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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판 구하라'···언니의 울분 "생모는 동생을 지갑으로 봤다"

양육비소송 이긴 '전북판 구하라 사건' 언니

"두 딸 잘 키워준 아버지·새어머니에게

'고생했다, 고맙다' 했다면 소송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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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씨는 그나마 많은 카메라(언론)가 집중되다 보니 (구하라씨 생모가) 본인이 (인터뷰를) 하고 싶어도 못 하겠지만, 저희처럼 상속법이라는 그늘 아래 숨어 시원하고 맘 편히 돈을 가져가 쉬고 있는 (생모나 생부를 둔) 사람들한테는 저희 판결이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소방관이던 작은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유족급여 등 1억원가량을 타간 생모에 대해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이긴 큰딸 C씨(37)는 1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홍승모 판사는 지난 12일 순직한 소방관 딸의 친부인 A씨(63)가 전 부인 B씨(65)를 상대로 제기한 두 딸에 대한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A씨에게 7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부모의 자녀 양육의무는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고, 양육비도 공동 책임"이라며 "상대방(생모)은 두 딸의 어머니로서 청구인(전남편)이 딸들을 양육하기 시작한 1988년 3월 29일부터 딸들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 두 딸에 관한 과거 양육비를 분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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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소방관. [사진 소방관 언니]

이번 사건은 '전북판 구하라 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친오빠 구호인씨는 지난 3월 "부양의무를 저버린 친모는 동생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며 국회에 일명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올려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20대 국회 처리는 불발됐다.


C씨는 "(법원이 산정한) 양육비 7700만원은 생모가 그간 일시에 받아간 순직유족급여 금액과 비슷하다"며 "판사님께서도 다른 돈이 아니라 그 돈만큼은 저희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마땅히 가져가야 할 돈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생모 B씨에 대해서는 "우리를 자식이 아니라 하나의 지갑으로 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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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큰딸 C씨와의 일문일답.





-애초 양육비 청구 소송을 제기한 목적은.


"양육비를 청구한다기보다 그 사람(생모)이 상속법에 의해 가져간 동생의 권리 반절을 다시 돌려받고자 시작했다. 거기에 전제되는 것은 도덕적 반성이고, 사과다. 미안한 걸 알고 (순직유족급여 등을) 가져가라는 거였는데 당당했다."(※ 전북 전주에 사는 A씨는 지난 1월 "장례식장조차 오지 않았던 사람이 뻔뻔하게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며 전 부인 B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983년 1월 결혼한 A씨 부부는 1988년 3월 협의 이혼했다. 당시 각각 5살, 2살이던 두 딸은 A씨가 노점상 등을 하며 키웠다.)





-그래도 생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천륜이니 너무 험하게 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생모는 순직유족급여 말고 처음에 동생이 일반 사망으로 처리된 뒤 나온 일반유족급여와 퇴직금 등 1700만원을 가져갈 때부터 미안함이 없었다. 본인이 (양육을) 함께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가 저희를 사랑으로 키우셨다. 새어머니가 저희를 훌륭하게 키워주셨다. 자기가 할 몫을 나눠서 한 두 사람에게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 고맙다' 이 한마디만 하셨어도 양육비 소송은 하지 않았다."


-순직한 ○○씨는 어떤 딸이고, 동생이었나.


"부모님이 힘들게 저희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커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했다.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중에서도 응급구조사를 했던 것도 부모님과 상의해 결정한 거다. 저한테는 엄마 같은 동생이었다. 엄마가 없었는데도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지 않았던 건 엄마의 빈 공간 속에 모두 동생이 있어서다. 친구들과 고민이 생겨도 동생이 상담해 줬다. 제가 하는 음식을 다 맛있다고 칭찬해 주고, 제가 아기를 가져 몸이 부어 당뇨가 왔을 때도 저보다 더 걱정해 줬다."





-구급대원으로서 동생은 어땠나.


"6년 2개월간 1차적으로 사건을 수습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시신들을 많이 봤다. 나이 드신 분들만 보는 게 아니고 자기 또래 남성, 네다섯 살밖에 안 되는 아이가 베란다 사이에서 추락하는 모습 등을 봐야 했다. 사건 현장에서 맞이하는 모든 순간들로 힘들어했지만, 본인을 기다리면서 힘들어했을 사람들에 대해 후회가 더 많았다. 본인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자기가 좀더 능숙했으면 덜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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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순직한 소방관(당시 32세·왼쪽)이 생전에 친언니(37)와 여행 중 함께 찍은 모습. [사진 소방관 언니]

-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까닭은.




"평소에 괜찮다가도 구조 당시 생각이 들어 잠을 못 이뤘다. 그런 고통 속에 있다가 '내가 이 상태로 이 일을 계속하게 되면 사람들한테 오히려 도움이 못 되겠다' 싶었나 보다. 가족들이 '힘들면 유치원 선생님이나 아동복지사 등 다른 일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때마다 동생은 '이 힘든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으니 내가 한다'고 했다. 그때 '그만두라'고 강하게 얘기할 걸 (후회스럽다.) 동생은 마지막까지 (구급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A씨 소송은 수도권 한 소방서 응급구조대원으로 일하던 작은딸(당시 32세)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다 지난해 1월 극단적 선택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순직이 인정된다"며 A씨가 청구한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결정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법적 상속인'이자 친모인 B씨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B씨가 받은 유족급여 등은 A씨가 수령한 금액과 비슷한 약 80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때까지 매달 유족연금 91만원도 받는다.)





-법원이 생모에게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다며 아버지 청구를 받아줬다. 어떤 의미로 보나.


"(법원이 정한) 양육비 7700만원은 생모가 그간 일시에 받아간 순직유족급여 금액과 비슷하다. 판사님께서도 다른 돈이 아니라 그 돈만큼은 저희를 키워주신 부모님이 마땅히 가져가야 할 돈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 ※생모 B씨는 재판 과정에서 "전남편은 이혼 후 딸들에 대한 접근을 막고, 딸들이 엄마를 찾으면 딸들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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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씨 오빠가 국회에 입법 청원한 일명 '구하라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통과돼야 한다. 보훈청에서는 유족들을 위로하는 연금을 지급할 때 이혼 가정 등에 대해서는 (생모든 생부든) 주로 부양한 근거를 제시하도록 돼 있다. 이 작은 기관에서도 하는 일을 나라에서 수정을 안 해주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길 거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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