호하는 젊은 층은 물론 복고 수사극에 열광하는 중장년층까지 고루 흡수한 덕분이다.

리메이크의 중점을 ‘현지화’에 둔다면 이 드라마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라디오에서는 조용필의 ‘모나리자’가 흐르고, TV에서 ‘수사반장’의 최불암이 나오는 모습은 누가 봐도 1988년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강력계장 역의 박성웅 휘하 여순경 고아성·행동대장 오대환·순수파 노종현 등 강력 3반 식구들을 맡은 배우들의 찰진 연기와 신용카드 소매치기,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등 시대상과 결부된 범죄들은 ‘응답하라’ 시리즈와는 또 다른 복고적 재미를 선사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라이프 온 마스’가 흘러나오는 1973년 영국을 배경으로 삼은 원작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드라마를 즐기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제작진이 가장 신경 쓴 부분도 한국화다.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해 판권 구매 당시 이미 한국에서 타임슬립 자체가 식상해진 시기였지만 개별 캐릭터와 이들의 시너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시대 정서를 담아내고 로컬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연출자 이정효 PD는 대만 TTV 원작 ‘마녀의 연애’(2014)와 미국 CBS 원작 ‘굿와이프’(2016)에 이어 세 번째 리메이크에 도전하는 베테랑이다. 이 PD는 “이미 입증된 스토리는 안정감이 있기 때문에 디테일한 표현에 주력할 수 있다”며 “한태주가 병원에 누워있던 한 달이 88년도에선 6개월 동안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시기의 사건들을 주로 활용하고, 주인공 아버지(전석호 분)를 사우디로 일하러 간다고 가족들을 속인 도박장 업주로 설정해 한국적 색채를 더했다”고 밝혔다.


시기적으로도 적절했다. tvN ‘시그널’(2016), OCN ‘터널’(2017) 등을 통해 타임슬립 장르물에 대한 선행학습이 충분히 됐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복합장르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층 수월했단 것이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원작은 영국 수사물 특유의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있는데 한국판은 코믹한 터치를 더해 장벽을 한 단계 더 낮췄다”고 분석했다. 또 “원작에서 심도 있게 다뤄진 인종차별이나 성소수자 문제도 남자들 사이에서 ‘미스 윤’이라고 불리며 커피를 타는 윤나영 순경(고아성 분)을 통해 실감 나게 보여줬다. 페미니즘 이슈가 떠오른 현재 상황과도 잘 맞물리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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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최근 리메이크 드라마의 성적표와도 궤를 같이한다. KBS2 ‘슈츠’(미국 USA네트워크, 2011~)는 지난 6월 두 자릿수 시청률(10.7%)을 기록하며 종영했지만 화제성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상반기 방영한 tvN ‘마더’(일본 NTV, 2010)나 OCN ‘미스트리스’(영국 BBC, 2008~2010)의 경우 시청률은 높지 않았으나 호평이 잇따랐다. ‘마더’는 지난 4월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경쟁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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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슈츠’는 미국 경제 상황을 전제로 한 이야기인데 다원화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한국식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브로맨스에 치우친 반면, ‘마더’나 ‘미스트리스’는 아동학대나 불륜 등 보편적 소재로 여성이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는 새로운 형태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미국 CBS에서 시즌 14 방송을 앞둔 ‘크리미널 마인드’나 HBO에서 시즌7까지 제작된 ‘안투라지’는 국내에서는 현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흥행에 실패했다.

이처럼 제작 노하우가 쌓이면서 하반기 라인업에도 해외 원작 리메이크 드라마가 여러 편 포진해 있다. MBC는 2011~2015년 영국 BBC 원작의 ‘루터’와 올 1분기 일본 WOWOW 채널에서 방영한 ‘감사역 노부키 슈헤이’(한국판 제목 ‘더 뱅커’)의 리메이크를 준비 중이다. 일본 후지TV 원작의 드라마도 나란히 등판한다. tvN은 9월 기무라 타쿠야의 대표작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을, KBS2는 10월 ‘마더’의 원작자 사카모토 유지가 쓴 ‘최고의 이혼’을 한국판으로 선보인다.


콘텐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나라별 리메이크 시차가 짧아진 점도 눈에 띈다. KBS2 ‘굿닥터’(2013)는 지난해 미국 ABC에서 리메이크되고 9월 시즌2 방영을 앞둔 가운데 지난달 후지TV에서 일본판을 시작했다. 2016년 작품인 ‘시그널’ 역시 올 2분기 일본 KTV에서 ‘시그널 장기 미제 사건 수사반’으로 리메이크돼 호평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황선혜 일본비즈니스센터장은 “일본은 제작자뿐 아니라 광고주도 이미 검증된 원작을 활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과거 로맨틱 코미디물은 양국 간 문화 차이로 리메이크 실패 사례도 종종 있었으나 장르물이나 메디컬 드라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반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KBS 정성효 드라마센터장은 “다매체·다채널 시대를 맞아 콘텐트 제작뿐 아니라 소비가 글로벌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리메이크 증가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추세”라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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