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우리가 씹어먹는 겁니다” 드라마도 접수한 괴물 신인
[민경원의 심스틸러]
‘이태원 클라쓰’로 드라마 첫 도전 김다미
소시오패스 조이서 역할로 복수극에 활력
영화 ‘마녀’ 이어 선과 악 공존하는 캐릭터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로 스펙트럼 넓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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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달 5.0%(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시청률은 9회 14.0%로 뛰었다. 극 중 “이제 이태원 우리가 씹어먹는 겁니다”라고 선전포고를 날리더니 실제로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달달한 밤을 표방하는 신생 포차 ‘단밤’은 변두리 포차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요식업계 1위로 올라선 ‘장가’를 상대로도 겁 없이 선전포고를 날렸고, 이 역시 보다 빠른 시일 안에 이뤄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싸움이지만, 한 발짝 들어가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묘한 전투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소신 덕분이다. 평소 촬영이 끝나면 대사를 잘 까먹는 편인데도 “소신에 대가가 없는, 제 사람의 주체가 저인 게 당연한,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는 박새로이의 대사만큼은 계속 기억에 남는다는 박서준의 고백처럼 이들에게 소신이란 믿고 있는 바(所信) 혹은 작은 믿음(小信)이라기보다는 삶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에 가깝다. 애당초 불의를 보고도 눈 감을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박새로이가 퇴학을 당하는 일도, 교도소를 가는 일도, 장사를 시작할 일도 없었을 터다. 순간의 선택들로 꼬여버린 삶에 복수를 시작하게 됐지만 그마저도 “장사는 사람”이라며 소신을 지켜나가며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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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다미(25)가 맡은 조이서 캐릭터다. IQ 162에 달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소시오패스 성향이 79%로 메마른 감정을 지녔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가져야 하는 성격으로, 다소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복수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동종업계에 뛰어든다거나 지고지순하게 지켜온 첫사랑이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숱하게 봐온 설정이지만, 입사조건으로 월급 대신 순 매출의 20%에 해당하는 지분을 요구하거나 키스신을 가로막으며 디펜스에 나서는 스무살 짜리 여자애는 어디서도 본적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가 등장할 때마다 극은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근본 없는 캐릭터의 성장담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하는 바를 손에 쥐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적 지향적 삶을 살아오던 조이서에게 목표물 이외에는 죄다 쓸모없는 것들이었지만 단밤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전과자인 사장님과 재벌가 서자인 친구를 비롯해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주방장, 외국인처럼 보이는 아르바이트생 등 세상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 방송을 보면서 나 역시 소시오패스는 아닐지언정 편협한 사고방식은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하며 반성하는 시청자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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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간의 연관성도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서로 닮은 구석을 알아보면서 관계가 한층 복잡해지는 것. 극 중 오수아(권나라)는 조이서에 대해 “눈치가 빠르고 상황판단이 빠르다”고 평한다. 이를 들은 장가의 장대희 회장(유재명)은 “내가 자넬 그렇게 보고 있다”며 흥미로워하는 식이다. 장 회장은 조이서를 두고 “나와 같은 색”이라 칭하고, 박새로이는 장근수(김동희)에게 “너한테서 나를 봤다”고 말한다. 각각의 케미가 빛을 발하면서 극은 더욱 탄탄해진다. 서로를 끌어당기는 점성이 강해지면서 밀도를 높이는 덕분이다. 어쩌면 서로 닮았기에 그 결핍 혹은 과잉을 한눈에 알아봤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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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이 김다미의 첫 드라마 도전이라는 점이다. 독립영화 ‘2017 동명이인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영화 ‘나를 기억해’(2018)와 ‘마녀’(2018)가 필모그래피의 전부다. 인천대 공연예술학과 4학년 때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녀’에 합류하면서 그해 대종상ㆍ청룡상 등 신인상을 휩쓴 ‘괴물 신인’으로 떠올랐다. DNA 조작으로 탄생한 초능력 소녀 자윤 역을 맡아 순진함과 살벌함을 오가는 섬뜩한 연기를 펼쳤다. 3개월 동안 하루 3~4시간씩 투자한 액션 연기도 빛을 발했다. 당초 ‘마녀’를 시리즈로 기획한 박훈정 감독은 내년 속편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김다미 역시 시리즈로 계약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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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꿨던 그는 “연기를 하기엔 스스로 준비가 안 됐다고 여겨 대학 입학 후 3년간 연극 워크숍 공연에만 매진했다”고 했다. 그동안 응축해온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어렵고 고민되고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지만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니 최대한 즐기면서 하자는 마음”이라니 앞으로 어디로 튈지 차마 예측하지도 못하겠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 사이로 일상에서 쌓아온 감정을 켜켜이 채워 넣다 보면 또다시 한국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가 탄생하지 않을까. 조이서 캐릭터와 닮은 점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저도 솔직한 편”이라 했지만 그 역시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내는” 쪽이 아닐까 싶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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