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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무대서 먼 길 돌아 찾은 도예 작업실...흙과 나무가 좋다"

갤러리우물, 배주현 작가 '원시정원'

도자와 흙, 나무를 하나의 작품으로

"깨지고 일그러진 흠,아름다운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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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번 전시는 관람 시 가급적 한 분 혹은 한 팀씩 입장을 바랍니다. 충분히 혼자서 거닐며 사색하는 아주 사적인 '원시정원'에 관한 기억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서울 자하문로 좁은 골목 안에 자리한 갤러리 우물(대표 이세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배주현 작가는 최근 지인들에게 보낸 초대장에 이렇게 썼다. 왜 '가급적 한 분 혹은 한 팀씩'이라고 썼을까. 그 이유는 직접 가 보면 알게 된다. 첫째 갤러리 공간은 깜짝 놀랄 만큼 아담하다. 지금까지 가 본 갤러리 중 가장 작은 규모다. 둘째 그 '한 뼘' 공간에 야심 찬 작가는 자신이 공들여 빚은 것들을 흙과 함께 바닥에 펼쳐 자못 웅숭깊은 자연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시 제목은 '원시정원', 성악가 출신의 도예가 배주현의 개인전이다.


마치 문화재 발굴 현장처럼 작가가 빚은 토기들이 흙과 함께 바닥에 뒹굴고 있는 전시장에서 배 작가는 "큰 산맥부터 작은 돌멩이까지 자연 풍경을 집 안으로 깊숙이 들여다 놓는다는 생각으로 작업해왔다"며 "내가 생각한 원시 정원을 작게나마 이곳에 조성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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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이번 전시는 도자 전시가 아니라 '도자 설치' 전이다. 그곳에는 도자뿐 아니라 작가가 전남 장성의 가마 근처 숲에서 주웠다는 편백의 잘린 조각과 흙, 이끼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이런 전시 컨셉트에 대해 작가는 "도자 하나하나를 보여주기보다 그 조각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었다"면서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니라 사람들이 토기 사이를 걷고 흙도 밟아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오페라 무대에 섰던 그는 어떻게 흙을 만지는 일로 돌아서게 됐을까. 그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Q : 도자들을 땅에 풀어놓은 전시일 줄은 몰랐다. 의도인가.


A : "최대한 자연을 닮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손에 잔 하나를 들어 감싸 쥐며) 이게 누군가의 눈엔 한낱 투박해 보이는 잔이겠지만, 저는 눈이 부신 햇살을 받아 따뜻해진 돌멩이의 감촉을 떠올리며 작업했다. 작품을 통해 최대한 그런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Q : 문화재 발굴 현장의 토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 저기 흙과 이끼도 함께 연출했다.


A :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문명에 앞서 인간이 품고 있는 예술에 대한 갈망에 대한 제 경외심을 담은 거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그 자체로 가장 풍요롭다.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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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일그러지고 심지어 깨진 것을 붙인 듯한 작품들도 많은데.


A : "도예 작업을 하며 느낀 게 있다면 울림은 완벽한 구(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크랙(crack·갈라져 생긴 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오히려 일부러 크랙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망치로 깨기도 하고, 갈라진 곳은 옻칠해 붙이거나, 금이 간 데를 옻과 황토로 메꾸거나 금을 씌우기도 한다. 그 흠을 메꾸는 게 자연스러운 그림이 될 수 있다. 일할수록 세상에 완벽한 것은 오히려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결함을 못 견뎌 파괴해 버리기보다는 그 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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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배주현 작가]

Q : 도자와 나무 조각이 하나의 작품이 된 게 특이하다. 뾰족한 나무 조각들이 마치 비상을 준비하는 새처럼 보인다.




A : "이번 전시 작업의 산실이 되어준 희뫼요 근처 편백나무 숲엔 비바람에 잘리고 꺾인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다. 제 생각에 나무처럼 가장 완벽한 조각품은 없는 것 같다. 동양화를 하면서 나무를 일부러 찾아다니고 나무만 그렸을 정도로 나무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특히 겨울나무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다. 제가 흙으로 빚은 것들과 나무를 조화시켜 전체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바람이 늘 있었다."


Q : 작품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받나.




A : "조르주 바타유가 라스코 벽화에 대해 쓴 글(『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을 읽으며 사람들 안에 기본적으로 내재한 예술적 욕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과거의 유물에서 원시적인 형태로 드러난 예술적 욕망의 흔적을 접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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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배주현 작가]

Q :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직업이었다고.


A : "음대를 졸업하고 1995년 윤학원 선생님이 이끄는 인천시립합창단이 재창단됐을 때 창단 멤버로 들어가 활동했다. 합창단원으로서 서보지 않은 무대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은 물론 미국 링컨 센터, 카네기 홀에서 원이 없을 만큼 노래했다. 결혼하고 합창 무대를 떠난 뒤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음악 공부를 조금 더 하고 한국에서 여러 오페라 무대에서 섰다. 화려하고 주목받는 삶을 살았지만 늘 온전히 '내 것'을 찾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Q : 그래서 도자를 시작한 건가.


A : "30대는 제게 가장 화려하고, 또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결혼한 뒤 사업과 오페라 무대를 병행했다. 개인적으로 버거운 일들도 겪었다. 30대 후반에 뒤늦게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갖게 되면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음악과 비즈니스 두 가지를 모두 내려놓고 만난 게 그림과 도자였다. 부모님이 원해서가 아니라, 해오던 것이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비워진 마음으로 어릴 때부터 막연히 하고 싶었던 것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유화로 시작했다가 동양화에 관심이 생겼고, 함께 도자를 배우면서 새 인생을 사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Q : 당신에게 음악과 도자는 어떻게 다른가.


A : "음악은 즉각적이다. 무대에서 객석과 교감하며 느끼는 희열은 마치 마약처럼 중독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내게 불편한 것이기도 했다. 혼자서 흙을 만지며 작업할 때 느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나 자신이 된 것과 같은 충만함을 느낀다. 내 손으로 빚은 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이야기를 걸 수 있고, 내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느낀다."


그는 "반드시 값 비싸거나 유명한 예술품이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내가 빚은 것들은 쓰는 사람의 뜻 따라 꽃을 담는 그릇도, 국수를 담는 그릇도 될 수 있다. 그냥 두고 보는 오브제가 될 수도 있고, 보는 사람에게 다른 의미도 전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바로 이런 것"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전시는 29일까지(오후 1~7시), 화요일 휴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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