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정·임상춘도 찾는다…한국에서 TV 가장 많이 보는 남자
20년간 하루 5시간씩 TV 보고 글 써온
정덕현 문화평론가 드라마 에세이 펴내
“사보·대필 등 글로 된 되는 일 뭐든 해
까다로운 한국 대중 덕에 K콘텐츠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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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드라마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누굴까. ‘사랑의 불시착’의 박지은 작가는 정덕현(51) 대중문화평론가를 꼽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우정 작가는 그를 두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콘텐츠를 사랑하는 평론가”라 칭했고,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는 “지친 날 동아줄이 되어 주는 글”이라 평했다. 정답이 없는 드라마 속 세상에서 헤매일 때 “가끔 정답을 찾아”주고, “선의, 위로, 용기 같은 뱃심을 충전”케 해준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그의 삶은 밤 9시부터 1시까지는 그날 방영되는 각종 드라마와 예능을 ‘본방사수’하고 다음날 오전에는 그에 관한 글을 쓰고, 오후에는 전날 놓친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10일 발간된 에세이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는 그렇게 그의 마음을 흔든 드라마 42편에 관한 기록이다. 드라마와 일상, 그리고 인생을 오가는 탓에 냉철한 평론과는 다르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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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모이면 드라마 얘기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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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을 앞두고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그는 “사람들이 아침에 만나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전날 본 TV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라며 “그런데 듣다 보면 다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결국은 드라마에 빗대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엑스트라로 정해진 설정값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보고 사이버 가수 아담을 대신해 홍보팀장으로서 인터뷰에 임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며 의학잡지 편집장 시절 인체의 장기를 소재로 기사를 쓰고 의사들의 글을 대필해주던 시절을 투영한다.
그가 평론에 뛰어들게 된 사연도 등장한다. 소설가를 꿈꾸며 ‘굶는과’(연세대 국문과)에 진학해 시나리오 학원에서 아내를 만나 굶어 죽을 수는 없어서 주류회사 홍보팀에 들어가 사보 기자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 “글로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했어요. 출판사 외주기획도 하고 대필작가도 하고 만화 대본도 쓰고. 그러다 친구가 대중문화 사이트를 만든다고 글을 좀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편 쓰던 게 하루 한 편이 됐고, 하루 두세 편으로 늘어나면서 원고나 강의 청탁이 많아져 월급만큼은 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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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꾸준히 쓰다 보니 찾는 곳도 많아졌다. 처음엔 기자들이 전화 와서 무슨 프로그램 봤냐고 물어보면 “안 봤다”고 할 수 없어 닥치는 대로 봤는데 많이 보고 많이 쓰다 보니 제작진이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기획사에서 교육을 부탁하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국적이 다양해지고 K팝이 글로벌하게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한번 문제가 생기면 국가적인 분쟁이 되더라고요. 트와이스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것이 중국에서 논란이 되면서 문화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한 거죠.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관공서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진행하는 젠더 토크 콘서트도 다니고. 대중문화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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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보이지 않는 별자리 찾기와 비슷”
그는 평론을 ‘별자리’에 비유했다. “별이 하나 떠 있으면 보이지 않지만 별자리를 찾아서 이어주면 하나의 그림으로 보인다”는 것. “사람마다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작품마다 던지는 메시지를 쫓아가다 보면 더 많은 이야기가 보이고 그것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평론가들이 모인 인터넷 뉴스 사이트 ‘엔터미디어’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그는 최근 유튜브도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K콘텐츠랩’을 구상 중이다.
“지금 K드라마,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제작자들이 잘 만든 것도 있지만 한국 대중의 힘이 더 크다고 봐요. 수용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콘텐트의 수준도 덩달아 높아지는 거죠. 한국처럼 드라마를 보면서 인터넷 대화창에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나라가 어딨어요. 트렌드를 빨리 캐치해서 그 안에서 같이 놀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으니 허투루 만들 수가 없죠. 그런 현상을 연구도 하고 컨설팅도 하고 일종의 연구소 개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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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일상인 그가 꼽는 ‘인생작’은 무엇일까. “늘 최신작으로 바뀌어요. 최근엔 임상춘 작가의 ‘동백꽃 필 무렵’이 가장 좋았고 이신화 작가의 ‘스토브리그’나 김루리 작가의 ‘하이에나’처럼 신인 작가들 작품이 참 좋더라고요. 원래 잘 쓰는 작가들도 많았지만 OTT 등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신진 세력이 부상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예능 프로그램 만들듯 회의하면서 드라마 대본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집단 창작 체제도 자리 잡고 있고요. 작가 혼자 쓰는 톱다운 방식에서 모두 머리를 맞대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바뀐 거죠. 저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요. 소설도 진전이 없어서 언제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우린 다 ‘미생’이잖아요. ‘완생’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어야죠. 그게 없다면 버틸 수 없을 테니까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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