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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에 70만돌파 '캡틴 마블' 흥행돌풍 뜯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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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영화’란 논란도, 이에 반감을 드러낸 일부 남성들의 평점 테러도 넘어섰다. 할리우드 히어로 명가 마블 스튜디오의 첫 여성 슈퍼 히어로 단독 영화 ‘캡틴 마블’(감독 애너 보든‧라이언 플렉)이 지난 6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 하루 만에 46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전국 2016개 스크린에서 하루 동안 올린 수입만 39억원, 전체 상영작 중 매출액 점유율이 85.6%에 달했다. 역대 3월 극장가 오프닝 신기록을 갈아치웠을 뿐 아니라, 역대 마블 단독 히어로 영화 최고 흥행작 ‘아이언맨 3’(2013)의 첫날 관객 수(42만 명)도 제쳤다. 이틀째엔 누적 77만 관객, 매출액은 66억원까지 치솟았다. 개봉일 오전 ‘캡틴 마블’의 예매율이 역대 마블 히어로 단독 영화들을 모두 뛰어넘은 91.1%, 예매량이 45만장에 육박할 때 이미 예견된 결과다.

여성 관객의 지지도 한몫했다. 멀티플렉스 체인 CGV‧롯데시네마 모두 예매자 중 여성이 50%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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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이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는 이번이 처음. 역대 시리즈 사상 여성 감독도 이번에 연출에 나선 애너 보든이 최초다. 동료 라이언 플렉과 이 첫 번째 블록버스터의 공동 감독, 공동 각본까지 맡았다.

영화엔 마블 스튜디오가 지난 11년간 20편에 걸쳐 만든 슈퍼 히어로팀 ‘어벤져스’의 시초가 담겼다. 그 주인공은 바로 훗날 캡틴 마블로 거듭나는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미국 공군 파일럿이었던 그는 사고로 기억을 잃고 외계종족 크리족 전사로 살아간다. 적의 기습으로 지구에 불시착한 그는 자신을 발견한 쉴드 요원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와 함께 과거 기억을 되짚으며 거대한 우주 전쟁의 위협에 맞선다. 1967년 마블 만화에서 첫 등장한 캡틴 마블의 이야기를 95년 미국과 우주를 무대로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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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아예 개봉일을 세계여성의날(8일)에 맞출 만큼 여성 중심 기조도 뚜렷하다. 캐럴의 과거 회상 장면에는 “여자니까 안 된다”는 등 차별에 맞서 공군에 입대, 기어코 조종대를 잡은 그의 투쟁적인 인생사가 드러난다. 기성 남성 악당이 짜놓은 운명에 갇히길 거부한 그가 “난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다”고 외치면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영화의 주제다. 이런 성장을 거쳐 그는 마블 최강 초능력을 지닌 전사로 거듭난다. 어린 딸을 키우는 흑인 싱글맘이 그의 조력자로 나서는 점도 눈에 띈다.

주연 배우 브리 라슨이 “페미니즘 영화”라 표현한 배경이다. 그는 ‘캡틴 마블’ 직전 다른 영화의 인터뷰에서 “평단을 장악한 백인 남성 말고, 유색인종 여성들의 비평을 더 많이 듣고 싶다”는 발언으로 일부 남성들의 반발을 샀다. 다양성에 대한 옹호였다는 그의 해명에도 불구, 한 할리우드 남성 배우는 “관객의 절반(남성)을 싫어하는 영화보단 그렇지 않은 영화를 보라”며 ‘캡틴 마블’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런 영화의 기조에 반발한 일부 남성들은 개봉도 전부터 “페미 마블” “캡틴 페미”라며 인터넷에 최하평점을 매기고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영화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는 이런 성별 대결 양상이 심해지자 개봉 전 평가란을 폐쇄했다. 국내에도 포털사이트 네이버 평점코너 네티즌 평점이 남성 3점대, 여성 9점에 가까울 만큼 극과 극으로 갈렸다.

그러나 개봉 후 실제 영화를 본 관람객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양상도 잦아드는 분위기다. 네이버의 실관람객 평점은 7일 기준 남성이 8.52, 여성이 9.26으로 큰 격차 없이 우호적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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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평단에선 새로운 여성 슈퍼 히어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만큼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미국 대중문화지 ‘롤링스톤’이 “또 다른 버전의 원더우먼이 아니라, 군대 하나를 만들 거대한 계획을 지닌 새로운 캐릭터가 나왔다”며 다음 달 개봉할 후속편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대한 더 큰 기대감을 표한 반면, 시사지 ‘타임’은 “괜찮은 영화지만 여성 캐릭터로서 성취한 것도 딱히 없다”고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를 비판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여자는 못 한다던 것들을 결국 해낸다는 식의 경직된, 교과서적 페미니즘을 보여주는 데 그쳐 아쉬웠다”면서 “훨씬 더 많은 걸 기대했는데 이런 안전한 선택이 아직은 블록버스터의 한계인 듯하다”고 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캐롤이 겪는 차별이 ‘전형적인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여성들이 겪어온 고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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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일부 팬들 사이에선 주연배우 브리 라슨의 매력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나왔던 바다. 그는 납치된 소녀의 실화를 연기한 ‘룸’(2016)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오른 후 ‘콩:스컬 아일랜드’(2017) 등 다소 강인한 여걸 이미지로 활약해왔다. 강유정 평론가는 “어떤 인터넷 게시판에서 브리 라슨이 가슴과 엉덩이가 크지 않다, 여성성이 부족하다고 대놓고 비난한 글도 봤다”면서 “결과적으론 캐스팅만큼은 적확했다. 브리 라슨 정도의 파워풀한 육체라면 극 중 혹독한 훈련도 견디겠다는 리얼리티가 느껴졌다”고 했다. 허남웅 평론가는 “남성 캐릭터들을 귀엽게 받아주는 캡틴 마블의 초월적인 태도를 재밌게 연기해냈다”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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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되찾는 여정이 강조된 만큼 대규모 액션신은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슈퍼 히어로 말고도 여느 마블 영화에서 보지 못한 시시콜콜한 재미가 다채롭다. 이를테면 시리즈 최초로 등장하는 스크럴족의 존재다. 백발 노파로 변신한 스크럴족과 캡틴 마블이 지하철에서 벌이는 격투신은 신선한 볼거리.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의외의 캐릭터는 닉 퓨리를 ‘집사’로 선택한 의문의 고양이 ‘구스’. 오디션을 거쳐 표정 연기에 능숙한 고양이 ‘레지’를 중심으로 ‘아치’ ‘곤조’ ‘리조’ 세 마리가 한 팀을 이뤄 귀엽고도 살벌한 활약상을 연기해냈다. 애너 보든 감독은 “시나리오 초고를 써서 (마블 수장) 케빈 파이기에게 보여주자마자 그의 첫 코멘트가 구스 분량이 200프로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어서 그렇게 했다”면서 “영화를 볼수록 이 고양이가 좋아진다”고 귀띔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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