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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한의사에 정밀진단까지…한의학 과학화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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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교대역 부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던 한의사 이 모(38) 씨는 지난해 말 병원 문을 닫았다. 나름 괜찮은 종합한방병원 의사 출신이었지만, 보약을 지으러 오는 사람도, 침ㆍ뜸을 맞으러 오는 환자도 드물었다. 결국 이 씨가 선택한 것은 애초 일하던 종합한방병원의 고용 한의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은 50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한의원이 고사 직전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한방 의료기관의 폐업률은 2013년 68.4%에서 2014년 70.3%, 2015년 79.3%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홍삼과 비타민이 값비싼 보약 시장을 대체하고 있는 데다, ‘한방 치료는 비과학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한의학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수천 년간 한민족의 건강을 책임져온 한의학이 정말 비과학적일까. 지난 2월 9대 원장에 취임한 김종열(59ㆍ사진) 한국한의학연구원장은“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최근 ‘인공지능(AI) 한의사’ ‘정밀진단’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한의학의 과학화를 이끌고 있다. 한의학연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출연 연구기관 중 하나다. 지난 12일 대전 한의학연구원 본원에서 김 원장을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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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비싼 돈 주고 한의원에 갔는데, 치료도 잘 안 될 때도 잦고, 여러 가지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하지만 외적 원인도 있다. 이 나라 의학계 주류인 양의(洋醫)가 한의와 협력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배척하고 있다. 양의 출신들이 복지부ㆍ식약처 등에서 양의 중심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한의가 소외되고 있다.”


-지금은 다소 나아졌지만, 과거엔 한약하면 보약이었다.


“한의학은 원래 치료의학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전염병과 감기ㆍ설사ㆍ종기 등 치료의학으로 훨씬 더 많이 기여를 했다. 중국은 그 전통이 중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의사의 본업은 치료다. 한의사가 X레이 하나 못 찍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면허 범위에 제한이 없어 중의사가 주사도 놓고, 수술도 할 수 있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영향을 받아 일본 모델을 따라갔다. 일본엔 아예 전통 의사가 자체가 없다. ”


-한의학이 과거에만 의지하는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19세기 이제마의 사상의학이나, 조선 중기 허준의 동의보감은 과거를 넘어서는 그 시대의 혁신이었다. 한의학 역시 혁신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후에 혁신의 맥이 끊어졌을 뿐이다. 당시의 방법론이 현대 과학체계와 달랐을 뿐, 한의학 역시 기본이론과 체계를 갖춘 학문이다. 20세기 한의학의 목표가 과거의 영웅‘화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화타를 넘어 과학적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에는 21세기의 동의보감이 필요하다.”


-한의학연구원은 어떻게 ‘과학’을 하고 있나.


“우리는 그간 수천 년 동안 한약을 안전하게 먹어왔지만, 이제 그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 치료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내놔야 한다. 진단 과정도 지금까지는 한의사의 주관에 의지해왔는데, 이렇게 해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한의학연구원이 하고 있고,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이다. ”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한약재의 과학적 성분 분석과 과학적 진단을 위한 진단기기 개발 등이 지금까지 해온 일이다.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이제는 인공지능(AI)을 한의학에 도입하려고 한다. 알다시피 양의에는 이미 인공지능이 도입됐다. 미래의 의사는 AI 의사를 옆에 두고 진료를 할 것이다. 우리도 20~30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사상의학과 동의보감뿐 아니라 임상 데이터를 표준화해 AI에 집어넣어야 한다. 연구원의 미래의학부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


-한의학연구원 내에 글로벌전략부도 있는데.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최고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곳과 협력해서 한의학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미국 하버드 MRI연구소와 공동연구를 통해 손목터널증후군 환자의 침 효과의 과학적 분석에 대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다른 하나는 한의학의 교류와 전파다. 중국 중의학과는 이미 대등한 관계에서 공동연구를 하고 있고, 베트남에는 우리가 가진 높은 임상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지금 한의학계가 어렵지만, 전체 한방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문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다. 한의원은 줄고 있지만, 종합한방병원은 늘고 있다.”


-한의학의 미래는 뭔가


“한의학은 서구가 가지지 못한 시스템적이며 예방의학적 성격이 있다. 30년 뒤 한의학의 미래는 서양의학의 도구를 활용해서 한의학의 미래의학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김 원장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대 건축학과 학부와 KAIST 토목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건설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다가 한의대에 학부 신입생으로 다시 들어갔다. 평소 과민성대장증상에 시달리던 김 원장이 당시 사상의학에 해박한 한의사의 진료 한 번으로 병을 해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상의학의 효과를 몸소 체험하면서 인생의 진로가 바뀐 것이다. 그는 경희대에서 한의대 학부를 마치고, 원광대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임상경험을 위해 8년간 한의원을 하다가, 2004년 한의학연구원에 합류했다.


대전=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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