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 지어주니…대부분 적자인데, 공항만 20여개 될 판
새만금공항 조감도. 자료 국토교통부 |
'가덕도공항, 대구경북통합공항, 새만금공항, 제주 2공항, 울릉공항, 백령공항, 서산공항, 흑산공항.'
현재 건설 중이거나 추진 또는 검토되는 신공항사업들이다. 이 중 진척이 가장 빠른 울릉공항은 2025년 말 개항을 목표로 건설이 한창이다. 흑산공항과 새만금공항은 기본계획이 고시됐고,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면제된 가덕도공항은 사전타당성조사(사타)을 마치고 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다.
백령공항과 서산공항은 예타가 진행 중이며, 제주 2공항은 환경부가 기본계획 고시 전에 시행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반려해 국토교통부가 보완 작업 중이다. 대구경북통합공항은 국토부 주관으로 사타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 8개 사업이 모두 추진될 경우 필요예산만 20조원이 넘는다.
또 아직 정부가 공식검토하는 건 아니지만 경기남부공항과 포천공항 등까지 합하면 신공항 논의만 10여개에 달한다. 물론 이들 중에는 신공항과 인근 공항의 통폐합이 예정된 곳도 있다. 대구경북통합공항이 완공되는 시점에 대구공항이 폐쇄될 예정이며, 새만금공항도 인근 군산공항의 민간항공 기능을 다 가져오게 된다.
건설·추진·논의 중 신공항 10여개
하지만 나머지 신공항은 말 그대로 새로 지어지는 공항이다. 지금 국내에서 운영 중인 공항은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담당하는 인천공항과 한국공항공사가 관할하는 김포·제주공항 등 14개를 합쳐 모두 15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신공항들을 합하면 족히 20개는 넘는다. 이대로라면 흔히 하는 말로 '전국에 널린 게 공항'이 될 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려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기존 공항도 운영이 녹록지 않은 형편인데 신공항들까지 속속 들어서면 운영난이 가중될 거란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공항 가운데 인천공항과 김포·제주·김해공항 등 4~5개를 제외하면 모두 만성적자다.
무안공항은 5년간 누적 순손실만 660억원에 달한다. 중앙일보 |
정진혁 연세대 교수는 "무안공항의 경우 최근 5년간(2016~2020년) 모두 660억원의 누적 순손실을 냈고, 여수·양양·울산공항도 수백원의 순손실을 기록 중"이라며 "이는 절대적으로 이들 공항의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항업계 고위 관계자도 "지금 있는 공항도 수요 부족 탓에 제대로 활성화하기 어려운데 계속해서 신공항을 지어대면 어떻게 하란 거냐"고 우려했다.
해당 지자체마다 신공항 규모를 더 키우고, 국제선까지 대거 유치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우는 것도 부담이다. 사업비가 상당부분 늘어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경북통합공항은 애초 공군기지 이전계획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한해 여객 900만명을 처리하는 중추공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 공항 15개, 상당수 만성 적자
현재 대구공항의 여객 수요는 연간 400만명 수준이다. 이승상 대구시 공항정책과장은 "여객 수요 전망은 물론이고 대구·경북·강원지역의 화물 물동량 등을 고려하면 신공항이 충분히 중추공항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구·경북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통합공항 내 민간공항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고, 공군기지도 '기부 대 양여'(사업주관기관에 대체시설을 기부한 자에게 용도폐지된 재산을 양여하여 국가소유 시설을 이전하는 방식)를 기본으로 하되 부족분은 정부가 메워주라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까지 발의됐다. 민간공항 규모를 기존 대구공항보다 훨씬 더 키우려는 의중이 담겨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가운데) 등이 2일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렇게 신공항 추진이 봇물을 이루는 건 지역주민의 접근성 향상과 지역 발전 목적도 있지만 상당부분 정치적인 계산과 지자체의 욕구 등이 결합한 측면이 커 보인다. 문제는 객관적 경제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승객과 취항 항공편 모두 거의 없는 '유령공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병종 한국항공대 교수는 "그간 경험했듯이 공항이 새로 지어졌다고 해서 항공편이 무조건 연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상수요가 적으면 국내외 항공사들이 외면할 거란 의미다. 일본도 우리와 유사한 이유로 전국에 90여개 넘는 공항을 만들었지만, 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적자로 알려져 있다.
건설·운영비, 해당 지자체 분담 필요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신공항 추진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지자체의 책임 강화를 거론한다. 현재는 어떻게든 공항만 유치하면 정부가 100% 예산으로 공항을 건설하고, 또 해당 공항공사를 통해 운영해주기 때문에 지자체는 거의 부담이 없는 게 사실이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총투자비용 가운데 국고 비중을 낮추고, 대신 해당 지자체의 부담을 높여 수요가 충분치 않으면 신공항을 추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울릉공항처럼 대체교통수단이 필요한 지역은 예외"라고 덧붙였다.
제주 2공항 조감도. 자료 국토교통부 |
김연명 한서대 교수도 "정부가 공항 건설비를 전액 부담하니까 각 지자체와 정치권이 서로 공항을 지어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광역철도처럼 지자체에도 일정부분 사업비와 운영비를 부담시키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각 공항 간 기능과 역할의 재정립이 요구된다는 의견도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관문·중추공항은 두 세 개면 충분하니 그 외 공항은 실정에 맞게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며 "특히 지방공항은 비지니스 소형비행기, 레저용 경비행기 등 새로운 항공비즈니스·레저수요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정책 목표와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