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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밥솥 없니? TV 필요없니?… 예, 없어서 좋아요







“부모님이 자꾸 물건을 사라고 말씀하시는데, 아직 저는 그 물건을 집에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꽤 익숙한 질문입니다. 저희 부부도 양가 부모님께 자주 들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선택에 거의 관여를 안 하시고 믿고 맡기시는 부모님이지만, 냄비 밥을 해 먹는다 하면 그래도 전기밥솥으로 간편하게 지내라 하실 때도 있고, 종종 저희 집에 오셔서 TV가 없어 심심하지 않냐 궁금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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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사람인지라 친정엄마가 “집에 교자상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하실 때 입을 샐쭉거리며 “엄마, 요즘엔 필요할 때 빌릴 수 있어서 굳이 교자상 살 필요 없어요. 일 년에 몇 번 쓴다고 365일 내내 집에 모시고 살아요”라고 잘난 척하는 못난 딸이었습니다.


또는 시부모님께서 식재료를 보내주시면서 “김치냉장고 없이 불편하지 않겠냐” 말씀하실 때도 “아직은 괜찮다” 웃으며 말씀드리며 마음 한구석엔 ‘왜 자꾸 우리 집에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물건을 들이라고 하시는 걸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답니다. 그때는 제가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 열심히 나름대로 저만의 취향으로 여백 많은 집을 만들어나가는데 전심을 쏟을 때인지라, 수저 하나도 제 취향이 아닌 것을 집에 놓기가 싫었습니다.


저와 남편의 취향에 맞춰 살림을 고르고, 집을 유지하는 습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건강하다 생각합니다. 함부로 물건을 충동구매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넘치지 않는 물건으로 생활하는 집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향점이 지나치다 보면 부모님께서 “이런 물건이 있으면 좋지 않겠니” 하며 말씀해주시는 것조차 부담감 혹은 거부감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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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조금씩 부모님께서 권해주시는 물건에 숨겨진 감정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건 단순히 물건이 왜 없냐는 타박도 아니고, 물건이 있어야 한다는 강권도 아니라는 것을요.


전기밥솥을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감정은 ‘요리도 잘 못 하는데 밥이라도 무리 없이 해야 잘 챙겨 먹을 텐데’, 교자상은 ‘손님이라도 왔을 때 정중하게 접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 안 될 텐데’, 전기 포트는 ‘날이 추워지면 따뜻한 차를 자주 마셔야 감기에 안 걸릴 텐데’하는 거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랑’이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그런 부모님의 속 깊은 사랑을 모르고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식의 태도만 지녔던 것 같습니다. 전기밥솥을 말씀하실 때 “저흰 필요 없어요”라고 똑 잘라 대답 드리지 않고, 저희가 끼니를 잘 챙겨 먹고 건강히 지낸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보여드리는 것으로 노력해봤습니다. 서툰 요리지만 만들어 먹는 집밥을 사진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고, 부모님은 오늘 식사로 뭘 드시는지 여쭤봤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부모님은 “너희 먹는 거 보니 우리도 전기밥솥 대신 냄비 밥해 먹고 싶구나” 하며 흐뭇해하십니다.


아울러 부모님께 어느 물건이든 “나중에 상황 봐서 언제든 필요하면 사려고 마음먹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게 저희의 진심이기도 하며, 유동적인 태도를 취해드리면 한결 편안해 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부모님과 자식의 관계가 지닌 모양새가 똑같지는 않기에, 제가 경험한 이야기는 해결책이 아닌 아주 가벼운 참고사항 정도가 되겠죠.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하면서 확연하게 느껴지는 한 가지 인식은 물건에는 감정이 반드시 투영된다는 겁니다. 외로울 때 사는 쇼핑에는 외로움을 쇼핑으로 채우려는 욕구가 있고, 건강용품을 사는 것에는 건강을 신경 쓰고 있는 감정이 있듯 말입니다. 아주 사소한 물건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감정의 개연성이 존재하는 것을 미니멀 라이프를 하며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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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부모님께서 물건에 대한 권유 혹은 왜 물건을 안 사냐는 의문을 가지실 때 초점은 ‘물건’보다는 부모님의 ‘감정’입니다. 부모님은 물건을 파는 영업직이 아니기에 물건이라는 매개체로 저희를 염려하고, 챙겨주는 사랑이 100%라 생각합니다.


냄비로 갓 지은 따뜻한 밥에 카레를 결들인 오늘 저녁 사진을 엄마께 보내드립니다.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인다”는 엄마의 답이 도착합니다. “엄마는 뭐 드실 거냐” 여쭤보니 가을 무를 썰어 전기밥솥으로 무밥을 만드는 중이라 합니다. 엄마는 요즘 가을무가 제철이니 무밥을 해 먹으라 권유합니다.


예전 같았다면 저희에게 무밥이 아니라 전기밥솥만 권유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전기밥솥이 아닌 가을 무밥을 이야기하는 여유가 생긴 까닭은 엄마께 전기밥솥이 없어도 냄비로도 무탈하게 무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을 드린 덕분일 겁니다.


제 미니멀 라이프 온도가 갓 지은 냄비 밥처럼 조금 더 따뜻해진 느낌입니다. 그나저나 가을무를 듬뿍 썰어 넣은 무밥을 조만간 해 먹어야겠습니다. 자고로 제철 음식만큼 맛있는 건 없다는 엄마 말씀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밀리카 『마음을 다해 대충 하는 미니멀 라이프』 저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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