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되새긴 아들 기적…부친이 판 땅 되사 '해남 명소' 일궜다
포레스트수목원은 전남 해남 두륜산 남서쪽 자락에 들어앉아 있다. 지금은 벼과식물인 팜파스그라스가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다. |
국토 최남단 땅끝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흥사, 명량대첩의 현장 우수영 관광지.
전남 해남 하면 떠오르는 전통 여행지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멋진 사진도 건질 수 있고 산책하며 쉼도 누릴 수 있는 수목원과 정원이 필수 코스로 꼽힌다. 수국으로 유명한 '포레스트수목원'과 해남 1호 민간정원 '문가든' 이야기다. 두 곳 모두 가꾼 이의 사연을 알면 더욱 흥미롭다.
한국 최대 수국 정원 - 포레스트수목원
해남 포레스트수목원은 수국이 유명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수국정원에 250종 수국이 산다. |
해남의 진산인 두륜산(700m) 남서쪽 자락에 들어앉은 '포레스트(4est)수목원'은 2019년 개원했다. 수목원을 가꾼 김건영(58) 원장은 20년 이상 골프장 건설, 코스관리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였다. 승승장구하던 2012년 돌연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약 2년간 도서관에 틀어박혀 인문서를 탐독하며 잊고 있던 꿈을 발견했다. 김 원장은 “더는 기계 부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직장을 관뒀다”며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100년 후에도 남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수목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포레스트수목원 김건영 원장은 40대 초반에 직장을 관둔 뒤 오랫동안 꿈꾸던 수목원을 조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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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전재산을 끌어모아 고향 해남에 20만㎡ 부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전국 50여 개 수목원을 드나들었다.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은 스무 번 방문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모두가 개인 수목원 설립을 만류했다. 김 원장은 꺾이지 않았다. 김 원장은 “손님이 오길 기다리지 말고 불러들이는 수목원을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여름엔 수국, 가을엔 팜파스그라스가 가장 화려할 때 축제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포레스트수목원은 사철나무가 많은 두륜산 남서쪽 자락에 들어앉아 있다. 드론으로 내려다본 수목원. |
포레스트수목원은 ‘땅끝’ 해남에 있는데도 2019년 개장하자마자 전국에서 이목을 끌었다. 2020년 10만 명, 2021년 8만 명 이상 방문했다. 250종에 달하는 수국으로 소문이 났고, 한국관광공사 ‘안심 관광지’ ‘강소형 잠재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최대 수국 정원이 전부는 아니었다. 수목원 터에 이미 600여 종 식물이 자생했고, 새로 심은 식물까지 1600종에 달하는 식물이 어우러져 드넓은 수목원을 산책하면 온갖 풍경을 만날 수 있다. 9월 8일 현재 옅은 분홍빛이 도는 목수국과 키가 3m에 달하는 갈대의 사촌뻘인 팜파스그라스가 만개해 있었다. 이달 말께 핑크뮬리가 만개할 전망이다.
흑석산 끌어들인 ‘차경’ 일품 – 문가든
해남 계곡면에 자리한 민간정원 '문가든'은 흑석산과 오류제가 한눈에 담기는 풍광이 일품이다. |
해남읍 위쪽, 계곡면에 자리한 ‘문가든’은 MZ세대에게는 ‘풍경 맛집’, 중장년에게 나들이하기 좋은 카페로 알려졌다. 물론 커피를 팔긴 하지만 문가든은 카페이기 전에 한 사람의 추억과 남다른 정성이 담긴 정원이다.
문가든을 가꾼 문홍식 대표. 임업 분야 전문가인 문 대표는 아버지가 매각했던 과수원 땅을 다시 사들여 정원을 가꿨다. |
문가든은 2021년 6월 문을 열었다. 1년 3개월밖에 안 된 정원이지만, 문홍식(62) 대표의 이야기는 수십 년을 거슬러 오른다. 50여년 전 저수지 ‘오류제’를 만들면서 문 대표 아버지가 지금의 정원 부지를 매입해 과수원을 운영했다. 문 대표가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1988년 아버지는 과수원을 팔았다. 그리고 21년이 흘러 아들은 어릴 적 뛰놀던 추억이 서린 과수원 땅을 다시 사들였다. 완전히 방치된 채 정글이 돼버린 땅을 차근히 가꿨고 2018년 퇴직 후 본격적으로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문가든은 해남에서 '일몰 맛집'으로 통한다. 흑석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면서 물든 하늘이 붓으로 그린 것 같다. 사진 해남군 |
산림 전문가인 문 대표의 장기가 빛을 발했다. 2020년 ‘전라남도 예쁜 정원 컨테스트’ 근린정원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해남 최초의 민간정원으로 선정됐다. 문 대표는 “정원 부지는 1만㎡ 정도로 넓진 않아도 오류제와 흑석산을 차경(借景)으로 끌어들여 수천만 평의 장관을 보여준다”며 “정원은 최대한 자연미를 살리면서도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문가든 정원을 직접 걸어봤다. 황칠나무, 후박나무, 꽝꽝나무 같은 난대림과 바늘꽃, 끝물에 접어든 배롱나무꽃이 어우러진 풍경이 그윽했다. 카페 2층 창가에선 흑석산의 그림같은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달 말이면 국화가 정원을 화려하게 수놓는단다.
해남=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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